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을 공유했다, 예술이 외교가 됐다

입력 2024. 04. 25   20:06
업데이트 2024. 04. 2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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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 예술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
  ⑦ 렘브란트 판레인의 ‘마르텐 솔만스와 오프예 코피트의 한 쌍 초상화’

 

17세기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유일한 실물 크기 부부 초상화 
빛·어둠 대비, 신비감 넘치는 화면 
네덜란드 황금시대 대표하는 명작
프랑스·네덜란드 정부 소유 경쟁
공동 소유권 합의…교대 보유 결정
루브르·레이크스 박물관 순회 전시 
문화적 동맹·협력 다지는 역할 수행

 

각각 1634년, 캔버스에 유채, 207.5×132㎝, 레이크스박물관/루브르 박물관 공동 소장. 출처=레이크스박물관 홈페이지 
각각 1634년, 캔버스에 유채, 207.5×132㎝, 레이크스박물관/루브르 박물관 공동 소장. 출처=레이크스박물관 홈페이지 

 

 

2016년 3월 10일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네덜란드 국왕 부부 빌럼 알렉산더르와 막시마가 참석한 가운데 한 쌍의 부부 초상화가 공개됐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장했던 이 초상화들은 프랑스와 네덜란드 정부가 매입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공동 소유권이라는 합의점에 도달한 작품이다. 작품당 8000만 유로씩 총 1억6000만 유로(약 2120억 원)를 함께 지급하고 교대로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이날부터 6월 13일까지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한 뒤 7월 2일부터 10월 2일까지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박물관에서 전시했다. 이후 두 박물관 합동 복구팀의 1년 반에 걸친 복원 작업을 마친 후 레이크스 박물관에서의 5년을 거쳐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들의 작품 공동 소유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작품부터 살펴보자. 17세기 네덜란드 복식을 착용한 전신 부부 초상화다. 초상화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부상한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해 지배계층의 사상과 권력을 드러내는 전유물이었다.

16세기 말 종교개혁 여파와 유럽 대국들의 전쟁을 피해 무수한 지식인과 수공업자가 무역이 번성하고 종교의 자유와 사회 평등의 시스템이 갖춰진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이에 따라 17세기로 접어들며 네덜란드는 문화와 산업의 ‘황금시대’를 맞이한다.

성장한 시민 계급은 일부 귀족보다 더 큰 부를 갖게 되며 이들 사이에도 초상화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부부 초상화는 남편과 부인의 그림을 한 쌍의 펜던트로 제작해 남편은 왼쪽, 부인은 오른쪽에 나란히 배치하는 게 관습이었는데 요즘 결혼사진을 찍어 신혼집에 거는 것과 비슷한 풍습이다.

부의 정도에 따라 작은 크기의 흉상부터 반신상, 드물긴 하지만 전신상도 제작돼 가정 실내를 장식했다. 이번 회에서 다루는 한 쌍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전신 초상화를 선택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자 했고, 이는 복장과 자세에서도 드러난다.

남편과 부인 모두 당시 유행한 고가의 검은색 직물에 섬세한 패턴이 새겨진 의상을 착용하고 있다. 고급진 레이스 소재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칼라와 허리띠를 착용하고 소맷부리에는 손등까지 늘어지는 러플을 부착해 장식성을 더했다.

신발 발등 위에는 크고 둥근 레이스를 부착해 패션 트렌드에 부합함을 알려준다. 부인은 진주와 보석을 휘감고 목걸이에도 정교한 보석이 치장된 반지를 달아 호화로움을 추가했다. 왼쪽 눈썹 옆에는 당시 유행한 창백한 피부를 강조하는 동그란 검은색 직물인 무스(mouches)를 부착했다.

머리에는 베일을 쓰고, 오른손에는 두꺼운 금색 체인이 달린 타조 깃털 부채를 들고 있는데, 이들 역시 부의 과시와 함께 자신의 고귀한 피부를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두 초상화는 한 쌍의 그림이라는 미묘한 단서들로 연결되고, 서양미술에서 부부의 덕목을 암시하는 도상(icon)으로 채워져 있다. 배경의 검은색 커튼부터 두 그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커플 벨트에 달린 정교한 리본은 부부를 하나로 묶는 화합의 연출이다.

남편은 챙이 넓은 중절모를 썼는데, 당시 남성의 우월적 권위를 나타내는 기호로 통용됐다. 계단을 내려오는 부인에게 왼손으로 장갑을 내밀고 있는데, 이는 아내에 대한 충실함과 정절의 표시다. 부인은 오른발을 치마 아래로 살짝 내밀어 남편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드러난 흰색 신발이 눈에 띄게 작은데, 당시 작은 발은 여성적 이상향의 일부였다. 왼손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 외에 오른손 검지에 피라미드 형태로 세공된 검은색 보석 반지를 끼고 있는데, 이는 불변성을 상징하며 부부애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뜻이다.

실제로 주인공들은 암스테르담의 상류층이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남편 마르텐 솔만스(1613~1641)는 부유한 설탕 정제업자의 아들이었다. 청렴한 칼뱅주의자인 그의 아버지는 재력을 과시하는 행위를 삼갔는데, 마르텐은 경건하지 못한 행동으로 개혁교회 공의회에 여러 차례 소환받았다고 한다.

부인 오프예 코피트(1611~1689)는 곡물과 화약으로 부를 쌓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인기 높은 신붓감이었다. 이들은 1633년 6월 결혼하며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젊은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스존 판레인(1606~1669)에게 초상화를 주문해 이듬해 완성됐다.

렘브란트는 일찌감치 성경과 신화보다는 인간 표현에 관심이 많았고, 빛의 방향과 양에 따라 얼굴의 생김새가 미묘하게 변화하고 그 사람의 내면과 감정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표면이 매끈한 동시대 그림들과 달리 물감을 두껍고 거칠게 발라 극적인 명암을 표현했다.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신비감 넘치는 화면을 구사했다. 인물의 실제에 가까운 표현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주제를 넘나드는 걸작을 남겨 네덜란드가 배출한 최고의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600점 정도로 유화는 약 150점이다.

대부분 미술관에 소장돼 드물게 미술시장에 나오면 작품가는 높을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 황금시대 초기의 사회와 문화적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부부의 초상화, 게다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유일한 실물 크기의 부부 초상화이자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어서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네덜란드의 빌럼 판론 컬렉션에 장기간 속했던 이 초상화들이 1877년 매물로 나오자 네덜란드 정부가 작품 인수를 시도했지만 예산이 부족했고, 언론에서는 터무니없는 금액이라며 반대했다. 자국 미술사의 걸작이 고국을 떠나지 않길 바란 정부의 바람과 달리 유대계 재벌 가문 로스차일드의 프랑스 혈통인 바론 구스타브 남작에게 두 초상화를 포함한 68점의 네덜란드 회화 컬렉션이 매각되고 만다.

자존심이 상한 네덜란드는 다른 문화유산들이 같은 운명을 겪지 않도록 1883년 렘브란트협회를 설립해 기금을 모아오고 있다. 네덜란드를 떠나 프랑스로 건너가야만 했던 이 작품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파리 주택 침실에 걸려 있다가 2014년 봄 미술시장에 나오게 된 것이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유럽 미술에 있어 뛰어난 컬렉션을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의 렘브란트 명화 공백을 이 초상화들이 채워주기를 바랐다. 네덜란드도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을 되찾아올 절호의 기회였다. 혈통이 신분을 결정짓는 귀족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자리 잡은 상인 계급의 초상화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기에 소유가 더욱 절실했다.

양국 모두 은행과 협회의 후원에도 예산이 부족했기에 공동 인수가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각 나라가 한 점씩 소장할 수도 있었지만 부부는 떨어질 수 없기에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동 인수 절차가 완료된 후에 네덜란드 국왕 부부가 프랑스를 방문해 대중 앞에서 함께 작품들을 공개한 것은 문화적 동맹 구축과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양국의 정치적 대화가 강화되는 시점이었고 이어진 무역 증진을 위한 회의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미술의 여러 가지 순기능 중 국가 간 우호 협력을 강화하는 외교 역할의 예시였다.

필자 백승옥 비커밍아트 대표는 미술사와 문화정책을 전공했고, 문화예술 대중화를 위한 전시기획과 강의를 한다. 해외 미술 동향과 예술 후원에 관한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필자 백승옥 비커밍아트 대표는 미술사와 문화정책을 전공했고, 문화예술 대중화를 위한 전시기획과 강의를 한다. 해외 미술 동향과 예술 후원에 관한 글을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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