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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군사파견대, 미군·연합군의 ‘고지전투’ 승리 큰 기여

기사입력 2019. 06. 24   17:43 입력 2019. 06. 24   17: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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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미 육군 군사파견대의 고지전 보고서 
  

전쟁 현장 기록 위해 편성된 미 육군 군사파견대
1950년 10월 창설되어 이듬해 6·25전쟁 투입
1955년 3월까지 적군·아군 전투 분석… 전훈 도출
보고서, 교리로 만들고 전선 투입 전 참고 지시
티본 고지 습격·제인-러셀고지 공격 등 상세히 기록 

 
미 육군 군사파견대(MHD)가 작성한 1953년 2월의 제인-러셀 고지 전투에 관한 비밀 보고서 표지 원본.
1952년 10월 강원 철원 미7사단의 391고지 점령 당시 모습을 담은 항공사진.
미 육군 군사파견대(MHD)의 티본 고지 전투 비밀 보고서의 겉봉투 원본.

미 육군 군사파견대(MHD·US Army Military History Detachment)는 전쟁의 역사를 현장에서 기록하기 위해 편성된 부대였다.

이들의 임무는 전쟁·작전·전투 현장에서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연구·분석해 전사(戰史)로 기록하며, 전투부대의 작전 지원을 펼치는 것이었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전후(戰後)에 참고할 수 있는 전훈을 도출하는 역할을 했다. 적의 전투 수행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더불어 아군의 전투 흐름 전반을 함께 분석했다. 이 때문에 패배한 전투의 기록도 담았다. 일종의 복기인 셈이다.

MHD는 1950년 10월 창설돼 이듬해 한반도에 투입됐다. 또 1955년 3월 한국에서 활동을 종료하기까지 혹한과 실전 상황의 전장을 누비며 면밀히 살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들의 연구·분석은 당시 전투 작전 지원에 도움을 줬고, 특히 ‘고지전투’가 낯설었던 미군과 연합군의 고지 점령에 크게 기여했다. 미군은 MHD 보고서를 교리로 만들어 각 부대에 전달했고, 모든 장교에게 전선 투입 전 MHD 보고서 참고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군편소)가 2015년 공개한 『미 육군 6·25전쟁 연구분석 프로젝트』의 MHD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미 육군 6·25전쟁 연구분석 프로젝트』는 군편소가 2012~2013년에 걸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및 미 육군군사연구소와 협조해 수집한 6·25전쟁 관련 비밀해제 문서를 묶은 책자로, 2015년과 2016년에 나눠 발간한 바 있다. 아래는 그중 아직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MHD의 6·25전쟁 고지전투 관련 보고서 내용이다.


티본 고지 습격(Battalion Raid on the T-Bone, 1952. 10. 9~11)


1952년 10월 미2사단은 최전방 방어선인 제임스타운선의 일부를 맡았고, 전방에는 중화기로 무장한 중공군 6개 대대가 있었다. 얼마 뒤 중공군 113사단 340연대 장교 한 명이 귀순해 왔고, 중공군이 곧 대규모 공격을 해올 것이라고 밝혔다. 미2사단은 만반의 태세를 갖춘 가운데 10월 6일 중공군을 격퇴했으나, 중공군은 동측을 방어하던 국군9사단으로 돌파구를 뚫었다. 미2사단은 방어선을 남측으로 옮기고 적 후방을 공격해 유리한 여건을 만들고자 예하 미9연대로 하여금 경기 연천 역곡천 지류 인근 티본 고지 습격을 지시했다.

티본 스테이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티본 고지는 290고지로, 적 지역에 있던 가장 높은 고지였다. 미9연대는 10월 10일 오후 8시50분 공격개시선을 통과했고, 중공군 매복조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이튿날 오전 3시께 적의 거센 반격과 중화기의 집중 사격을 받고 퇴각했다. 미9연대는 전사 2명, 부상 60명의 피해를 입었다. MHD는 이 보고서에서는 적 종심에 있는 목표를 기습할 때의 고려사항, 작전 계획과 실시간 사이 차이점 등의 전훈을 담았다. 또 작전의 계획, 수정 보완, 명령하달 등 작전절차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중공군의 제인-러셀고지 공격(Chinese Attack on Hill Jane Russel, 1952. 10. 16~20)

제인-러셀고지 보고서는 약 30쪽으로 다른 보고서에 비해 분량은 적지만, 전훈을 교육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2년 10월 9일 미10군단은 작전계획 32호를 하달했다. 작전목표는 중공군 전초기지인 598고지군을 공격해 점령하는 것. 강원 철원 오성산 일대 598고지군은 당시 미국 유명 여배우의 이름을 딴 제인-러셀고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공격부대로 선정된 미7사단 31연대는 10월 13일 공격대기지점에 집결, 10월 14일 오전 6시 고지를 공격해 일시 점령했으나 같은 날 오후 8시35분 중공군의 역습으로 피탈당했다.

10월 15일 미7사단 예하 공격부대들이 일제히 공격을 재개했는데, 주요 공방전이 제인-러셀고지에서 이뤄졌다. 이튿날까지 점령과 피탈이 반복됐고 중공군의 박격포 사격과 야간 기습도 끊이지 않았다. 10월 20일까지 전투가 계속됐고, 미7사단은 점령한 지역을 끝내 사수했다. MHD는 보고서에서 상급부대의 명령이 하달된 후 상황의 급박한 변화에 소부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기술했다. 또 목표 달성과 부대 생존이라는 갈등 요소가 민첩한 리더십과 순조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동시 달성이 가능하다고 작성했다.


해리 전초기지에 대한 적 기습(An Enemy Raid on Outpost Harry, 1953. 3)

해리 고지에 관한 보고서는 6·25전쟁 말기 격전지였던 금화지구 철의 삼각지에서 벌어진 전투를 담고 있다. 1953년 4월 1일 중공군은 해리 전초기지 일대에 포격을 집중했고, 미3사단 15연대는 분석 결과 중공군 1개 중대 규모가 공격해 올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미15연대는 예하 1개 중대를 전방에 배치했다. 드디어 4월 2일 오후 10시께 중공군 공격이 개시됐고, 치열했던 전투는 4월 3일 오전 4시께에 이르러서 소강상태를 보였다.

MHD가 작성한 이 문서는 해리 전초기지의 진지 배치, 화력·장애물 설치, 포병 화력 계획 등을 기록하고 있다. 문서에는 당시 책임부대였던 미3사단 15연대 2대대가 교전을 벌였던 중공군은 약 2개 소대의 교육훈련 및 장비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117고지 전초기지 전투 (Action on Outpost 117, 1952. 7)

117고지 전투는 해당 전투가 종료된 1952년 8월부터 자료수집 및 인터뷰가 진행돼 1952년 말부터 작성됐다. 117고지는 임진강 서측 미3사단 15연대 3대대가 배치됐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15연대는 117고지를 포함해 6개 전초기지를 운영하며 병력의 배치와 철수를 반복했다.

117고지는 차지하는 측에 유리한 점이 많아서 고지 서북방에서 대치하던 중공군39병단과 북한군115·116사단은 호시탐탐 미군이 선점한 전초기지를 노렸다. 그러던 중 1952년 8월 13일 공산군과 미군의 교전이 벌어졌다. 교전은 점점 확대되고 장기화해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8월 15일 오후 2시 미군의 고지 재점령으로 일단락됐다. MHD는 이 전투에 대해 정전협정 기간 중 벌어진 고지전·진지쟁탈전의 전형으로 분석했다. 


글=서현우 기자/사진=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서현우 기자 < july3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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