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집단 지능으로 작전하는 군집 드론의 위력
생산 단가 낮아져 대량 투입 부담 덜어
정보·사이버전까지 영향력 확대 가능
주요국들 본격적 기술 패권 경쟁 돌입
실험 단계 넘어서 실전 검증까지 완료
스스로 판단해 폭격 ‘킬링 머신’ 위험성
책임감 있는 운영 시스템 설계 중요해
서울의 밤하늘에 수천 개의 불빛이 춤을 춘다. 한강 둔치에서 펼쳐지는 드론쇼는 단순한 경관 연출이 아니다. 각 개체가 하나의 집단으로 움직이며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드론이 펼치는 예술적 퍼포먼스다. 이 드론쇼는 사람 손이 아닌, 사전에 설계된 ‘분산 알고리즘’의 결과다.
하지만 이 엔터테인먼트 기술이 전쟁의 무기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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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 드론은 단순히 여러 대의 드론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하고 협업하는 자율 에이전트의 집합이다. 민간 드론쇼가 화면 디자인과 동선만 미리 설정된 ‘유도형 퍼포먼스’라면 군집 드론은 자율 학습 능력을 갖춘 전투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군집 드론의 중심 원리는 분리, 조정, 응집 세 가지 규칙에 있다. 분리는 충돌을 피하며 최소한의 간격을 유지하도록 만들고, 조정은 전체가 목표를 향해 방향을 맞춘다. 응집은 무리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행동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원리는 새떼, 벌떼, 물고기떼, 심지어 인간의 군중 행동에서도 발견되는 자연의 법칙을 모방한 것이다.
드론쇼에서 이러한 시스템은 통제된 장비를 설치하고 형태를 우아하게 구현한다. 하지만 군집 드론은 환경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한다. 전장의 군집 드론은 구조물을 피하거나 바람이 강한 상황에서 알고리즘이 즉시 판단을 바꾸고 형태를 재구성한다. 도시의 좁은 거리여도 군집이 자동으로 나뉘면서 장애물을 피해 이동하는 기능이 구현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AI) 기반 자율 네트워크 제어의 핵심이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군집전술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 수 있는 대량의 드론 운용 전술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군집 전술은 드론이 서로 통신하며 집단 지능을 발휘한다. 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저가의 쿼드콥터 수십 대를 동시에 날려 보내는 ‘무차별 투입’으로, 드론 간 협력은 없다. 각각 사전 설정된 경로를 따라 개별 행동할 뿐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수량 압도 전술도 첨단 방공체계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대공포와 요격 미사일로는 모든 드론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군집 드론의 전략적 가치는 단순히 ‘많이 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속도, 규모, 탄력성, 협업 능력, 자율 판단이라는 다차원적 힘이 만들어낸 변화다. 하나의 드론이 망가지면 나머지는 임무를 계속 수행한다. 일종의 분산 네트워크 저항성이다. 드론 간 실시간 협력과 궤도 보정 능력을 활용하는 전투환경은 이제 유인기와 전투원의 협력과 함께 무인 플랫폼 네트워크의 협력체계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산 비용 측면에서도 군집 드론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 수십억 원에 달하던 유인기 단가와 달리 소형 드론은 부품 단가가 수백 달러 수준으로 낮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상실에 대한 부담이 작고 오히려 ‘희생 가능한 자산’으로 전장에 적극 투입된다. 유지보수도 간편하며, 대부분 부품은 민간용 드론 제조 공정과 공유할 수 있어 공급망 탄력성도 높다. 저비용 대량 투입 구조는 물리적 파괴뿐만 아니라 상대 심리에도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군집 드론은 물리적 전장뿐만 아니라 정보전, 사이버전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일정 범위 내에 퍼진 군집이 적의 통신을 방해하거나, 영상 감시망을 교란하는 임무도 가능하다. AI 기반 전자전 소프트웨어가 적용되면 단순한 드론을 넘어 복합적인 센서·재머(전파교란 장비)·탐지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미래에는 이러한 군집이 특정 지역의 ‘디지털 블라인드 존’을 만드는 데 사용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군집 드론 기술은 실험실을 벗어나 실전 무대로 진입했다. 2021년 이스라엘의 네트워크형 자율 전투 시스템인 ‘Legion-X’가 가자지구에서 드론들끼리 소통하며 정찰과 공격을 자율 분담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은 F-16 전투기에서 발사된 100여 대 드론의 협력 정찰을, 중국은 120대 고정익기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집단 지능을 입증했다.
이제 주요국은 본격적인 기술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안두릴 퓨리(Anduril Fury) 프로그램과 중국의 AI 기반 추적 공격 시스템 개발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스웨덴과 영국·호주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및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안보 협력체) 훈련을 통해 실전 검증까지 완료했다.
한편 학계와 스타트업에서는 딥러닝과 강화학습을 활용해 드론의 상호 협력, 표적 분배, 실시간 장애물 회피 능력을 한층 진화시키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드론이 이동 병력을 자동 탐지해 우선 타격 순위를 판단하고, 스스로 분산 배치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한국도 더 이상 군집 드론을 미래 과제로만 보지 않는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주요 방산업체는 시범 운용 목표로 군집 비행 알고리즘, AI 분산 제어 기법, 통신망 동기화 솔루션 등을 개발 중이다. 특히 한반도의 산악 지형, 도심 구조, 열차와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복합 환경에서도 군집 능력이 그대로 운용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혁신적 기술의 이면에는 인류가 직면해야 할 중대한 과제가 숨어 있다. 드론이 자율 판단으로 폭탄을 떨어뜨리는 ‘킬링 머신’이 되는 것에는 중대한 전략적·윤리적 위험이 뒤따른다. AI가 오작동하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민간인을 공격할 경우 전쟁범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군집 드론은 비국가 행위자, 테러 조직, 무장단체 등에도 저비용 전투력으로 전이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군집 드론 전장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국경이나 전통적 군사력 경쟁이 아닌 데이터, AI, 네트워크 제어의 경쟁장이다. 이러한 불가역적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많은 드론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 작동, 편향 없는 판단, 사이버 보안, 그리고 국제법 준수 체계까지 포함한 책임감 있는 운영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서울 밤하늘의 드론쇼가 보여주는 것처럼 단 하나의 명령, 하나의 네트워크 계산으로 수백 대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군집 지능의 힘은 이미 우리 시대에 도래했다.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넘어 전장의 운명을 좌우하는 실전 자산이 되고 있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이 향후 안보 환경에서의 위상을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수한 드론이 실시간으로 협력하고 작전을 펼치는 전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다음 회에서는 진화하는 드론 공격을 막기 위한 첨단 방어 기술의 발전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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