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걸 병영칼럼] 창공구락부(蒼空俱樂部), 군번 없는 용사들

입력 2019. 06. 06   14:57
업데이트 2019. 06. 06   15:14
0 댓글

이형걸 경희대 겸임교수·전 공군본부 정훈공보실장
이형걸 경희대 겸임교수·전 공군본부 정훈공보실장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빨리 찾아왔다. 5월에는 폭염주의보까지 발효됐다. 기온이 점차 올라가는 뜨거운 6월은 전쟁의 아픈 기억까지 겹친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국군이 창설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북한은 전쟁을 일으켰고, 우린 전투기는 고사하고 탱크 한 대 보유하지 못한 군대로 그 남침을 저지해야만 했다. 6·25전쟁은 내전이자 국제전이었고 이데올로기전이며, 사변이었다. 모든 젊은이는 전선으로 나가야 했고, 학생들도 군번 없이 총을 들었다.

당시 군번 없이 전선에서 또 다른 전쟁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종군작가단이다. 전쟁으로 창작활동의 폭이 좁아진 시인·소설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육·해·공군에 편성된 문인 중, 공군에 속한 문인들은 ‘창공구락부’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활동했다. 창공구락부 단원은 아동문학가 마해송을 단장으로 김동리·조지훈·최인욱·박두진·박목월·전숙희·황순원 등, 한국 문학사에 발자취를 짙게 남긴 거장들이었다.

그들은 전선을 오고 가며 장병들의 전의를 고양하고, 전선의 소식을 후방에 전했다. 강연과 문학회·좌담회를 열고, 선무활동도 전개했다. 그때 발간했던 ‘공군 순보’(후에 코메트(Comet)로 제호 바꿈)와 ‘에어맨즈 위클리’는 전시 최고 수준의 문화교양지였다. 일반인도 더러 구독했다고 한다. 전선의 장병들은 총칼의 승리뿐만 아니고 문화의 승리가 필요했다. 동족이지만 왜 그들과 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고 북한의 사상전에 자유의 정신으로 맞섰다.

시인 박목월은 ‘날개’에서 “난다. 젊음을 사루는 불의 날개//난다. 자유를 수호하려는 이념의 날개//난다. 겨레와 조국을 지키려는 젊은 겨드랑이에 돋아나는 순정의 날개”라고 출격하는 조종사를 격려했다. 조지훈은 “나라 위한 정성으로/애태우며 일하는 몸/기름때 묻은 옷도 그 맘으로 자랑이다./폭탄을 실어주마/로켓트를 달아주마”라는 ‘정비사의 노래’에서 애달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창공구락부 문인들은 차가운 비행기와 미사일에 조국애로 숨결을 불어넣고, 용맹한 전사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두려움을 멈추게 했다. 이외에도 많은 수필과 소설, 논단의 글로 장병들은 조국수호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며 그것이 역사의 책무임을 알았다. 공군 정신의 원형을 탐구하고자 시도했던 『오래된 미래』(2018)에서 이윤식 작가는 이를 ‘펜의 전쟁’이라고 지칭했다. 전투 상보로 기록되진 못하는 총성 없는 전투였다.

공군은 오래전 창공구락부 작가들의 작품, 공군과 잠시 인연을 맺었던 문인단체 ‘창공클럽’ 회원들의 시 그리고 장병들의 진중 시를 모아 『공감』 시집을 발간했다. 태양이 뜨거운 6월에 다시금 이 시를 음미해보니 병영 문학의 진수요, 군대 문학의 총합으로 정신전력의 창끝이라 하겠다.

지난 9·19 군사합의로 남북의 군사적 대치는 점차 줄어들고, 항구적 평화체제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이제 그날이 오면 ‘창공구락부의 후예’들이 DMZ에서 평화의 전송가를 불러주리라 기다려본다. 그러나 빈틈없는 대비태세는 우리 군의 변하지 않는 임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