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利)로 시작해 의(義)로 끝나는 군생활

입력 2020. 08. 07   15:00
업데이트 2020. 08. 0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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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정 연 병장 
공군20전투비행단
노 정 연 병장 공군20전투비행단

전역을 앞두고 나는 입대 전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 한 자락을 떠올려보곤 한다. 나처럼 공군 입대가 예정돼 있었던 그 친구는 공군 업무에 관해서 사전 조사를 좀 해봤다고 했다. 훈련소에 가면 특기시험이라는 걸 치르는데 어느 특기가 소위 편한 보직으로 가는 지름길이니 되도록 그쪽을 지원해 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중의 하나가 ‘운항관제’였다. 훈련소에서 그 이름을 기억해낸 나는 용케도 그 특기를 배정받는 데 성공했고, 운항관제대 운항지원반으로 배속돼 조류/FOD처리병으로 1년 반을 근무했다.

충고처럼 건네줬던 친구의 그 말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속상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적지 않은 사람의 군대에 대한 인식이란 것이 이런 맥빠지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보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내가 속한 직책은 완벽한 항공작전 지원을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근무해야 하는 자리다.

조류/FOD처리병은 비행 상황을 코앞에서 확인하면서, 상공의 조류 출현이나 활주로 근처의 동물 출현과 같은 돌발상황을 목격할 경우 그것을 보고하고, 큰 소리를 내는 폭음통을 사용해 접근을 차단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한다. 근무 패턴 자체는 단순해서 정교한 전문성보다도 뚝심이 필요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운항관제가 편한 특기라는 선입견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로켓형 폭음탄으로 조류를 퇴치하는 초소 근무에 처음 투입됐을 무렵엔 전투기의 굉음이 시끄럽고 몇 시간이고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살짝 지겹기도 했다. 슬며시 딴청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곤 했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자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되려야 될 수가 없다. 이착륙하는 전투기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수충돌 등의 대형사고 예방이라는 본연의 역할이 절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그리고 겨울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비행 안전의 최전방에 서 있다.

무릇 직업이란 ‘이(利)’와 ‘의(義)’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군인이라는 직업은 더더욱 그렇다. ‘의’에 충실해 ‘이’를 놓치는 군인은 개인적인 삶의 즐거움을 손해 보는 데 그치지만, ‘이’에 눈이 멀어 ‘의’를 무시하는 군인은 나라와 사회를 해치게 된다. 입대 전에 들었던 친구의 조언이 새삼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만을 좇아 ‘의’를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조류/FOD처리병으로 근무하면서 깨달은 분명한 교훈이다. 나중에 나처럼 편한 보직 운운하는 데 이끌려 운항관제 직책을 받게 되는 병사가 또 생길지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 꼭 ‘이’로 시작해 ‘의’로 끝나는 군 생활을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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