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일본 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보고서…새 정부에 처방전 제안
한국 가계부채 207.4%
일본 버블기 최고 수준 근접
저출산·고령화 양상도 비슷
생산인구 감소세 日보다 빨라
첨단산업 육성에 역량 집중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
새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재정 지속 가능성 확보 필요
한국은행(한은)이 과거 ‘버블 붕괴’로 위기를 맞았던 일본과 닮은 한국 경제를 저성장 수렁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 개혁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한은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후 이런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하며 장기 침체 우려를 타개하기 위한 처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은은 지난 5일 ‘일본 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서 한은은 “우리 경제가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부채는 207.4%다. 이는 일본 버블기 최고 수준인 1994년 214.2%에 근접한 수치다. 한은이 철저한 관리를 요구한 것은 이런 이유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자산시장과 연계된 부채가 연쇄 부실화해 은행 위기로 이어졌다. 또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업이나 재무 상태가 부실한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자원배분 왜곡도 경험했다.
한은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밀한 거시건전성 규제 운용, 통화정책과의 공조 강화, 가계부채 관리 기조 견지, 신속·과감한 구조조정 등으로 부채 비율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산·고령화 양상도 두 나라 모두 비슷하다. 일본은 버블 붕괴 시기부터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로 노동 투입이 줄어 잠재성장률이 하락했다. 저성장 우려로 물가도 떨어졌고, 디지털 전환 지연으로 생산성 개선도 느렸다. 한은은 일본이 만약 인구구조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 2010년부터 인구가 줄지 않았다면 2010~2024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6%포인트는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한은은 또 우리나라의 생산연령인구는 2017년, 총인구는 2020년을 각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고 이는 일본보다 빠른 속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유휴 인력의 생산 참여 확대, 혁신 지향적 교육 투자 강화 등으로 노동력을 양적·질적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외국인 노동력을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출산율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은은 이제 기존 성공 전략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강력한 성공 경험이 오히려 구조 개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은 1990년대 이후에도 기존 수직 계열화와 선진국 중심 시장 전략을 지속하다가 한때 세계 1위를 넘보던 산업 경쟁력과 국내 생산 기반이 약해졌다. 한은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첨단산업 육성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면서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은은 일본의 제정·통화정책 시사점도 소개했다. 한은에 따르면 일본은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2023년 240.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은은 인구 고령화로 인한 연금·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지출이 늘어나는 구조적 적자가 이유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23년 50.7%로 비교적 건전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경기 위축 대응을 위한 적자 재정 이후에는 흑자 재정으로 재정 여력을 복원하는 관행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했다. 또 “통화정책은 ‘경기 대응 수단’이지 ‘경제 체질 개선 수단’이 아니다”며 “잠재성장률 제고는 구조 개혁을 통해 가능하고, 통화정책은 이를 보완하는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한은은 스웨덴 학자 요한 노르베리의 ‘피크 휴먼’을 언급하며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라며 “일본의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노후화한 경제 구조를 혁신·창조적으로 파괴해야 경제가 다시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맹수열 기자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