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섭 한 주를 열며] 가보지 않은 길

입력 2020. 06. 12   15:45
업데이트 2020. 06. 1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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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섭 홍익대 초빙교수
최종섭 홍익대 초빙교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는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갈림길을 만난다. 가보지 않은 길엔 앞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선택이 어렵다. 부모 뒤만 따라다니던 아이나 편한 길로만 다니던 사람은 선택이 더욱 고통스럽다. 하지만 성숙한 어른이 되려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숲 속 길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경로를 선택하며 나아간다. 그동안 선진국이 걸어간 길을 따라갔던 우리나라의 경제와 안보는 이미 세계 10위권이 되었고 시민사회 역량, 한류 문화와 방역에서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속한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가는 길에 서 있다.

우리 군은 정전 상태에서 70년 가까이 이 나라를 안전하게 잘 지켜왔다. 6·25전쟁과 베트남전 등 전쟁을 경험해본 세대는 남아있지 않다. 우리가 당면한 안보상황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해졌다. 군은 ‘군사안보’를 넘어 다양한 위협에서 국가를 지켜야 하는 ‘인간안보’를 담당해야 한다. 이전 틀로는 크고 어려워진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국방개혁법이 2006년에 통과되었다. 시행 과정에서 군을 아끼는 많은 의견을 수렴하면서 강한 국군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무기·병균·금속이 인류 운명을 바꾼 요인이라고 했다. 현대에서도 강한 군사력과 과학기술, 질병관리 능력은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코로나19를 통해 우리 안에 내재한 잠재역량을 꺼내볼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선제적으로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한 대응계획을 세우고 훈련을 했다. 실제로 발생한 위기에서 길을 잃지 않게 이끌어 주었다. 현장 의료진이 보여준 창의적 대응과 헌신 또한 빛을 발했다. 대다수 시민이 이에 호응하여 ‘K-방역’이라는 성과를 만들었다.

선진 정예 강군을 바라보며 내실을 다져온 군은 세계 군사력 6위인 나라를 만들었다. 이제는 도약을 위해 냉철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다.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은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 10여 년 내에 사람 능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특이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군 지휘부는 다양해진 안보위협에 대비해 대응계획을 세워야 한다. 현장 지휘관은 창의력을 발휘한 훈련을 하며 K-국방을 준비할 시점이다.

2006년 이라크 자이툰부대 시찰단에 참가했었다. 우리 군대가 참 당당하고 자랑스러웠다. 지금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동체 저력을 믿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끌어 가길 바란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꿀 수 있다. 프로스트는 “사람들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내 운명이 달라졌다고 먼 훗날 어디선가 이야기할 거다”라고 했다. 담담하게 길을 찾아가는 우리 군에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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