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한주를열며] 악당이 너무 많다

입력 2020. 06. 19   16:25
업데이트 2020. 06. 2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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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월간 ‘샘터’ 편집장
이종원 월간 ‘샘터’ 편집장


한때 유행하던 경제이론 중에 메기 효과(Catfish effect)라는 게 있다. 미꾸라지로 가득 찬 수조 안에 메기 한 마리를 같이 넣으면 천적을 피하느라 미꾸라지들의 움직임이 빨라져 더 싱싱하고 활기차게 오래 산다는 뜻이다. 조직 내 긴장감과 경쟁심을 자극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는 이 이론은 다수의 기업에 도입돼 구성원 간의 내부 경쟁을 유도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유용하게 활용돼 왔다.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안락한 환경보다 치열한 경쟁 환경이 개인과 조직의 발전에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메기 효과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많은 학자가 메기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실험실 이론’으로 평가절하하기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막강한 경쟁자의 출현이 긴장감을 유발해 당장은 활기찬 움직임을 보이는 것처럼 착시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수조 내 산소와 에너지 고갈, 급등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미꾸라지의 사망률만 높이게 된다는 것이다.

몇몇 유사한 실험 결과가 이런 반론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과학 전문 주간지 『사이언스(Science)』에도 소개된 미국 메뚜기에 관한 연구 결과다. 거미의 주둥이를 접착제로 봉해 잡아먹힐 위험이 없었지만 눈앞에서 천적이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메뚜기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에너지 소비가 많아지고 체내 질소 함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죽은 메뚜기와 정상 메뚜기의 사체 분해 과정에서도 큰 차이가 나타났다. 사체가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메뚜기는 질소 함량이 낮아 주변 토양의 미생물 성장을 둔화시키는 것으로 관찰됐다. 활기차게 오래 살기는커녕 스트레스로 인해 죽은 후에도 자연계 에너지의 리사이클 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메기 효과’ 논란에 대해 현재로선 선뜻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전에 한번은 미꾸라지나 메뚜기 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우리 삶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메기 효과는 미꾸라지나 메뚜기가 ‘활기차게 오래 살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숨이 멎을 듯한 공포와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죽을 때까지 포식자를 피해 ‘필사의 탈출’을 계속해야 하는 미꾸라지와 메뚜기 떼 편에서 잠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자세가 명확해진다.

메기 효과의 핵심은 ‘적당한 긴장감의 선’을 지키는 데 있다. 선을 넘는 순간, 온갖 선의는 사라지고 포식자의 악의만 남는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나쁜 의도를 갖고 일을 도모한 악당(惡黨)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바라는 마음, 원하는 결과를 위해 누군가 희생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산다면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에겐 흉악한 악당으로 비치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군 복무 기간에 나는 앞으로 사회에 나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살 것인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지금 세상엔 악당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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