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 병영칼럼] 공항철도의 즐거움

입력 2019. 06. 13   14:52
업데이트 2019. 06. 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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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 미술평론가
황인 미술평론가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여도 / 프랑스는 너무도 멀다 / 아쉬운 대로 새 양복을 입고서 / 무작정 여행길에 나서자. // 기차가 산길을 지날 때 / 물빛 창문에 기대어 / 나 홀로 즐거운 일을 떠올려 보자 / 5월 이른 새벽에 / 어린싹 움트는 듯한 마음인 채.”(하기와라 사쿠타로, 여상(旅上))

100년 전의 시다. 당시 프랑스에 가려면 배를 타야만 했다. 요코하마에서 출발하여 수에즈 운하를 거쳐 마르세유에 도착하는, 한 달 이상이 걸리는 항로였다.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열두 시간이면 파리에 도착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100년 전 시인의 마음처럼 여전히 너무나 멀다.

여행은 즐겁다. 해외여행은 특히 그렇다. 그러나 아무 데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통이 발달한 요즘도 해외여행은 만만하지가 않다. 돈과 시간과 체력이 다 필요하다. 이걸 다 갖춘 경우는 드물다. 일상 속에서 해외여행의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공항철도를 타면 된다.

공항철도는 서울역과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노선이다. 해외여행객과 김포·인천 등지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승객들이 이용한다. 운임은 일반 지하철과 같다. 게다가 고속으로 달리니 가성비가 월등하다. 피부 빛깔과 언어가 다른 세계인들이 이용한다는 점에서 수도권의 일반적인 노선의 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여러 나라를 오가는 국제열차를 방불케 한다. 여행객들이 들고 온 배낭이나 캐리어가 객실을 메운다.

한국이 처음인 여행객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불안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묘한 생명감각의 몸짓과 표정이 나온다. 한강을 지날 땐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한강 상류의 여의도 빌딩 숲을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멀리서 매력적인 풍광의 북한산이 나타나면 지리학을 공부하는 눈빛이 된다. 헤드폰을 끼고선 음악 삼매경에 빠진 도사풍의 여행객이 있는가 하면, 틈틈이 여행 안내서를 꺼내 놓고 일정을 챙기는 부지런한 여행객도 있다. 열심히 구글링하며 서울의 여행정보를 얻는 신감각파도 있다.

인천국제공항을 떠난 열차는 김포공항에 와서 여행객을 더 태운다. 주로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서 출발한 여행객들이다. 그리고 홍대입구역을 거쳐 종점인 서울역에 정차한다. 홍대입구역에서는 많은 숫자의 젊은 외국인 관광객이 내린다. 다들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자신감이 넘쳐 여름에 겨울옷을 입은 사람, 겨울에 여름옷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이 출발했던 여러 도시의 공기는 몸의 옷 속에 품어진 채 공항철도에 실려 서울의 대기 속으로 스며든다. 서울에 새로운 에너지가 공급된다.

세계적인 핫 플레이스인 경의선 숲길 공원은 당일 도착한 젊은 해외여행객들의 열기로 뜨겁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캔맥주를 마시며 황홀한 서울의 여름밤을 만끽한다. 일상이 답답하고 지루하다면 짬을 내어 슬쩍 이들의 열기에 합류하는 것도 좋다. 인천국제공항을 왕복할 만한 돈과 시간에 적극적인 몸과 풍부한 상상력을 더하여 파리와 뉴욕, 도쿄 등 먼 곳을 실감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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