기획 완결 무기탄생비화

철모에서 미사일까지<101>철갑탄용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 -10-

입력 2003. 10. 21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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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텅스텐 소재팀요? 국내에서보다 미국과 유럽에서 훨씬 더 유명하지요.”

    국방과학연구소 분석평가실장 김의환 박사의 이 말은 기분 좋게 들리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다소 씁쓸한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당시 국과연의 텅스텐 중합금 소재에 대한 연구는 ‘얼마 되지 않는’ 예산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관심도 면에서 그리 높지 않았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은 ‘강력한 관통력’을 자랑하는 열화우라늄탄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걸프전 이후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 연구에 새롭고 심각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1991년 5월, 미 육군물자사령부(AMC)사령관 토머스(Thomas)중장의 국과연 방문은 하나의 ‘사건’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토머스 장군은 국과연이 개발 중인 주요 무기체계와 핵심기술 등을 설명받는 가운데 백운형 박사가 텅스텐 중합금 소재를 소개하자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다단열처리 기법에 대해 생각 이상으로 상세히 물었고, 백박사는 내친김에 “미국이 개발 중인 텅스텐 중합금 분말을 분석해보고 싶다”며, 그동안의 관례로 볼 때 ‘어림 없는’ 현물(분말) 제공을 요청했다. 그런데 토머스 장군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얼마 뒤 연구팀은 미 육군재료연구소(MTL, 현재는 ARL로 통합)로부터 미국의 텅스텐 중합금 분말을 연구용으로 제공받은 것이다. 이것은 분명 ‘사건’이었다.

    “미국도 텅스텐 중합금 소재의 충격인성 값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지향한 방향과 일치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방법이 달랐지요. 미국은 텅스텐과 텅스텐의 계면 접촉도를 줄이기 위해 텅스텐 입자 하나하나를 코팅하고 있었는데, 실험을 통해 분석해 보니 소결 과정에서 코팅이 녹아 텅스텐 입자가 원래 상태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공법이었지만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백운형 박사)

    연구팀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안을 개발, 텅스텐 중합금 재료 분야에서 세계 일류수준으로 들어섰다는 찬사를 받았으나 연구 성과는 당시 곧바로 실제 탄으로 제작되지 못했다. 주포를 120mm급으로 업건(Up-Gun)하는 K1전차체계 성능 향상 사업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기술만이 신형 105mm 날개안정철갑탄에 적용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국과연과 미 육군재료연구소의 공동연구 자료교환 프로그램은 이후 더욱 활기를 띠어 92년 4월 양측은 텅스텐 중합금 소재 관련 공동연구합의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연구팀은 새로운 사실을 하나 둘 더 알게 됐다. 그러던 94년 여름, 백박사를 비롯한 연구팀은 국과연 내의 한 심사대에 올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단열처리 기법이 국내 국방과학기술 분야에서 최고상으로 손꼽히는 국방과학상 ‘금상’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국방과학상에서도 금상은 연구개발 수준이 세계 동급이거나 그 이상임이 증명돼야 수여된다. 그때까지 24년간 단 세 차례만 수여됐을 뿐이었다.

    그때 소재분과 심사위원장이었던 진근찬 박사는 텅스텐 소재팀의 다단열처리 기법이 세계 최초이자 최고임을 확신했으나 심사위원들은 객관성 있는 명확한 증거를 요구했다. 역시 심사위원이었던 김의환 박사의 질문은 특히 ‘공격적’이었다.

    심사 후 “김박사는 마치 금상을 안 주려는 듯한 인상을 줍디다” 등 농담이 오갔으나 가장 후한 점수는 김박사에 의해 주어졌다. 연구팀은 이렇게 그해 8월6일 국과연 사상 네 번째로, 기술분야로서는 최초로 국방과학상 금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축하 세례 속에서도 일부 ‘과연 그 정도의 성과인가’라는 의구심이 한쪽에 남아 있었다.

    이를 일소한 것이 또 김박사였다. 김박사는 K1전차 성능 향상 사업을 수행하면서 대전차탄의 세계적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네덜란드 NWM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NWM사의 관계자가 대전차탄 관통자라면 한국이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뭘 더 알아보려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우리 텅스텐 중합금 재료 기술이 세계 최고의 품질을 보증하는 자랑스러운 것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미국도 아닌 유럽에서까지 그렇게 폭넓게 인식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김의환 박사)

    다단열처리에 대한 신뢰는 미 국방부가 매년 발간하는 ‘미 육군 과학기술 종합발전 계획서’(Army Science and Technology Master Plan)가 종지부를 찍게 된다. 분야별로 최첨단의 기술만을 수록하는 이 책자는 95년판부터 현재까지 해마다 미국이 한국에서 배워야 할 핵심기술로 다단열처리 공법을 등재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기술임을 말해 주고 있다.

    〈신인호 기자 nice-kye@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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