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섭 한 주를 열며] 오만과 참견

입력 2020. 05. 15   16:10
업데이트 2020. 05. 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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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종 섭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최 종 섭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오만과 편견』은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쓴 장편소설이다. 오만해 보이는 남자와 편견을 가진 여자가 난관을 넘어서 결혼에 성공한다. 변변찮은 가문 출신 엘리자베스는 미래를 보장해줄 남편감 다아시를 ‘가치관이 맞지 않아’ 거부했다. 당시 기준으로 매우 파격적인 행동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부자가 예쁜 여자에게 반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녀 주인공이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다. 기존 질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간다.

오만하고 건방진 사람은 선을 넘는다. 가정에서 자녀가 가진 잠재력과 주체성을 존중하지 않는 부모는 자녀가 할 결정을 대신한다. 학교에서도 권위에 의존한 교육자는 학생이 가진 상상력과 발전 가능성을 억누른다. 사회생활에서 갑질은 권력 불균형 상황에서 약한 상대방이 성장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참견과 위협과 억압으로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 오만한 상대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자기가 지켜야 할 선을 분명히 지킬 용기를 내야 한다. 때론 이전에 누리던 혜택을 잃는 모험도 감수해야 한다.

최근 북한 최고 권력자 행방이 묘연해지자 비상사태 시 가상시나리오가 언론에 나왔다. 주변국이 북한에 진주해 지역을 분할하는 그림이 담담하게 소개됐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헌법 3조는 북한이 우리 영토라고 명시했다. 우리 영토에 외국 군대가 허락 없이 들어오면 내보내야 한다. 급변사태로 북한에 외국군이 진주하면 헌법을 수호해야 할 공직자는 누구든 이를 막아야 한다. 당연한 내용이지만 언론이나 전문가 중에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영토 주인으로 보내지 못한 세월이 길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다. 반정부 시위에 다른 나라 국기를 들고, 선거부정 의혹을 해결해 달라고 타국 게시판에 청원하는 이가 적지 않다. 2차 대전 후 한 나라였던 한반도를 갈라놓은 주체는 우리가 아니었다. 진한 혈연도 갈라놓은 채 보낸 75년 세월 고통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전범국가가 아니었지만, 힘이 없고 준비가 되지 않아 동강 났다.

안보와 경제 문제에서 어느 나라도 독불장군이 될 수 없다. 피차 각자 장점을 살려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협력국가 사이 힘이 균형을 유지할 수 없을 때 관심을 넘어선 참견이 발생한다. 자국 이익 우선인 상대방에게 오만할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 경험과 관례는 통하지 않는다. 상호 혜택과 성장으로 가는 길은 과감한 용기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인간 안보’를 강조했다. 전통 군사안보에서 더 나아가 재난·질병·환경문제 등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에 국가가 대처하겠다는 의지다. 확장된 국가안보에서도 군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과 통일시대를 준비하면서 우리 군은 영토를 지켜내야 할 강한 의지를 가지고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오만과 편견』이 쓰인 영국 도시 바스(Bath)에는 점령군 로마가 만든 온천이 남아있다. 그러나 진정한 주인은 초강대국이었던 로마가 아니다. 2000년간 그 땅에서 나고 자라고 죽어간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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