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강력한 매력에 전 세계가 빠지게 만든 일등공신..콘텐츠의 힘을 보여주다

입력 2020. 02. 27   17:00
업데이트 2020. 02. 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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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다-BTS가 만들어 가는 세상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낸 지 한 달여 만에 한류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7’로 빌보드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네 번째 1위를 예약했다. 이번 앨범이 1위를 하게 되면 2년 내 무려 4개 앨범이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작성하게 되는데, 이 기록을 보유한 가수는 BTS 이전에는 오직 비틀스밖에 없었다.



BTS와 봉준호는 지금 나란히 전 세계의 각종 차트를 함께 공략하는 중이다. 영국의 경우, 이미 영국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2관왕이 됐던 ‘기생충’이 개봉 17일 만에 영국 박스오피스 1위까지 차지하면서 영국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 흥행 신기록을 매일 갈아치우고 있는 가운데, BTS가 이번 새 앨범으로 영국 오피셜 차트 앨범 부문 1위를 예약해 놓은 상황. 바야흐로 한류 콘텐츠의 태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모양새다.

혐한의 나라 일본에서도 봉준호와 BTS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기생충: 반지하의 가족’이란 제목으로 절찬 상영 중인 영화 ‘기생충’은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더니 급기야 지난주부터는 일본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2주 연속 정상을 달리는 ‘기생충’의 현재까지 관람객은 220만 명을 돌파했고, 흥행 수입도 무려 33억 엔. 2005년 개봉한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기록(30억 엔)을 모두 깨고 무려 15년 만에 한국 영화 역대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여기에 BTS의 앨범은 판매를 개시하자마자 22만 장을 순식간에 팔아치우며 오리콘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앨범 차트 2위가 고작 2070장을 팔았다고 하니, 그야말로 ‘넘사벽’의 기록으로 앨범 차트를 석권해 버린 셈이다. 34회 일본 골드 디스크 어워드에서도 BTS는 ‘베스트 아시안 아티스트’를 비롯해 ‘베스트 5 싱글’ ‘베스트 뮤직비디오’ ‘송 오브 더 이어 바이 다운로드’까지 4개 부문의 수상이 결정됐다고 하니, 지금의 일본 열도는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의 세상이 돼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기록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은 이 두 콘텐츠가 모두 한국어로 창작되어 지극히 이질적인 요소들을 품은 채로 사랑받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나 음악이나 모두 세계인을 하나로 묶어주고 서로 소통하게 해주는 공용어 구실을 하고, 각자를 구성하는 다양한 표현요소가 사용된 언어와 함께 소비자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시장을 지배하는 콘텐츠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더 큰 친근감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갔던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 언어의 힘이 역으로 특정 언어의 콘텐츠들이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게 하였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어 콘텐츠가 사랑받으며 오히려 그런 콘텐츠들을 통해 한국어 자체가 강력한 매력을 가진 언어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정말 고무적인 현상이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품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소통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의 정서와 사고방식을 계속 탐구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더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혐한으로 자신의 치부(恥部)를 가리는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고 있고, 혐한으로 돈벌이하는 가짜 지식인들이 득세하고 있으며, 혐한을 조장하는 언론이 판치는 일본에서 ‘독도는 우리 땅’을 한국어로 듣고 부르는 일본인들을 만들어낸 것은 오로지 콘텐츠의 힘이다. 한국어를 차별의 근거로 삼던 세대가 아직도 건재한 일본에서 한국어로 노래하고 한국어로 소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쏟아지게 한 것도 오로지 콘텐츠의 힘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생충’이나 BTS의 앨범과 같은 콘텐츠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진리를 확신하고 있는 정체성 뚜렷한 창작자들을 양산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창작자들을 공장에서 물건 찍어 내듯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기에 다양한 고민과 지혜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혹자는 봉준호 감독의 생가를 복원하고, 봉준호 거리를 만들고, BTS 동상들이나 관련 조형물을 세우고, 한류 테마파크 등을 조성하면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은 정치인들의 의정 보고서에 들어갈 사진이나 그들을 도운 건설업자들을 도와주는 일일 뿐이다. 연습생들을 마구 격리 수용하면서 공장에서 찍어 내듯 아이돌들을 찍어 내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이런 창작자들을 양산하기 위한 시스템은 결코 아니다.

봉준호는 첫 영화를 찍고 상업영화 감독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BTS도 첫 앨범을 내고 ‘관종’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 곁에는 그들의 재능을 확신하고 그들에게 두 번 세 번 기회를 줄 수 있는 동료와 투자자들, 팬들이 있었다. 숨 막히는 경쟁의 톱니바퀴를 몸으로 막으며 재능 있는 창작자들에게 시간을 선물한 그들이 없었다면, 봉준호도, BTS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법과 자기만의 표현법을 구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는 지극히 이례적인 사례였다.

봉준호와 BTS의 성공을 보며 많은 사람이 한국어가 공용어가 되는 세상,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인정받는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독점과 차별이 여전하고 사리사욕이 공공의 이익이나 인권을 앞서는 한,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어쩌면 ‘기생충’의 엔딩이 아련한 꿈처럼 그려진 것이나 BTS가 “나의 고통이 있는 곳에 내가 숨 쉬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은 아닐까?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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