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자유와 정의를 말하다<8>미 의회 연설(1)

입력 2011. 07. 01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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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심장에 `자유를 향한 불굴의 투쟁' 새기다


외국 국가원수의 미국 국빈방문 시 중요한 일정으로는 정상회담, 국빈만찬, 미 의회연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 의회연설에 남다른 집착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기에 영합하고 유화적인 아이젠하워와의 정상회담을 통해서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한반도의 휴전, 동북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축출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미 의회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의 의회연설에는 영어 통역이 필요 없었다. 그는 미국 최고 지성인 못지않은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 그는 망명 시절부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연설문은 자신의 타이프라이터로 직접 작성해 왔다.

따라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의회연설 연설문은 어느 누구와도 협의하지 않고, 직접 타이핑해 준비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고문 로버트 올리버 박사는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라는 책에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해 놓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한 후, 내가 처음으로 그와 직접 대화를 나눈 것은 (의회연설 하루 전인) 1954년 7월 27일 오후였다. 연설문이 몹시 궁금해 나는 이 대통령에게 초안을 주면 검토해 드리겠다고 제안했다. 마침 그가 앉은 의자 옆의 바닥에 서류 가방이 놓여 있기에 나는 그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재빨리 가방 위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채근했다. ‘제발 훑어보게 해 주십시오. 다시 쓰려는 것이 아니라, 제가 혹시 작은 부분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아니, 안 됩니다.’ 이 대통령은 단호하게 말했다. ‘싫소이다. 난 휴전에 대한 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 미국에 온 것입니다. 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하렵니다. 당신은 내가 할퀼까 봐 내 손발톱을 손질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는 안 되오.’ 그는 서류 가방을 집어 들어 가슴에 끌어안으며 말했다. ‘의회에서의 담화는 나 자신의 것입니다. 거기에는 내가 아주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으며 나는 내가 쓴 방식대로 그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나는 망설였다가 다시 한번 연설 초안을 보려고 시도했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 의회연설 당일인 7월 28일 오전, 다른 일정을 일절 소화하지 않은 채 연설문을 가다듬고 마음을 추슬렀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미 의회에서 최초로 연설한다는 역사적인 의미와 함께 누구와도 사전협의 없이 자신이 준비한 영어 연설이 과연 미 상하원 의원들은 물론, 언론 등 미국 여론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게 될지 본인으로서도 무척 초조하고 궁금했다.

 7월 28일 오후, 워싱턴의 미 의사당 대회의실은 분주했다. 다수의 사진기·조명등이 설치되고 상하원 의원 및 이날 행사에 특별히 초청받은 각료, 대법원장 및 판사, 외교사절들을 위한 의자가 추가로 반입됐다.

 미국과 전 세계의 기자들을 위해 2층에 취재석이 마련됐고, 오후 4시가 조금 넘어 이 대통령의 연설문이 등사(당시는 복사기가 발명되긴 했으나 널리 실용되지 못하던 시절이었음)돼 기자들에게 배포됐다. 방청석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특별 입장권을 소지한 방청객들만 좌석이 마련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회의실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32분이었다. 윌리엄 노울랜드(William F. Knowland, 1908∼1974) 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안내로 이 대통령이 회의장에 들어서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때 의정 단상에 앉아 있던 닉슨 부통령 겸 상원의장, 조셉 마틴(Joseph William Martin, Jr. 1884∼1964) 하원의장이 일어섰고, 마틴이 의사봉을 세 번 두들기자 회의실 내의 모두가 기립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윽고 이 대통령이 연단으로 안내됐으며 마틴 의장이 “미국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자유를 위한 불굴의 투쟁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소개말을 건네자 다시 장내에 열띤 환호의 분위기가 조성됐다.

 장내가 잠잠해지자 이 대통령은 마틴에게 간단히 감사를 표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이 역사적인 영문 연설을 번역해 소개하고자 한다.

 “하원의장, 상원의장, 상하 양원 의원 여러분, 신사 숙녀 여러분!

 저명한 미국 시민들이 모인 이 존엄한 자리에서 연설할 기회를 얻게 됐음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유서 깊은 의사당에 참석해 주심으로써 내게 커다란 영예를 베풀어 줬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의 후의에 보답하려고 합니다. 바로 내 마음속에 간직된 것을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유 정부의 위대한 전통 일부이며, 이 전통이야말로 내가 반세기 이상이나 신봉해 온 것이기도 합니다.

 나도 여러분처럼 워싱턴·제퍼슨·링컨에게서 영감을 받아 왔습니다. 여러분처럼 나도 여러분의 빛나는 선조들이 전 인류를 위해 탐구했던 자유를 수호하고 보존하려고 스스로 맹세해 온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과 미국 국민이 행한 일에 대해 한국과 한국 국민을 대표해 끝없는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고립무원의 나라를 파멸로부터 구출해 줬습니다. 그 순간, 진정한 집단 안전보장의 횃불은 전례 없이 찬란히 빛났습니다. 우리 전선의 방어를 위해서, 또는 피란민과 기타 이재민들의 구호를 위해서 여러분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보내 준 원조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고마움의 빚입니다.

 우리는 또한 한국 파병의 중대 결정을 내림으로써 우리를 바다 가운데로 밀려나지 않도록 구원해 준 트루먼 전 대통령, 그리고 당시는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지금은 미국 행정수반으로 적의 위협을 잘 이해하고 우리를 원조해 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40년간 일본의 잔혹한 점령하에 있던 한국에 왔었습니다. 우리 국토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외국 친구들의 수는 극히 적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으로 이러한 곳에 여러분에 의해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위대한 인물이 왔습니다. 여러분의 군대만이 우리의 자유를 회복해 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인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나는 이 기회에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어머니들에게 우리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암울한 처지에 놓여 있던 시기에 그들은 미국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복무하는 자식, 남편, 형제들을 한국으로 보내 줬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계곡과 산으로부터 한미 양국 군인들의 영혼이 하나님에게 함께 올라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마음속에 소중히 기억하듯이, 전능하신 하나님도 그들을 어여삐 품어 주실 것입니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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