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입력 2020. 03. 29   14:18
업데이트 2020. 03. 29   14:40
0 댓글

박찬일 

요리사·칼럼니스트

아시겠지만 에스프레소 커피는 우리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의 밑바탕이다. 에스프레소를 뽑고, 거기에 물을 타서 만든다.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에서 유래했다. ‘espresso’란 ‘express’란 뜻이다. 


옛날 커피는 대부분 침출식이었다. 물을 붓고 오래 우려낸 후 마셨다. 이탈리아에서 고압으로 커피 가루에 압력을 넣어 순간적으로 뽑아내는 기계가 유행하면서 에스프레소(급속)란 이탈리아어가 표준어가 됐다. 

아메리카노도 이탈리아어다. ‘미국식의’란 뜻이다. 미국인들은 묽은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솔직히 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커피 마실 줄 모른다는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외국인은 예외다.

삼십 년 전 이탈리아에 처음 갔을 때 에스프레소를 마셔봤다. 쓰고 탕약 같아서 입에 쉬이 붙지 않았다. 놀랍게도, 열 번 정도 마셨더니 중독(?)이 되는 게 아닌가. 에센스랄까, 뭔가 농축된 것은 처음엔 어렵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놈의 에스프레소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파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최고급 호텔에서 팔았지만, 비싼 데다 도저히 에스프레소라고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른바 ‘크레마’(위에 갈색으로 덮인 거품)도 없는 엉터리였다. 그때는 호텔도 에스프레소를 어떻게 추출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는 친구가 정보를 주기를, 경복궁 옆 사간동 프랑스문화원에 가면 판다는 것이었다. 과연, 사실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허름한 기계로, 문화원 방문자에게 서비스하고 있었다. 꽤 그럴듯했지만, 최고의 맛은 물론 아니었다. 원두도, 기계도 그다지 좋지 않았으니까.

우리나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350잔을 넘는다고 한다. 하루에 한 잔 정도는 마시고 있는 셈이다. 특히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약어가 등장할 정도로 대중화됐고, 이런 고급 커피의 소비량이 늘고 있다. 몇 년 새 한국의 커피 수준은 세계 최상급이 됐다. 언제든 당장 최고급 원두를 사고 마실 수 있다. 이런 나라는 세계에 없다.

나 역시 하루 서너 잔의 드립 커피를 마신다. 가루 커피의 시대에서 금세 최고급 커피의 유행으로 돌아섰다. 아시아에서 커피 선진국은 본디 일본이었다. 커피 추출 기술을 발전시켰고, 고급 원두를 소비했다. 그런 일본도 이제는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드높아졌다. 한국은 뭘 한다고 하면 끝을 보는 정서랄까. 그런 점을 커피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처음 맛본 커피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맥스웰 가루 커피였다. 설탕을 타서(그때는 ‘프리마’라는 상표의 커피 크림이 나오기 전이었다) 마셨다.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독하고 우아한 향이 어린 나를 사로잡았다. 밤새워 공부한다고 커피 한 통을 설탕 섞어 친구들과 나눠 마시고 어마어마한 두통에 다음 날 시험을 망쳤던 기억도 있다.

가루 커피-에스프레소-드립 커피로 기호가 변했다. 군대 시절 여름에 장거리 행군을 할 때면 그리웠던 것이 설탕 듬뿍 타서 어머니가 냉장고에 넣어두던 다방커피식 아이스커피였다. 날이 슬슬 더워진다. 신세대 장병들은 갈증이 나면 ‘얼죽아’를 마시고 싶어질 테지.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