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어 마인드셋 / 전투의 뇌과학을 들여다보다
① 현대전, 마음을 향한 전투가 시작됐다
② 인지전, 우리는 왜 뇌를 알아야 하는가?
③ 전장, 총알보다 무서운 정신적 압박
④ 군인 내면의 힘! 정신적 강인함
⑤ 인지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⑥ 내면의 힘을 끌어올리는 방법
⑦ 최강의 전사를 만드는 워리어 마인드셋
“전우들이 아군까지 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소총을 수거했다.”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병사의 냉철한 판단력이 빛난 순간이다.
공황에 빠진 전우들의 오발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무기를 수거했다가 그들이 정신을 차린 뒤 돌려준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는 ‘진짜 강인함’ 기르려면
신체 단련·가치관 교육만으론 한계
미 육군 ‘종합 군인 피트니스’ 프로그램
신체·정서·사회·영적 건강 종합관리
회복탄력성·배틀 마인드 훈련 도입
“아군까지 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전우들의 소총을 수거했다.”
2002년 6월 벌어진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던 병사는 극한 상황에서도 냉철한 판단력을 발휘했다. 공황에 빠진 전우들이 오발을 일으킬 가능성을 막기 위해 소총을 수거했다가 그들이 정신을 차린 뒤 돌려준 것이다.
전투 경험이 있는 군인의 96%가 해리현상을 겪고, 65%는 당시 기억조차 희미하다고 답할 만큼 전장의 혼란은 심각하다. 그러나 군인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우리 헌법이 국군의 임무를 ‘신성한 의무’라고 명시한 것도 결코 실패해선 안 되는 절대적인 책임이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력은 신체적 능력이 아니라 극한의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강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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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강인함이란
정신적 강인함은 스트레스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다. 『강인함의 힘』의 저자 스티브 매그니스의 말대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자신을 다독여 행동하게 만드는 심리적 역량’이다. 넬슨 만델라의 입을 빌리면 “용감한 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이가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 내는 사람”이다.
군인에게 필요한 정신적 강인함은 3가지 핵심 요소로 이뤄진다. 첫째, 상황 인식 능력이다. 전장은 혼란스럽지만, 그 안에서 중요한 정보를 파악하고 질서를 찾아내는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둘째, 감정조절 능력이다.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셋째, 행동 실행 능력이다. 극도의 스트레스에도 몸이 굳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군인의 정신적 강인함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 군대는 혼자가 아니라 전우들과 함께 싸우는 조직이다. 그래서 불확실한 상황에도 서로를 지탱하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돕는 ‘집단적 정신적 강인함’이 필요하다. 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부대가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지탱하며 전투력을 유지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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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강인함, 어떻게 키울 것인가
대다수 군대는 오랫동안 ‘신체 단련’으로 정신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견디는 과정에서 정신적 강인함이 생긴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강인함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흔히 강인한 사람을 ‘남성적’이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 위기 상황에서 뛰어난 수행력을 보이는 자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끝까지 해내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신체 훈련은 군인의 체력을 강화하고 전장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정신적 강인함이 길러지지 않는다. 강인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Navy SEALs)의 지옥주 훈련조차 그 목적은 군인을 강인하게 만드는 게 아닌 극한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인원을 선별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인식 변화에 따라 2000년대 초 네이비 실은 심리역량 강화교육을 도입했다. 교육생들의 심리적 수행력을 관찰하고, 강인한 정신력에 필요한 기술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티브 매그니스는 저서 『강인함의 힘』에서 심리기술을 가르치지 않은 채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 무턱대고 던져 놓는 건 ‘수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은 채 사람을 물에 빠뜨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의지’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수영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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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심리역량 강화 프로그램
미 육군 장교 댄은 2차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 첫 파병에서는 큰 위기 없이 복귀했지만, 두 번째 파병에선 부대원들의 전사로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신체 부상 없이 귀국했으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사례는 참전용사 사이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미 육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9년 ‘종합 군인 피트니스(CSF)’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긍정 심리학을 기반으로 신체·정서·사회·영적 건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이 프로그램은 이후 ‘전문 회복탄력성 훈련(MRT)’과 ‘배틀 마인드 훈련’으로 이어졌다. 프로그램과 훈련에 참가한 군인은 전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어려움을 인식하고 해결방법을 배운다.
이는 군인들의 정신적 회복력을 높이고 전투 경험을 민간 생활에서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미 공군은 별도 스트레스 면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낙천성, 회복탄력성, 감정조절법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미 육군이 이 프로그램에 1억25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건 군인의 정신적 강인함이 전투력 유지뿐만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인식해서다. 우리 군의 정신전력 강화 프로그램은 가치관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제는 가치관 교육뿐만 아니라 장병들의 정신적 강인함을 위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군인의 생존·승리 결정짓는 핵심 요소
전장의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때로는 정글 한가운데 고립된 듯한 극한의 두려움이 군인을 덮칠 수도 있다. 단순한 의지만으로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순 없다. 가시에 찔려 온몸이 피범벅이 돼 사투를 벌여도 탈출할 방법이 없다면, 그 무력감이 군인의 의지마저 무너뜨릴 것이다.
이때 정신적 강인함은 군인의 마지막 방패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돼 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인내심이 아니라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두려움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차분하게 대응법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이다.
적보다 빨리 뛰거나 힘이 세다고 이길 수 있는 예전의 전장이 아니다. 첨단 무기체계가 발전하고 더욱 복잡해진 현대전에서 정신적 강인함은 군인의 생존과 승리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됐다. 사진=국방일보 DB
압박은 특권이다
무력 행사할 자격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미국 US오픈 테니스장에 새겨진 문구가 있다. ‘PRESSURE IS A PRIVILEGE(압박은 특권이다)’. 압박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명예를 걸고 싸우는 자, 수많은 이의 기대를 짊어질 자격이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무게다.
군인은 전장에서 극한의 압박감을 느낀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부담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곳에서의 실수는 곧 생명을 위협한다. 군인의 선택 하나가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동료의 생사를 가른다.
나아가 가족·국민·국가의 운명까지 좌우한다. 지휘관이라면 그 무게는 더욱 커진다. 그의 판단 하나가 수많은 부하의 생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군인이 이러한 압박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군인은 국가로부터 무력을 행사할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군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자격’이며, 동시에 가장 무거운 ‘책임’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의거 후 재판정에서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히며, 전쟁포로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법에 따르면 군사 목표가 명확하고, 비례성을 준수하는 전투원의 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군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단순한 개인적 테러가 아니라 적법한 전투행위였다.
이 사실은 군인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군인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한 자격과 책임을 지닌 존재다. 이를 인식하는 게 군인의 첫걸음이다.
군인의 책임감이 클수록 전장에서의 압박감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압박감이 없다면 오히려 의심해 봐야 한다. 전장의 압박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압박을 견뎌 내는 자만이 승리를 쟁취한다. 전장의 압박은 태극기를 유니폼에 새길 수 있는 자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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