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정 병영칼럼] 여름 삼겹살은 옳다

입력 2020. 08. 04   15:58
업데이트 2020. 08. 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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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은 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정 은 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본격 휴가철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휴가철 해외여행은 어렵게 됐고 많은 이가 국내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사람들과 덜 접촉하면서 휴가를 즐길 방법으로 백패킹과 자동차에서 숙식을 하는 ‘차박’이 유행이다. 뭐니 뭐니 해도 캠핑에는 바비큐 파티가 필수 코스다. 바비큐라 하지만 콕 집어 말하자면 ‘삽겹살 구이’다. 슈퍼마켓에서는 즉석에서 삽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도록 숯과 불화로 세트를 팔기도 한다. 간편하게 집에서 쓰던 고기 불판을 들고 와서 구워 먹는 사람들도 있고 연기에 눈 비벼 가며 토치로 불을 댕겨 바비큐 그릴에 직화로 구워 먹는 사람도 있다. 구워 먹는 방법은 다양해도 결국 메뉴는 ‘삼겹살’로 단결이다.

실제로 여름 휴가철에는 돼지고기 소비량이 늘어나고 양돈 농가에서도 여름에 맞춰 돼지 출하량을 늘린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삼겹살을 상추와 깻잎 등에 얹어 쌈을 싸서 먹기 때문에 여름에는 엽채류 소비도 함께 늘어난다. 군인들도 훈련이나 체육대회를 마치고 먹는 삼겹살을 군대 최고의 맛으로 꼽는다. 장병들의 삼겹살 구이 선호도가 아주 높아 2020년부터 군대에서도 월 1회 삼겹살 구이를 먹기로 했다는 걸 보니 사회에서나 군대에서나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영원한 모양이다.

하지만 여름에 마음 놓고 돼지고기를 먹은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사실 돼지고기는 여름에 먹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기피 음식이었다. 1960∼1970년대 뉴스에는 여름에 돼지고기를 잘못 먹고 병원 신세를 지거나 심지어 죽었다는 보도가 종종 등장했다. 냉장 유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 상한 돼지고기를 먹고 탈이 났던 것이다. 1990년대까지는 돼지고기를 구이로 먹을 때 주로 ‘냉동 삼겹살’을 썼다. 당시에는 고기의 냉장 유통이 드물고, 냉장 보관에 대한 소매점의 인식도 높지 않아서 상하지 않게 돼지고기를 꽁꽁 얼린 것이다. 근래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냉동 삼겹살이 다시 유행 중이다.

그런데 당시 쇠고기 먹고 탈이 났다는 이야기는 왜 없었을까? 솔직히 쇠고기는 비싸서 먹을 일도 드물었고, 구워 먹는 일은 더 어려웠다. 대체로 국으로 푹 끓여 먹거나 불고기로 먹었기 때문에 탈이 날 일도 많지 않았던 것이다. 예전에 한여름 결혼식을 피한 이유도 더운 날씨에 돼지고기가 상해 하객들이 곤욕을 치를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장례는 날짜를 정할 수 없으니 여름 장례식 때 나온 상한 돼지고기를 먹고 문상객들이 큰 탈이 나기도 했다.

축산 환경이 지금보다 열악했던 1980년대 이전에는 덜 익힌 돼지고기를 먹으면 기생충에 감염된다는 경고도 돼지고기를 피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제 다 옛날이야기다. 양돈 기술이 발달하고 잔반이나 인분을 먹여 돼지를 기르는 일도 거의 사라져 기생충 통제는 완벽하다. 만에 하나 기생충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시중에 유통 자체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돼지고기도 쇠고기 스테이크처럼 핏물이 비치는 ‘레어’ 상태로 먹기도 한다. 한국에도 돼지고기 육회를 파는 곳이 있다. 다만 돼지고기는 바짝 구워 먹어야 한다는 식습관이 굳어졌을 뿐이다. 여름 삼겹살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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