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이 창설 기념일로 지켜오고 있는 11월11일은 1945년 당시 `해방병단'이라는 이름으로 결단식을 가졌으나 군함 한 척도 없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경비정 2척 첫 인수
해군이 처음으로 경비정을 갖게 된 것은 46년 10월15일 미군으로부터 LCI 2척을 인수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체 조함(造艦)기술로 함정을 진수시킨 것은 47년 2월 충무공정(PG-313)이었다. 충무공정은 46년 2월 창설된 조함창 기술진에 의해 일본 해군이 기공하다 중단한 경비정을 자체 기술로 건조한 것이다.
48년 9월5일 대한민국 해군으로 정식 발족한 후에도 전투함을 보유하지 못한 해군은 49년 10월 드디어 미국으로부터 600t급 PC-701(백두산)을 도입하면서 전투함 보유의 숙원을 해결하게 되었다.
당시 정부 재정이 열악했던 탓에 한국 해군은 최초의 구축함을 해군 부인들의 정성어린 성금과 해군 장병이 모금한 6만 달러를 기금으로 삼아 정부로부터 6만 달러를 지원받게 되었고 이를 통해 해군은 백두산함을 비롯한 전투함 4척을 도입하게 되었다.
한국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은 50년 6·25전쟁 당시 대한해협을 통해 후방 침투요원을 싣고 오던 북한의 무장 수송선을 격침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우리 해군의 주력 전투함으로 활약한 구축함 시대는 63년 5월16일 미국으로부터 DD-91(충무함)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78년까지 모두 12척의 구축함을 도입, 2000년 12월29일 마지막 미국산 구축함인 광주함·강원함 퇴역시까지 해군의 주력 전투함이 었다.
당시에는 미국이 퇴역시킨 함정을 인수해 해군의 주력함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한계는 있었으나 해군정비창의 선체정비기술은 구형 구축함이 당당히 우리 해역 방어의 주력함으로 설 수 있는 뒷받침이 되었다.
주로 미국으로부터 구형 함정을 도입하던 해군이 72년 11월 자체 기술진에 의해 최신 국산 함정을 건조하게 되었는데 전국 800만 학생과 20만 교직자들의 애국방위성금으로 건조되었다고 해서 학생(學生)호 로 명명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점차 해군다운 면모를 갖추어 오던 해군에 획기적인 발전의 전기가 마련된 것은 74년부터 추진된 율곡사업이었다. 율곡사업으로 고속정·호위함·초계함·기뢰탐색함·군수지원함·상륙함 ·잠수함 등 지금의 해상 주력함을 건조함은 물론 대잠초계기(S-2E)·해상작전헬기(LYNX)·해상초계기(P-3C) 도입을 이룩할 수 있었다.
KDX사업 본격화
80년 4월 최초의 국산 호위함(FF) 울산함 진수를 시작으로 82년 11월 국산 초계함(PCC) 동해함 진수, 86년 8월 국산 기뢰탐색함(MHC) 원산함 진수, 90년 7월 군수지원함(AOE) 천지함 진수, 그리고 90년 신형 상륙함(LST) 고준봉함 진수 등 함형별로 국내에서 진수한 함정들이 해군의 주력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80년대까지 주로 수상함을 중심으로 현대화의 길을 걸어온 해군은 92년 10월14일 독일 현지에서 우리나라 사상 최초로 수중전력인 잠수함 장보고함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잠수함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잠수함은 1번함만 독일에서 도입했으며 92년 10월 국내 건조한 이천함을 시작으로 대우조선이 잠수함을 건조함으로써 해군은 물론 우리나라 조선업계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해군은 그동안 `100번 잠항(潛航)하면 100번 부상(浮上)한다'는 안전의식으로 초창기 잠수함 운용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지난 10월 잠수함 운용 및 무사고 10주년을 달성했다.
또한 96년부터 하와이 근해에서 개최된 환태평양훈련(RIMPAC)에 참가하며 원양 항해 능력과 잠대함 유도탄 발사 능력을 입증하는 등 짧은 운용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해군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해군이 창설 반세기가 다 돼 비로소 입체적인 전력을 갖추게 되었으나 대양에서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래 전부터 연안해군 수준을 벗어나 대양해군으로 지향하려는 해군의 계획이 처음으로 구체화한 것은 90년대부터 본격화한 구축함 발전계획, 일명 KDX(Korea Destroyer Exercise)사업이었다.
해군의 부족한 현존전력 보완과 노후 함정을 교체하고 미래 안보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추진된 3단계 구축함 발전계획은 그동안 KDX-Ⅰ 1번함인 광개토대왕함을 98년 진수해 3000t급 구축함 시대를 열었으며 뒤이어 2002년 5월22일 4000t급 구축함으로 KDX-Ⅱ 1번함인 충무공 이순신함을 진수함으로써 대양작전 능력을 갖춘 해군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해군은 구역방어 수준 능력을 갖춘 충무공 이순신함으로 비로소 대양작전이 가능케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토록 아끼던 충무공 이순신의 이름을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이지스 전투체계 확정
함정의 발달을 통해 본 이러한 해군의 역사는 올 7월 이지스(Aegis)체계를 전투체계로 확정한 KDX-Ⅲ사업이 착수됨으로써 KDX-Ⅲ 1번함이 해군의 주력함이 되는 2008년 한국 해군은 바야흐로 질적 수준에서 해양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다.
또한 올해 사업이 승인된 LPX사업은 해군이 바다로부터의 전력을 투사하는 실질적 능력을 갖추게 하는 진일보한 발전을 기대케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해군의 조함 발달사에서 보듯이 한국 해군은 70년대 초반부터 고속정·초계함·호위함·구축함·잠수함 등 전투함 300여 척과 항만경비정 등 보조선박 등을 포함해 총 650여 척을 국내 건조, 전투력 신장을 지속해왔다.
또 이 과정에 참여한 우리나라 조선업계도 많은 기술 성장을 가져왔고 이를 통해 12개 국에 총 45척의 군함 수출이 가능한 토대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국력 신장과 함께 시작된 해군의 현대화 사업은 해군은 물론 우리나라 해양산업 전반에 걸쳐 독자적인 역량을 키우는 데 많은 기여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함정 획득사업은 계획부터 전력화까지 장기간에 걸친 치밀한 사업관리·기술관리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 KDX-Ⅲ 1척을 건조하는 데에만 130여 가지의 탑재장비·무기체계, 그리고 스텔스 기법 등 850여건의 도면이 들어가는 방대한 사업이다.
이렇게 다양한 방면의 업무 수행을 위해 해군에만 존재하는 조함단이 있으며 63년 함정감실 함정과 조함담당으로부터 시작된 조함단은 91년 지금의 조직으로 발전했다.
조함단은 70, 80년대 한국형 구축함(KFF)사업 추진과 90, 2000년대 KDX·LPX사업 등의 실질적인 도입을 추진하면서 해군 전력 증강의 산실로 자리잡고 있다.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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