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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또 다른 이름…군번은 성적순이다?

기사 게시 일시 : 2018-05-02 16:45

<14> 대한민국 국군의 ‘자랑스러운 군번’



육군 장교, 지난해부터 성명 ‘가나다’순으로 개선


대한민국 군인에게는 모두 군번(軍番)이 있다. 군번이 없는 군인은 없다. 군번이 없다면 그것은 ‘가짜 군인’일 것이다. 군번은 군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그림자다. 그래서 군인들은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를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 전사하면 인식표를 보고 바로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군인에게 있어 군번은 또 하나의 ‘나’를 상징한다. 바로 군인으로서 자신을 뜻한다.


군번은 곧 서열…여러 의미 갖고 있어

대한민국 군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부여받는 것이 바로 군번이다. 군인에게 군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군번은 매우 소중하다. 군대에서 군번을 나타내는 인식표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군번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군번은 서열을 나타낸다. 군번이 빠르면 선임자다. 같은 계급이라도 군번이 빠른 사람이 상급자 역할을 한다. 군번은 보통 성적순으로 매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군번은 곧 군인들의 자존심과도 연결된다. 장교들은 철저히 임관성적을, 병사들은 보통 입대 순 또는 훈련성적을 반영했다. (하단의 ‘군번체계 개선’ 참고)


창군 초기 군번으로 빚어진 해프닝도

그렇다 보니 군번을 두고 다툼도 있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육군 장교의 군번 1번은 육군참모총장과 초대 합참의장을 역임한 이형근 장군이고, 2번은 육군참모총장을 두 차례 역임한 채병덕 장군이다. 채병덕 장군은 이형근 장군보다 일본육군사관학교 7년 선배인 데다 광복 당시 계급도 높았고 나이도 많았다. 채병덕 장군은 후배인 이형근 장군에게 군번 1번을 빼앗긴 것에 불만이 많았다. 그 당시 군번은 접수된 순으로 처리됐는데 채병덕 장군은 그것을 못마땅해했다. 이에 채병덕 장군은 당시 군번을 부여한 인사장교로 3사단장을 지낸 임선하 장군과 당사자인 이형근 장군에게 기합을 줬다. 그래서 채병덕과 이형근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의 그런 관계는 채병덕 장군이 6·25전쟁 초기 전사할 때까지 이어졌다. 창군 초기 군번으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자군에 맞는 군번을 별도로 마련

대한민국 국군은 군 인사관리 차원에서 군에 복무하는 모든 군인에게 숫자와 문자로 된 일련의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는 자군(自軍)에 맞는 군번을 별도로 마련해 부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이면 군번만 보고도 육·해·공군 및 해병대 중 어떤 군에서 복무했는지 금방 알아맞힐 수 있다. 특히 같은 군대에서 복무한 사람이라면 군번만 보고 바로 선배인지 후배인지인지도 알 수 있다. 



 2004년 5월 육군이 6·25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강원도 홍천군 내면 방내리 하천 인근에서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인식표(군번 줄)를 유해와 함께 발굴했다. 인식표에는 한국군을 의미하는 ‘K’와 군번 ‘1125518’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첫 육군 장교 군번은 10001번

창군 과정에서 육군의 군번은 장교와 병사를 구분했다. 최초 육군 장교의 군번은 ‘1만’을 기본단위로 하여 10001번부터 시작됐다. 이 군번은 창군 원로들이 나온 군사영어학교(軍事英語學校)와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에게 부여됐다. 육군 장교의 군번 1번인 이형근 장군은 군사영어학교 출신으로 ‘10001’이었다. 그냥 1번이 아니라 ‘만 일번’인 셈이다. 그 후 이 군번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군사영어학교 출신은 모두 110명이 임관했다. 그래서 군사영어학교 마지막 군번은 10110번이다. 군사영어학교 마지막 군번인 10110번은 초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이응준 장군이다. 이응준 장군은 ‘군번 1번’인 이형근의 장인(丈人)이다. 장인과 사위가 창군 초기 군사영어학교 출신의 시작과 끝을 맡은 셈이다.

육군사관학교 1기생은 군사영어학교 마지막 군번 다음인 10111번부터 시작됐다. 육사1기생들은 모두 40명이 임관했다. 육사1기의 졸업성적 1등은 이상근이었다. 이상근은 군사영어학교 마지막 임관자에 이어 10111번을 군번으로 부여받았다. 그런데 이상근은 바로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던 이형근의 친동생이었다. 두 형제가 육군의 1번 군번에 이어 육군사관학교 첫 번째 군번을 차지했다. 이상근은 6·25전쟁 중 대령 계급을 달고 수도사단 참모장으로 있었는데, 인천상륙작전 후 낙동강 전선에서 북진을 위해 정찰을 나갔다가 경북 청송 지역에서 안타깝게 전사했다. 이상근은 이후 육군준장에 추서됐다.

창군 초기 육군의 병사 군번은 기본번호를 1백만 단위로 정했다. 여기에 연대를 구분하기 위해 1백만 단위 기본번호에 각 연대는 10만 단위 머리 숫자에 10단위를 더한 연대 숫자를 표시하여 1부터 시작했다. 그럴 경우 1연대의 군번 1번은 1100001이었고, 2연대의 군번 1번은 1200001이었다. 이때 군번 부여는 입대 순이었다. 육군 병사의 군번 1번은 6·25전쟁 때 춘천전투와 동락리전투에서 6사단 7연대장으로 용맹을 떨쳤던 임부택 장군이었고, 2번은 육군헌병감을 지낸 공국진 장군이었다. 이 두 사람은 육사1기와 육사2기로 들어와 장교가 됐다. 이후 육군 병사 군번에서 연대 구분을 없앴다.

6·25전쟁이 터지고 육군 초급장교들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자, 국방부는 육군종합학교와 육군보병학교를 통해 장교들을 대량으로 배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로 종합학교 출신과 갑종장교 출신들이다. 이들 장교의 군번은 20만 단위로 시작했다. 휴전 후 육군3사관학교가 세워지면서 이들 장교들은 50만 단위의 군번을 부여받게 됐다. ROTC 장교들은 임관연도 뒤에 성적순으로 군번을 부여했다.


해군 장교는 8만 단위·공군은 5만 단위

해군 장교는 군번 부여를 8만 단위, 즉 80001번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는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海防兵團) 출신부터 부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초 해군 병사 군번은 810만 단위, 즉 8100001번부터 시작했으나, 얼마 후 811만 단위로 조정했다가 다시 510만 단위로 바꿨다. 이때가 6·25전쟁 바로 직전이었다. 해병대의 장교 군번은 해군 장교 군번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해병대 병사 군번은 해병대가 창설될 때 910만 단위, 즉 9100001번부터 시작했다. 그때가 1949년 4월 5일이었다.

공군은 장교 군번 부여를 5만 단위, 즉 50001번부터 시작했다. 공군 장교 군번은 항공사관후보생 1기부터 적용했다. 공군 병사 군번은 32만 단위, 즉 320001번부터 시작하고 있다.

대한민국 군인들에게 군번은 바로 자신이 군인임을 입증해 주는 확실한 증표다. 그런 점에서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른 것은 다 잊어도 군번만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외쳤던 것이 바로 군번이다. 거기에는 군대의 희로애락도 담겨 있다. 오늘도 전후방의 대한민국 군인들은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를 목에 걸고 국토방위에 전념하고 있다. 마치 그들의 수호신처럼. 그들의 무운장구를 빈다.


군번체계 개선

각군은 군번에 대한 불필요한 선입견을 없애고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군번 부여 체계를 개선했다.

육군의 경우, 2017년부터 간부 군번은 종전 ‘임관성적’순에서 성명 ‘가나다’순으로, 병사는 입영일자·성명·생년월일 순으로 바뀌었다.

해군은 2014년부터 성명 ‘가나다’순으로 바뀌었다. 해병대도 마찬가지다.

공군은 간부들의 경우, 임관일자와 임관성적순에 따라 군번을 부여한다. 병사들은 입영일자, 성명 ‘가나다’순이다. 동명이인일 경우에는 생년월일순으로 한다. <남정옥 전 군사편찬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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