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열전-육군1사단 육탄연대

입력 2011. 01. 13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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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121차례 전투서 `무패 신화' 창조


육군1사단 육탄연대 장병들이 살신구국의 육탄혼으로 무장한 채 서부전선
최전방 GOP 철책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정의훈 기자

연대급 단위부대로는 육군 최초로 창설된 부대로 송악산 전투에서 살신구국의 육탄10용사 신화를 창조했고 6ㆍ25전쟁 최대의 격전지인 다부동 전투에서 세 배 규모의 적을 섬멸한 것은 물론 베티고지 전투에서 1개 소대가 적 2개 대대를 격파했으며, 연대급 부대로서는 최초로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한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지닌 부대. 육군1사단 육탄연대는 정말로 자랑거리가 많은 부대다.

1948년 5월 1일 경기 수원에서 박진경 중령을 초대 연대장으로 창설된 육탄연대는 육군 최초의 연대급 창설부대라는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다. 물론 이전에 창설된 부대들도 있었지만 그 부대들은 모두 대대급 부대로 창설해 연대로 증편한 것. 연대급 부대로 창설된 부대는 육탄연대가 처음이다.

이에 대해 1대대 1중대 1소대장으로 최전방 GOP 소초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김한신 소위는 “최초로 창설된 연대급 부대의 가장 첫 소대장, 즉 육군을 대표하는 ‘1번 장교’로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자부심도 느낀다”며 “언제나 가장 먼저 가장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장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창설 직후 곧바로 제주도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돼 부대의 명성을 드높였고 49년 1월 10일 수원에서 문산으로 이전해 38선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바로 이 시기에 발생한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한국군의 전사에 길이 남을 육탄10용사의 신화를 창조,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육탄부대’라는 명칭을 하사받았다.

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연대는 같은 해 8월 14일 다부동 전투에 투입돼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이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북으로 진격해 평양에 입성하는 영광까지 누리기도 했다. 53년에는 휴전을 눈앞에 두고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 속에서 중공군 2개 대대를 1개 소대로 막아낸 베티고지 전투를 통해 김만술 소위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연대는 6·25전쟁 중 총 121회 전투에 참가해 단 한번도 패하지 않는 전사에 길이 남을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연대급 부대로서는 최초로 53년 9월 9일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베티고지 전투의 영웅 김만술 소위에 이어 2대대 6중대 2소대장을 맡고 있는 김정식 소위는 “소대원 모두 육탄정신으로 단단히 무장돼 있어 적의 어떤 위협에도 당당히 맞설 자신이 있다”며 “58년 전 베티고지 전투의 영웅 김만술 소위의 육탄정신을 이어받아 육군을 대표하는 최정예 소대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휴전 이후 연대는 포천ㆍ양구ㆍ가평 등 9회에 걸쳐 부대 이동을 한 끝에 71년 3월 6일 현재의 파주지역으로 이동했고 93년 3월 1일부터는 GOP 경계임무를 인수받아 현재까지 완벽한 경계대비태세와 실전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즉각대응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육탄정신에 더해 효율적인 GOP경계 시스템 구축, 병영문화의 근본적인 개선 등을 통해 지난해에는 군단 선봉연대에 선정됨과 동시에 연대 전술훈련(RCT) 최우수부대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박격포·폭약 안고 北 토치카 돌진

부대명칭 유래-육탄 10용사

경기도 파주시 문산역 인근의 통일공원에 있는 육탄 10용사상.

살신구국의 표상 육탄10용사의 영웅적 전사는 6ㆍ25전쟁 발발 전인 1949년 5월 4일 개성 송악산전투에서 쓰여진다.

 49년 4월 25일부터 개성 남천에서 남하하던 북한군 1000여 명(1사단 3연대 주축)이 5월 3일에 이르러 38선 이남의 송악산 능선을 따라 기습 남침, 송악산 일대와 292 고지선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개성에 주둔 중이던 연대의 2대대를 향해 공격준비 태세를 취하면서 육탄10용사의 신화는 시작된다.

이 상황에서 국군은 병력을 증강하기 위해 이미 진지를 구축하고 이곳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2대대에 더해 문산에 주둔 중이던 1대대의 3ㆍ4중대를 증원, 개성에 급파하고 행군차 연안으로 이동하던 ‘하사관교육대’를 개성으로 반전시켰다.

이러던 중 이날 오후 11시쯤 292고지 동남방 약 50m 지점에 있던 ‘하사관교육대’ 척후에 잠복 중이던 북한군이 일제사격을 가해 왔고 이에 연대는 4일 오전 6시 북한군에 반격을 가해 치열한 전투 끝에 292고지ㆍ155고지ㆍ비둘기고지ㆍ유엔고지 등을 탈환, 북한군의 불법침공을 저지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군은 북한군이 점령한 고지 탈환을 위해 10개에 이르는 토치카를 파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이를 위해서는 육탄 공격만이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사단 시설장교 박후준 소위의 고안으로 81㎜ 박격포탄과 폭약을 장치해 이를 들고 육탄 공격을 감행하는 작전을 세웠다.

이 소식을 들은 김성훈 소위의 1소대는 소대장을 비롯한 전원이 특별공격에 가담하겠다고 자원했다. 그러나 인원 제한이 불가피해 지원순으로 선발, 서부덕 이등상사를 공격대장으로 김종해·윤승원·이희복·박평서·황금재·양용순·윤옥춘·오제룡 등 9명의 용사가 선발돼 정오를 기해 목표지점을 향해 출발했다.

지원 가능한 모든 화력의 엄호를 받으며 이들 특공용사들은 분담된 고지를 향해 300m 지점까지 포복으로 접근했고 적의 완강한 저항과 기관총 사격으로 총상을 입고도 목표지점까지 기어서 접근해 몸을 던져 적의 진지로 뛰어들었다.

순간 하늘을 뒤엎는 폭음 포연과 함께 적의 토치카는 박살났고 곧이어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김종훈 소령의 2대대는 공격을 감행, 비둘기고지ㆍ유엔고지 등 주요 고지를 무난히 탈환했다.

이에 앞서 이날 정오 중화기 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가 적의 토치카를 파괴하기 위해 단신으로 수류탄 7개를 들고 돌진하다 전사, 앞의 9용사에 박 하사를 더해 ‘육탄10용사’라 부르게 됐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들의 살신구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연대에 ‘육탄부대’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인터뷰-김성도 대령·육탄연대장
`육탄부대원' 자긍심 적 어떤 도발도 응징

“저를 비롯한 전 부대원은 ‘육탄부대원’이라는 높은 자긍심을 갖고 일치단결해 최강의 전투력을 발휘함은 물론 적의 어떤 도발도 막아내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배 전우가 남긴 불멸의 ‘육탄혼’을 이어받은 부대를 이끌고 있는 김성도(대령·육사44기·사진) 육탄연대장은 “당장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형 야전부대 육성을 위해 일전불사의 전투준비태세, 실전적인 교육훈련,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부대 기풍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연대장은 “적의 도발은 항상 우리의 방심과 자만을 겨냥해 왔다”며 “군의 존재 목적은 이러한 적의 도발을 억제하고 격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전불사의 전투준비태세를 완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연대장은 “연평도의 포격도발을 통해 교육훈련이야말로 우리들의 생명과 명예를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그런 차원에서 실전적인 교육훈련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연대장은 “당장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준비태세나 실전적인 교육훈련, 안정적인 부대관리를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시행할 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며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부대 기풍을 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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