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무단통치 항거 이봉구선생 등 178명, 독립유공자 포상

입력 2019. 08. 13   09:42
업데이트 2019. 08. 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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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와 폭압에 항거해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고 고된 옥살이를 했던 이봉구(1897∼미상)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

‘3대 항일운동’으로 꼽히는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댕기머리 여학생 박기옥(1913∼1947) 선생과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했던 홍재하(1892∼1960) 선생에게는 각각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국가보훈처는 오는 15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봉구 선생을 포함해 모두 178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13일 밝혔다.

포상자는 건국훈장 독립장 1명, 애국장 8명, 애족장 40명, 건국포장 28명, 대통령표창 101명이다.

이봉구 선생은 1919년 4월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돼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시위 군중과 함께 장안면·우정면 사무소, 우정면 화수리 경관주재소 등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고, 특히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활동은 무단통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10년대 일제의 폭압에 가장 격렬하게 투쟁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박기옥 선생이 1929년 10월 30일 전남 나주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 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로 통학하던 중 일본인 학생들에게 희롱을 당한 사건은 광주학생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 194개 학교에서 5만4천여 명이 시위나 동맹휴교에 나서는 등 전국적인 독립운동이 전개됐고, 박 선생은 이듬해 1월 시험거부 백지동맹 등 학내 항일시위에 참여했다가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홍재하 선생은 ‘숨은 애국자’로 불린다. 1920년 1월 프랑스 최초 한인단체인 재법한국민회 조직에 참여해 그해 7월부터 제2대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특히 동료 한인들과 함께 1차 대전 전후복구 노동으로 힘들게 번 돈을 갹출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에 보내는 등 자금책 역할을 했다.

보훈처는 “선생에 대한 포상은 작년 일부 언론(연합뉴스 파리특파원)의 조명 이후 프랑스 거주 후손이 보관하고 있던 선생의 서신, 최신 연구논문 등을 통해 독립운동 공적을 확인함으로써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포상을 포함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건국훈장 1만1천14명, 건국포장 1천308명, 대통령표창 3천367명 등 총 1만5천689명(여성 444명)에 이른다.

보훈처는 유관기관과 사료수집 등의 협업을 활성화하고, 자료를 지속해서 수집해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디지털국방일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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