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5월 17일 6·25전쟁 참전 독일적십자병원 첫 환자 진료

입력 2023. 05. 15   14:49
업데이트 2023. 05. 1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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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의사로 봉사했던 최하진 박사와 환자였던 화가 이한식 선생이 보은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1997년 10월 24일 옛 부산여고 부지에 세운 높이 180cm의 병원터 기념비. 부산시와 서구청은 화단과 수목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눈에 잘 띄는 곳으로 이전했다. 부산광역시 서구청
당시 의사로 봉사했던 최하진 박사와 환자였던 화가 이한식 선생이 보은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1997년 10월 24일 옛 부산여고 부지에 세운 높이 180cm의 병원터 기념비. 부산시와 서구청은 화단과 수목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눈에 잘 띄는 곳으로 이전했다. 부산광역시 서구청

6·25전쟁 의료지원을 위해 1954년 한국에 온 독일(서독적십자병원)이 부산 서대신동 소재 옛 부산여고에 자리를 마련하고 1954년 5월 17일 첫 환자를 진료했다. 서독적십자병원은 이날을 개원일로 기념해왔다.

독일은 2018년 6월 6·25전쟁 68주년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방부로부터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이탈리아·인도 등 5개국에 이어 6번째 ‘6·25전쟁 의료지원국’으로 추가 지정 받았다. 이로써 6·25전쟁 유엔 참전국은 전투지원 16개국과 의료지원 6개국 등 22개 국가로 지정되었다.

국방부는 “늦었지만 독일 의료지원단의 희생과 봉사 정신을 역사의 일부로서 영원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를 검진하고 있는 서독적십자병원 의사. 사진=국방부
어린이를 검진하고 있는 서독적십자병원 의사. 사진=국방부

서독은 6·25전쟁의 총성이 아직 멈추지 않은 1953년 4월, 아데나워 수상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에게 야전병원을 한국에 파견하겠다는 제안을 했으며, 이어 4월 30일 할슈타인(Walter Hallstein) 외무차관이 함마슐드(Dag Hammarskjold) 유엔 사무총장에게 야전병원 파견을 제의했다. 유엔사무총장은 서독의 의료단 파견 제의에 대해 감사의 뜻 피력했다.

서독적십자병원은 1954년 1월 하순에 후베르(Gunter Huwer) 병원장 등 선발대가 서울역에 도착한 데 이어 1954년 2월 초 의사·간호사 48명이 도착해 부산의 부산여고에 자리한 후 개·보수를 하는 등 병원 개설을 준비했다.

병원은 5월 17일 첫 환자를 진료했으며, 이후 1959년 3월까지 서독적십자병원이라는 이름으로 환자 진료(30만여 명) 및 출산 지원(6000여 명), 의료진 양성 등의 의료지원활동을 펼쳤다.

서독적십자병원의 철수 또는 폐원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57년 11월 18일 한국 문교장관이 외무장관에게 서독 적십자병원이 사용하고 있는 부산여고의 교사를 반환해달라는 요청하면서 부터이다.

1958년 5월 28일, 바이츠(Heinrich Weitz) 서독적십자 총재는 한국에서의 구호사업을 중지한다고 발표했으며 이에 따라 1959년 3월 14일 폐원(임무 종료)했다. 병원측은 부산의대 및 전남의대에 의료 기재 기증했다.

독일이 2018년 이전까지 6·25전쟁 의료지원국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그 참여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2018년 5월에 열린 독일 6·25전쟁 의료지원활동 재조명 세미나.
2018년 5월에 열린 독일 6·25전쟁 의료지원활동 재조명 세미나.

그러나 국방부와 학계는 독일의 의료지원활동이 비록 정전 이후에 이뤄졌지만 ▲전쟁 기간 중 지원 의사를 전했고 ▲독일 의료지원단의 임무가 전후 구호사업이 아니라 유엔군 지원을 목표로 했으며 ▲유엔군 산하 의료기관으로서 활동했고 ▲기존 물자지원국 기준도 정전 이후 활동을 포함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2018년 독일을 6·25전쟁 의료지원국에 포함했다.

나아가 ▲ 미 보훈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6.25전쟁 기간이 정전협정 체결 후 불안한 평화협상 기간을 포함한 1955년 1월까지이며 ▲호주의 6·25전쟁 연금 범주가 1956년 4월 19일까지인 점도 독일의 의료지원 활동 시기 역시 6·25전쟁 기간에 해당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독일 6·25전쟁 의료지원 일지

1953년 4월 7일 서독 아데나워 수상,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야전병원 파견을 제안

1953년 4월 30일 서독 외무차관 할슈타인(Walter Hallstein), 유엔사무총장 함마슐드(Dag Hammarskjold)에게 야전병원 파견 제의(통보)

1953년 5월 4일 유엔사무총장, 유엔군사령부를 대신해 서독의 의료단 파견 제의에 대해 감사의 뜻 피력.

1953년 9월 23일 서독 유엔대표부는 유엔군사령부가 서독 제안을 수용했음을 확인.

1953년 12월 8일 할슈타인 서독 외무차관은 병원파견 제안을 서독정부에 보고, 공표.

1953년 12월 10일 당시 한국 보건부장관은 서독 정부가 한국의 보건사업을 원조하기 위해 의료구호사업을 파견한다고 국무총리에게 보고.

1954년 2월 12일 서독과 미국 정부 ‘한국에서 서독 적십자병원 지원 협정’ 체결.

1954년 2월 18일 서독 정부는 한국에 세워질 적십자병원의 설립 및 운영에 대해 유엔적십자사와 합의.

1954년 1월 하순 독일 선발대 서울역 도착 , 후베르(Gunter Huwer) 서독 적십자병원장은 병원 설치문제, 한국 의료사업에 대한 토의를 위해 보건부장관 등 의료관계자 방문.

1954년 2월 초 의사와 간호사 등 48명이 도착해 부산에 서독병원 개설을 준비.

1954년 4월 15일 한국민사원조사령부로부터 공식 구호기관으로 승인.

1954년 4월 24일 적십자병원 자리로 부산 서대신동 부산여고를 인수.

1954년 5월 17일 20여일간 부산여고 개·보수 후 첫 환자를 진료. 이날을 개원식으로 기념함.

1957년 5월 16일 이승만 대통령은 서독병원 개원 3주년에 병원의 업적을 기리는 친서를 전달.

1957년 11월 18일 한국 문교부 장관이 외무부 장관에게 서독 적십자병원이 사용하고 있는 부산여고 교사 반환 요청.

1958년 5월 28일 바이츠(Heinrich Weitz) 서독적십자 총재, 서독병원의 구호사업 중지 발표.

1959년 3월 14일 병원 폐원(임무 종료). 부산의대 및 전남의대에 의료 기재 기증.

1959년 3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에서 후베르 서독병원장에게 공익포장 수여.

1959년 3월 31일 정부는 주한 서독대사관에 서독적십자병원의 인도적 봉사에 대한 사의 공한 발송.

디지털기획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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