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병액

입력 2009. 12. 23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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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조선 육·수군 병력 현황 정리



전쟁사에 등장하는 병력 수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이 따른다. 서기 612년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할 때 113만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는 중국 역사서 수서(隋書)의 기록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조선시대 군대도 마찬가지다. 1592년 탄금대전투 당시 조선군 병력 규모에 대해서는 수십 명에서부터 8만 명까지 극단적인 편차를 보여준다. 굳이 특정 전투 당시 병력 규모에 대해서만 논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시 조선군의 총병력이나 병력의 변화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군포를 납부받고 실제로 복무하지 않는 병력도 군대도 정원으로 잡는 경우가 있는 데다 속오군 등 예비군의 경우 이중으로 정원이 계산되는 경우도 있는 등 여러 가지 예외와 변수가 많았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조선시대 당시 실제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돼 있는 병액(兵額·사진)은 그처럼 모호하기 짝이 없는 조선시대 병력 규모를 정리한 자료다. 고종 22년(1885년)에 정리된 이 책은 23페이지에 걸쳐 조선군의 병력·세금·인구 등을 정리한 자료다. 병액을 보면 1885년을 기준으로 경영상비친군의 규모는 5077명으로 명시돼 있다. 여기에 기병인 기사 300명과 장교를 의미하는 장관 367명이 추가된다. 병액에서 병조 소속 기병은 6만5468명으로 집계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많은 병력이 조선 후기에 한양에 주둔한 적이 없고 겨우 수백 명이 교대로 근무했으므로 거의 허수에 가깝다.

 향정군 3만3500명으로 기록된 수도 마찬가지다. 정군은 조선 전기 군대의 기본 병종으로 조선 후기에는 실제로 이 신분으로 병력을 소집한 사례가 없다. 역시 가공의 수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 밖에 수어청 각색군이나 용호영 경포하군·각영 표하군 등 잡다한 명목의 군대 이름을 나열한 뒤 이 모든 수를 합쳐서 병액은 14만5291명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결국 14만이라는 병력 규모는 수도권에 주둔하는 실제 병력에 더해서 중앙군으로 간주될 수 있는 서류상의 병력까지 포함한 수인 셈이다.

 지방군의 규모에 대해서는 더욱 황당한 수가 나온다. 경기·호서·호남·영남·해서·관동 등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6개 도의 소속 병력 규모가 59만9183명이라고 적고 있다. 여기에 별도로 6개 도의 속오군 규모로 17만8363명이라는 수를 제시한다.

 평안도와 함경도 등의 각종 명색의 병력 규모가 11만9199명이다. 이 수에 평양성·자모산성·황룡산성의 수성군 1만3131명과 함경도 속오군 3만5000명도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여기에 수군은 전선 368척에 병력이 1만9870명이다.

 병액에 기록된 이 모든 병력을 합치면 고종대 조선군의 총병력 규모는 100만 명을 훌쩍 넘어 110만 명에 육박한다. 실제로 그렇게 많은 병력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서류상의 군대가 가공할 수를 뽐내고 있는 동안 실제 조선의 군사력은 약해지고 있었고 15년 뒤에는 결국 망국에 접어 들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병액은 실질적인 전력보다는 수 그 자체에만 집착했던 조선시대 군대의 초라한 뒷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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