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영 병영칼럼] 패러다임의 전환

입력 2019. 06. 10   16:16
업데이트 2019. 06. 1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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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인 영 
과학·미술 칼럼니스트
노 인 영 과학·미술 칼럼니스트


과학사의 큰 변곡점에는 예외 없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 잡는 과정은 지난(至難)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패러다임, 지동설을 받아들이기까지 무려 2000년이나 걸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하는 물체는 ‘멈추려 하는’ 본성이 있다고 했다. 인간의 직관도 이에 수긍한다. 그러나 16세기 말 갈릴레이에 와서야 ‘현재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 오히려 본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면에서 만물의 근원에 대해 가장 극적인 답을 제시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피타고라스다. 그는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에서 비례를 발견한 최초의 물리학자다. 망치 무게 차이가 1:2일 땐 1옥타브, 2:3일 땐 5도 음정, 3:4일 땐 4도 음정을 나타낸다. 현의 길이에도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그 시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즉 직관을 넘어 수(數)를 질서로 하는 자연의 규칙을 밝혀냈다. 그 수는 1, 2, 3과 같은 자연수 또는 자연수로 만들어진 분수(有理數·rational number)를 의미한다. 수비학(數秘學)으로 발전했다.

수비학은 숫자와 사람, 장소, 사물, 문화 사이에 숨겨진 의미와 연관성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행운의 수 7, 요한계시록의 666, 죽을 4가 그 예다. 타로도 형식에서 수비학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오르페우스교라는 종교집단으로 변모하면서 경직성이 나타났다. 어느 날 제자 히파소스가 자연수로 설명되지 않는 수를 발견했다. 직삼각형 변의 길이가 각각 1일 때 빗변의 길이가 그것으로, √2(루트 2)가 답이다. 오늘날 무리수(無理數·irrational number)라 불린다. 분수로 고칠 수 없는 수이며, 소수점 아래의 수가 반복되지 않고 무한히 계속되는 소수다.

그는 이 사실을 스승에게 알렸다. 하지만 스승인 피타고라스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치에 맞지 않는 미친 수(알로고스·‘침묵’이란 뜻)’라며, 외부인에게 절대 발설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이 미친 수의 비밀을 파헤치던 히파소스가 어느 날 우물에 빠진 시체로 발견됐다.

피타고라스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이가 플라톤이다. 그는 선·면·도형 등 기하학을 통해 자연의 질서를 서술하려고 했다. 기원전 386년 아카데메이아를 설립하면서 입구 현판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라’고 썼다. 이곳 학생이던 유클리드가 기하학 서적 『원론』을 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학은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을 통해 겸손과 자기부정을 배웠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언제나 생각을 바꾸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했다.

삶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린 현재의 연속선 상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혼재된 세상을 산다. 그중 알기 어려운 것이 미래다. 기존 인식에 갇혀 세상을 보기에 그렇다. 따라서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비로소 미래를 보는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이에 따라 행동이 바뀌게 된다. “자신의 무지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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