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버전보기

국방일보

2019.07.22(월)

속보 보러가기
오피니언  < 병영의 창

[병영의 창] 새로운 멀미를 꿈꾸며

기사입력 2019. 06. 14   14:07 입력 2019. 06. 16   10:02 수정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카카오톡 바로가기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고


김동은 중위

육군미사일사령부


‘땅 멀미’라는 말이 있다. 배를 타면 보통은 뱃멀미를 하는데, 어느 정도 배의 흔들림에 익숙해지고 나면 멀미가 마법처럼 잦아든다. 그러나 항해를 마치고 다시 육지에 발을 디디면 마치 육지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을 ‘땅 멀미’라고 부른다. 유연함과 흔들림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낯선 단단함. 바쁜 일상과 새로운 도전을 병행하며 정신이 없던 중에, 얼마 전 집중정신전력교육이 끝나고 전입해 온 지 얼마 안 된 용사가 심리적 멀미를 느낀다며 찾아왔다.

“사회에 있을 땐 정처 없이 유랑하며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자유는 제게 귀속된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그 자유로 규정된 틀을 깨고 무언가 이뤄갈 때 저는 살아있다고 느꼈습니다”라고 운을 뗀 용사는 규정된 프레임과 강도 높은 훈련 속에서 국가를 수호하는 전사(戰士)로 거듭나는 과정에 지나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용사는 실제로 심한 현기증과 멀미를 호소했다. 이제 갓 이등병이 된 용사는 본인의 욕구와 현실적 부담 사이의 괴리를 느끼고 있었다. 다행히도 최근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사진)라는 책 덕분에 나는 용사에게 따뜻하면서도 유효한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책에서 작가는 집필을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가 비자 신청 문제로 단 하루 만에 추방당해 귀국한 사례를 제시하며 이로 인한 심리적 멀미와 대처 방안을 풀어낸다. 추방은 단순히 쫓겨난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한 세계로부터의 이탈과 분리를 함의한다. 추방을 마주했을 당시에는 그 사실 자체로 황당함과 무력감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며, 복합적 감정으로 인한 멀미 증세를 이겨내는 첫째 방법은 인정과 수용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멀미는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부수고 나가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현실을 인정하고 담담히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일 수도 있다고.

나는 용사에게 작가의 말을 나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면서도 자신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군대라는 조직에 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고 받아들이기를 차분히 권유했다. 네가 속했던 사회라는 바다에서 이탈해 이제는 군대라는 새로운 땅을 디디며 시작했음을 눈을 감고 떠올려 보라고 얘기했다. 울렁이는 바다를 유랑하다가 새로운 육지에 닿아 그 세계에 발을 내딛는 첫 순간을. 비록 지금은 땅 멀미를 느끼며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 멀미는 너를 한 차원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할 매개체이고, 언젠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듣는 용사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다.

땅속 깊이 하늘의 열기가 서리는 6월이다. 많은 이가 전역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동시에 새로운 이들이 각자만의 멀미를 느끼며 새 땅에 정착하는 시기다. 비록 멀미를 겪는 과정은 힘들겠지만, 장병 각자가 새로운 멀미를 꿈꾸며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0

의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