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표하고 전시관에 태극기 게양 우리 것 알렸다

입력 2014. 03. 23   17:57
업데이트 2014. 03. 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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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계박람회에 태극기 휘날리다


47개국 참가 시카고 박람회서 조선의 국기 세계에 전파

美철도회사 로고 태극문양서 유래…양국관계 돈독해져

 

●미국철도회사의 태극문양 로고


 1888년 1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대조선공사관이 설치돼 태극기가 게양되고, 1889년에는 공사관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호레이스 알렌이 태극기를 표지디자인으로 활용한 ‘대죠션’이라는 책을 펴냈으나 미국인들의 태극기에 대한 인식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태극기가 성조기를 제외하고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고 조선과 미국의 관계가 오늘처럼 돈독할 수 있을 만한 계기가 있었다. 즉, 미국의 북태평양철도회사가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조선전시관에 게양된 태극기(사진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태극 도안을 상표로 제작,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②)


 그러나 역사는 조선과 미국의 편이 아니었다. 청일전쟁·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의 한반도 침탈로 태극기는 미국인들에게서 멀어졌다. 애국적인 재미 교민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을 호소했지만, 미국인들은 태극기에 주목하지 않았고 독립 호소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간악한 일제 침략자들이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할 때까지!


 흥미로운 것은 문제의 철도회사가 1893년부터 다른 회사에 합병되던 1970년까지 태극 로고를 다양하게 사용했으며, 안내책자를 통해 자신의 로고가 태극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널리 홍보했다는 사실이다. (사진③·④)

 이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태극기가 미국과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시카고 세계박람회를 우선 소개하고자 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400주년 기념사업 일환으로 기획된 시카고 세계박람회는 국제적으로 미국의 경제적·정치적 위상을 드높인 극적인 이벤트였다.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만 6개월 동안 시카고 잭슨 공원에서 개최된 박람회에는 조선을 비롯한 세계 47개국이 참가하고 총 2750만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세계박람회 참가는 고종의 의지


 조선정부가 국가전시관을 만들어 세계박람회에 최초로 참가한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미국에서 발간한 책들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박람회에 참가해 달라는 초청장을 받았을 때 조선정부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조선 국왕의 마음속에는 자국 제품은 물론 관습과 풍습을 대규모 국제행사를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야겠다는 소망이 자리 잡았다. 박람회 참가 여부와 전시품 선정 기획자는 바로 국왕이었다. 은둔 나라의 세습 왕인 그가 세계박람회에 참가하기로 하고 연출가로서의 열정까지 보인 것은 놀라운 일이다.” (The World’s Fair, Being a Pictorial History of the Columbian Exposition·1893년, 591쪽)

 “조선의 국왕은 조선 주재 미국공사관 서기관에게 25톤 이상의 전시품을 위탁했는데, 대부분 왕실이 제공한 것이다.” (The Book of the Fair, 1893년, 219쪽)

 위 내용을 보면 조선의 박람회 참가 목적은 국가 홍보였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왕이 조선에 주재하는 미국공사관 서기관이던 호레이스 알렌에게 40피트짜리 대형 컨테이너 1개에 실을 만큼의 전시품을 위탁했다는 사실이다.

갑신정변 때 민영익의 목숨을 구해 준 알렌은 1888년 조선의 외교관(참사관)으로 미국에 파견돼 워싱턴 DC의 조선공사관 설치에 기여하고, 이듬해에는 조선홍보 책자 ‘대죠션’을 집필했으며, 1890년부터는 조선주재 미국공사관 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비록 미국공사관 서기관이었지만 고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그는 전시품과 함께 시카고로 먼저 가 조선전시관 설치에 협조했다. 또 조선 대표들이 태극기가 게양된 전시관을 운영하며, 축하연회를 개최하는 등 홍보활동을 벌이고, 미국 대통령과 저명인사들을 만나 외교활동을 전개하는 데 도움을 준 것도 바로 알렌이었다.
 당시 조선정부에서는 정경원 등 운영요원 3명과 악사(樂士) 10명을 파견했는데 박람회 조직위원회 명부에는 이채연 주미조선공사, 조선왕실에서 파견된 정경원과 이승수 등 3명의 이름이 등재돼 있다. (Photographic History of World’s Fair· 1893년, 324쪽)


●조선전시관(朝鮮展示館)의 전시품

 조선 전시품에 관해 당시 책자들은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조선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제품은 질·색상 면에서 뛰어난 종이다. 면과 삼베·비단 등 직물은 일반적으로 질이 우수해 보이지는 않으나 특이하게 제작됐다. 대단한 야생동물 사냥꾼인 조선인들은 호랑이·사슴·조류·여우·표범·사향노루 가죽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의상전문가들이기도 하다.

 가공식품으로는 말린 생선과 홍합·젓갈류, 중국의 멧돼지 요리와 비슷한 훈제 햄·마른 버섯·곶감·견과류 강정·꿀·식용기름·죽순·전통 소주 등이 출품됐다.

 왕의 만찬용 유기(鍮器 : 놋쇠로 만든 그릇) 세트를 포함한 식기 및 주방용품 일습, 쌀 씻는 골이 팬 그릇, 은제품 국자(鞠子), 금장식 젓가락, 보석류 등도 보인다. 조선 왕이 출품한 물품 중 끽연(喫煙) 도구 일습이 보이는 것을 보면 그는 애연가(愛煙家)임이 분명하다.

 조선의 전시품 중에는 100여 종에 달하는 의상들이 포함돼 있다. 얇고 번쩍이는 비단에 금수를 놓은 궁중의상에서부터 다채로운 빛깔의 왕 사냥 옷까지 실로 다양하다. 전시품 중에서는 옛날 갑옷 두 세트도 포함됐으며, 사냥과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도 선보였는데 창·활·화살·총포·말안장과 굴레 그리고 장식용 마구(馬具) 등이 그것이다.

 악기는 장고·당비파·양금·해금·거문고·생황·용고·대금·피리 등이 출품됐다. 전시품은 천연보석, 고가의 옛 도자기 등도 포함됐으며, 조선 왕은 전시품을 미국 박물관에 기증토록 지시했다고 한다. (The World’s Fair·591~592쪽)

 ‘The Book of the Fair’(박람회 도감)는 위 전시품 이외에 자수병풍·화문석 돗자리·발·가마·목수의 도구·장(欌)·나전칠기·담뱃갑·도자기·곡물·견과류·얼레(연줄을 감는 기구)·장기판·바둑판·촛대·비녀도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특히 한약재를 언급하면서 중국인들이 인삼을 오염된 물의 섭취로 발생하는 질환에 특효가 있다며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과 인삼이 금값과 맞먹는 대표적인 조선의 특산품이라고 소개했다. (위의 책, 221쪽)

 그러나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조선전시품 중 압권은 전시관 지붕과 입구 전면에 게양된 태극기였음을 독자들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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