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기자의 ‘펜 들고 세계 속으로’] 원시 자연 그대로 간직 모레아섬 가는 곳마다 ‘탄성’

입력 2024. 04. 26   15:45
업데이트 2024. 04. 2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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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해군순항훈련 -남태평양 흑진주 타히티 

해변에 오두막, 방갈로 객실의 원조
고갱 체취 가득…박물관 발길 이어져
보라보라섬 시간 없어 못 가 아쉬워
사물놀이·군악·태권도 시범 큰 호응

모레아섬 전경. 멀리 섬의 정상 봉우리가 보인다.
모레아섬 전경. 멀리 섬의 정상 봉우리가 보인다.


망망대해(茫茫大海)를 본 적이 있는가?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끝없는 수평선. 자고 또 자도 눈 떠보면 바다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순항훈련함대의 항로는 그 한복판에 있었다. 이로 인해 중간중간에 만나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섬은 더 반갑게 느껴졌다. 괌이 그러했고, 타히티도 마찬가지였다.

폴 고갱이 평생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았던 곳, 윌리엄 서머싯 몸의 걸작 ‘달과 6펜스’의 배경. 태평양을 가로질러 긴 항해를 하던 순항훈련함대를 포근히 품에 안은 남태평양의 ‘흑진주’ 타히티는 예술인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걸작을 낳게 한 환상의 섬으로 유명하다.

타히티 절경 중 하나인 파아루마이 폭포.
타히티 절경 중 하나인 파아루마이 폭포.


타히티가 위치한 남태평양의 섬은 크게 3개 군도로 나뉜다.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그리고 폴리네시아. 타히티는 이 중 하와이 제도와 뉴질랜드, 이스터섬을 삼각형으로 잇는 폴리네시아 군도에 속한다. 공식 호칭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다.

순항훈련함대는 11월 14일 폴리네시아 해군사령관을 비롯해 프랑스 군인과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수도이자 남태평양 최대 도시라는 파페에테에 입항했다. 순항훈련함대 생도·승조원들은 간단한 입항 절차와 환영행사를 마치고 타히티 곳곳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모레아섬의 해변 방갈로. 방갈로 객실은 타히티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모레아섬의 해변 방갈로. 방갈로 객실은 타히티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산호초로 둘러싸인 에메랄드빛 바다와 야자수, 밝은 표정의 원주민…. 타히티는 이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며 우리를 반겨줬다. 그야말로 천혜의 관광지다. 그중에서도 파페에테에서 고속 페리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모레아섬은 보라보라섬과 함께 관광명소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두 섬은 아직 원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가는 곳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특히 해변의 방갈로가 눈에 띈다. 방갈로 객실이 제일 먼저 탄생한 장소가 여기라고 한다. 지금은 발리·몰디브·하와이 등 세계 곳곳의 휴양지에서 방갈로 객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원조가 바로 이곳이라는 이야기다. 우연히 물에 가까운 장소에 오두막 형태의 객실을 지었는데, 유행을 타면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게 됐다는 것이다.

보라보라섬은 파페에테를 기준으로 북쪽 먼 곳에 자리하고 있다(모레아는 서쪽). 이곳을 보려면 경비행기를 타야 한다. 상당한 비용과 긴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일정상 여유가 안 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여행자들이 꿈꾸는 지상 낙원이자 신혼여행지,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인 보라보라섬 턱 밑까지 왔는데….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날려 보냈다.

야외공연장에서 순항훈련함대 승조원들이 사물놀이를 공연하는 모습.
야외공연장에서 순항훈련함대 승조원들이 사물놀이를 공연하는 모습.


타히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고갱이다. 그만큼 이곳은 고갱의 체취와 향기가 가득했다. 고갱박물관 앞에는 그의 흔적을 음미하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갱의 작품은 프랑스로 가져갔고, 박물관 안에 전시된 미술품은 진품이 아닌 복사품이거나 다른 화가의 작품밖에 없어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순항훈련함대는 남국의 땅에서도 우리나라를 소개하고,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열중했다. 신명 나는 사물놀이와 흥겨운 군악, 의장대와 생도들의 의장·태권도 시범은 큰 호응을 얻었다. 함정에 설치된 홍보전시관에는 주민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파페에테 중심에 있는 야외공연장에는 우리 순항훈련함대가 정박한 동안 3×5m 크기의 대형 태극기를 게양해 놓고, 출입하는 각국 선박에 이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체류 중인 우리 장병들이 한껏 자긍심을 느끼도록 배려해 감동했다.

고갱박물관. 아쉽게도 그의 작품은 프랑스에 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진품이 아닌 복사품이라고 한다.
고갱박물관. 아쉽게도 그의 작품은 프랑스에 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진품이 아닌 복사품이라고 한다.

 

천지함 갑판에서 원주민들이 민속춤을 추며 순항훈련함대 장병들을 환영하고 있다.
천지함 갑판에서 원주민들이 민속춤을 추며 순항훈련함대 장병들을 환영하고 있다.


문득 상상해 봤다. 이곳이 우리 영토였으면…. 앞에서 말했다시피 타히티는 프랑스령이기에 프랑스 해군이 주둔하고 있다. 사령관 계급은 대령이며, 총인원은 100명이 안 된다. 우리 순항훈련함대는 구축함·호위함·군수지원함 등 함정 3척에 800여 명. 함정 성능이나 인원 등 모든 면에서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 물론 이런 것은 있어서도, 또 해서도 안 될 불손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게 욕심이 날 만큼 타히티는 환상적이었다.

남국의 정취를 대변하는 타히티. 이곳도 점차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금씩 퇴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낙천적이고, 자연과 묻혀 살아가는 타히티 주민의 따뜻한 모습은 다시 힘찬 항해를 떠나는 순항훈련함대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이주형 기자는 1995년 국방일보에 입사해 10여 회에 걸쳐 해외파병부대를 취재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국군의 활약상을 보도했다. 현재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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