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사 12월 5일] 1945년 군사영어학교 창설

입력 2018. 12. 04   17:03
업데이트 2018. 12. 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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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4월 30일 폐교될 때까지 총 200명이 입교해 110명 졸업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위치했던 군사영어학교 건물. 군사영어학교는 1946년 2월 27일 태릉 현재 육군사관학교 자리로 이전했다.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위치했던 군사영어학교 건물. 군사영어학교는 1946년 2월 27일 태릉 현재 육군사관학교 자리로 이전했다.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위치했던 군사영어학교 건물. 군사영어학교는 1946년 2월 27일 태릉 현재 육군사관학교 자리로 이전했다.


1946년 1월 15일 군사영어학교(Military Language School)가 문을 열었다. 광복 후 우리나라 최초의 장교 양성기관이다. 


군사영어학교는 당시 서대문구 냉천동에 위치한 감리교 신학교 안에 위치해 있었다. 지금도 감리교 신학대학 내에 본관 건물 모습이 남아 있다.  


당시 미 군정청은 국방경비대 창설을 앞두고 무엇보다 건군 요원과 통역관 등 간부 양성을 고려했다. 미 군정청은 군사영어학교 의 입교 자격으로 준사관 이상의 중등학교를 졸업한 군 경력자라는 제한을 두었다. 


최초 일본군·만주군·광복군 출신으로 나눠 20명씩 선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광복군 출신들은 일본군 출신을 선발하고자 하는데 대한 거부감과 함께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응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군사영어학교(교장 미군 리스 소령)에 입교한 이들은 당시 부교장으로 임명된 만주군 중교(현재 중령급) 출신의 원용덕과 미 군정 고문이었던 일본군 대좌(대령) 출신인 이응준이 추천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들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군사훈련 과정은 별도로 없었으, 교육 내용은 ‘군사영어’로서 중대·대대·연대·사단 같은 단위부대 이름과 작전 및 훈련 용어, 간단한 일상용어 같은 기초영어를 가르치는 과정이었다. 


군사영어학교는 1946년 4월 30일 폐교될 때까지 총 200명이 입교해 110명이 졸업했다. 일본 육사 출신 13명을 포함한 일본군 출신이 87명, 만주군 출신이 21명, 광복군 출신이 2명이었다. 


군사영어학교 뒤를 이어 국군 장교 양성기관으로 5월 1일 태릉에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창설되었다.  


한국군 초기 장교단은 이렇듯 군사영어학교 출신들의 압도적인 인원으로 구성되었으나 후에 철기 이범석은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면서 육군사관학교 입교생 확대와 특별기 임관제도를 통해 광복군 출신들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일본군·만주군 위주의 초기 장교단 인원 비율을 뒤바꿀 수 있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은 1968년까지 한국군의 수뇌부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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