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대와 함께하는 ‘국방안보 진단’
27. 사우디 비전 2030과 대한민국군
빈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전략
산업 다각화 통한 탈석유 정책 추진
여성 활동 확대 등 사회 변화도 적극
자주국방 역량 강화 중요 과제 설정
현지 생산 힘 쏟고 인재 양성에 집중
해외 기술 도입에 막대한 예산 투입
한국엔 군사교류·산업협력 기회로
보수적 사회의 상징이던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가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비전 2030’을 통해 탈석유 경제, 사회 개방, 국방 현대화를 동시에 추진하며 미래를 설계 중이다. 여성 운전 허용, 영화관 재개장을 비롯한 사회 변화는 군 조직에도 반영돼 여군 양성 등 실질적 개혁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자주국방 역량 강화를 위한 방산 육성과 국방교육 혁신이 눈에 띈다. 사우디의 비전 2030과 그에 따른 우리 군의 도전과제를 알아본다. 김해령 기자
사우디의 새로운 일상…‘비전 2030’
사우디는 오랫동안 보수적 사회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 통치 아래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하고, 영화관·콘서트 등 대중문화가 철저히 금지될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4월 사우디를 방문하며 느낀 현지 분위기는 이러한 모습이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줬다. 거리에는 직접 운전대를 잡은 여성들이 등장했고, 공항과 상점에서는 히잡을 쓴 여직원들이 활발히 일하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장면이 사우디의 새로운 일상이 된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2016년 발표된 ‘사우디 비전 2030’이 있다. 비전 2030은 석유 일변도의 경제구조에서 탈피해 산업을 다각화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국가 청사진이다. 사우디는 오랜 기간 막대한 석유 판매 수입에 국가 재정의 대부분(약 60~80%)을 의존해 왔으나 유가 하락과 탈탄소시대에 대비해 경제체질 개선 압박을 받아 왔다. 무함마드 빈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세자는 과감한 개혁 프로그램인 비전 2030을 제시, 탈석유 전략을 추진하는 한편 사회개혁으로 보수적 문화를 바꿔 외국인 투자와 관광을 유치하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정부 보조금 축소, 국영기업 민영화, 관광산업 육성,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 첨단 신도시(네옴시티) 건설 같은 프로젝트가 속속 진행되고 있다.
사회 분야에서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2018년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는 법 개정과 함께 35년 만에 영화관 영업을 재개하는 등 파격적인 개방조치가 이어졌다. 그에 힘입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도 크게 올라 현재 노동인구의 34%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는 등 사회 전반에 활력이 돌고 있다.
비전 2030과 사우디아라비아군
국방 분야에서 사우디 비전 2030은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개혁과 방위산업 육성을 중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우디는 올해 국방비로 정부 총예산의 21%, 국내총생산의 7.1%에 해당하는 약 780억 달러를 배정했다. 아울러 2030년까지 전체 국방비 지출 절반을 사우디 현지 생산물자에 사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2017년 국방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군수산업(SAMI)’을 설립하고 보잉, 록히드마틴 같은 외국의 다국적 기업과 협력해 사우디 현지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한 기술을 획득하고자 노력 중이다.
인재 육성 분야도 확 바뀌었다. 국내 엔지니어를 양성하고자 2022년 국가방위산업학교(National Academy of Military Industries)를 설립해 최대 2000명의 학생을 교육하고 있다.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킹 압둘아지즈 군사학교(King Abdulaziz Military Academy)는 3년제인 교육체계를 4년제로 확대해 해외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의 장교를 배출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기존의 군 지휘참모대학(Armed Forces Command & Staff College)을 합동지휘참모대학(Joint Command & Staff College)으로 확대, 전쟁대학(War College)·전략연구센터(Strategic Studies Center)·리더십개발센터(Leadership Development Center)를 추가로 만들어 사우디 국방대(National Defense University)를 창설했다.
사우디 국방대는 국방·국가안보 분야 민·군 지도자를 양성하고, 지역 명문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예하 각 대학·센터의 교육 프로그램 및 운영방식 발전을 위해 미국·영국·중국·이탈리아 등 여러 국가의 국방대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사우디 국방대는 우리나라 국방대의 교육·운영방식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우리 국방대는 국방·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안보정책, 과학기술 영역까지 교육하는 동시에 교육부에서 인정하는 석·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또 군인과 공무원, 공공기관 고위직 인사, 외국군이 함께 교육받는 안보과정을 운영 중이다. 이는 지난달 한국·사우디 국방대 간 학술교류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로 이어졌다.
사우디군의 여성 참여 확대는 사회 변화가 군 조직에도 성공적으로 반영된 사례로 꼽힌다. 사우디군은 2019년부터 장교를 제외한 직급에서 여성 군인의 정규 복무를 허용, 여군훈련센터를 설립해 체계적인 양성에 돌입했다. 킹 압둘아지즈 군사학교에서 여성 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사우디 국방대 전쟁대학엔 올해 처음으로 사우디 국방부의 여성 공무원 3명이 입교해 교육받고 있다. 필자가 만나 본 이들 학생은 사우디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향후 사우디군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여성 역할 확대와 관련한 기대와 선구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군에의 함의
사우디 비전 2030은 우리나라 건설업체의 수주, 한류 문화 콘텐츠 수출 등 한국 경제에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 이익을 넘어 군사 분야 교류협력 확대에도 좋은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먼저 방위산업 분야에서의 전략적 협력과 산업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사우디는 해외 기술 도입과 자국 생산을 병행하며 방산 역량을 키우는 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 방산기술을 공유·이전하고, 공동개발을 추진한다면 사우디의 자주국방 목표 달성과 한국의 방산시장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는 결국 중동의 안보정세 변화 속에서 국제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군의 지적 역량과 시스템을 소개·전수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군을 운영해 온 노하우, 군 인재 양성·보수교육체계와 프로그램, 군사 전략·전술까지 우리가 사우디군에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다양하다. 비물리적 영역에서의 교류는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군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윈윈(Win-Win)’ 전략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유발되는 인적 교류협력의 확대는 상호 이해 증진과 신뢰 향상을 가져와 더 큰 협력의 밑바탕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편 사우디의 비전 2030을 통한 국가 발전 및 군 현대화·개혁 노력은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지지, 전략적 국제협력을 기반으로 추진되고 있다. 군사협력 확대를 모색하는 가운데 사우디 사례를 토대로 우리 군 역시 미래 도전과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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