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호 선수의 경우가 보여준 것

입력 2024. 03. 28   16:48
업데이트 2024. 03. 28   17:05
0 댓글
박승준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국제정치학 박사
박승준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국제정치학 박사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한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영화나 TV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에 나오는 말이다. 경찰이나 수사관이 피의 혐의자를 체포하거나 구금할 때 꼭 들려주어야 하는 말이다. 이른바 ‘미란다(Miranda) 원칙’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권리는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에서도 보장하고 있다. 우리 헌법 제2장 제12조는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 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유와 일시 장소가 지체없이 통지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도 이 미란다 원칙을 받아들여 법률에 관련 조항을 명시해놓기는 했다. 중국 형사소송법 제33조는 “수사기관이 범죄혐의인에게 제1차 심문을 하거나 강제조치를 취할 때 범죄혐의인에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고지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2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차오(虹橋) 공항에서 체포된 축구 국가대표 미드필더 손준호 선수에게는 그런 권리가 허용되지 않았다. 산둥(山東)성 타이산(泰山) 프로축구 클럽에서 뛰던 손 선수는 상하이에서 귀국하려다가 ‘비국가공작인원수뢰죄(非國家工作人員受賂罪)’, 다시 말해 ‘국가공무원이 아닌 자가 뇌물을 받은 죄’를 저지른 혐의로 체포됐다. 그동안 손준호 선수는 중국내 어디에 있는지 행방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319일 만에 돌연 귀국한 것으로 국내에 지난 25일 알려졌다. 손 선수는 중국 축구협회에 대한 승부조작 뇌물 수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혐의가 연루돼 중국 수사기관에 구금돼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형법 제46조는 “구류는 1일 이상 30일 미만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손 선수에게는 우리 형법의 그런 조문이 적용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린젠(林劍) 대변인은 26일 열린 브리핑에서 프랑스 AFP통신사 기자가 손 선수의 한국 귀국에 관해 질문을 하자 “중국은 법치국가이고, 법률 안건에 대해서는 엄격한 심리를 진행하며, 당사자의 합법적 권익은 법에 따라 보장된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무책임하기는 우리 외교부도 거기서 거기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우리 외교부는 손준호 선수가 귀국한 사실이 알려진 뒤에야 “그동안 중국 당국과 여러 경로로 소통하며 신속하고 공정한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우리 외교부는 그동안 손 선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법절차를 받고 있는지 ‘개인의 신상에 관한 정보’임을 이유로 우리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 외교부는 그동안 손준호 선수가 축구 국가대표 선수라는 공인(公人)인데도 개인신상 정보를 이유로 온 국민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하물며 공인이 아닌 우리 국민들이 중국에서 당하는 말도 안되게 억울한 경우에는 과연 어떻게 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중국이라는 나라가 전직 외교부장 친강(秦剛)이나 제1의 부호 알리바바의 마윈(馬云)이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뒤 1년이 넘게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는 나라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멀쩡한 이웃나라 축구 국가대표 선수를 실종상태에 만들어놓는 일을 우리가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중국이 무엇이 두려운지 손준호 선수의 1년 가까운 실종상태에 대해 입을 닫고 있었던 우리 외교부에게도 이제는 책임을 물어야 할 때가 됐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