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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 마인드셋] ‘마음의 적’ 먼저 제압하라...상황 통제할 수 있다는 ‘심리적 통제감’ 회복이 생사를 가른다

입력 2025. 02. 18   16:59
업데이트 2025. 02. 18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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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 마인드셋/ 전투의 뇌과학을 들여다보다

① 현대전, 마음을 향한 전투가 시작됐다 
② 인지전, 우리는 왜 뇌를 알아야 하는가?
③ 전장, 총알보다 무서운 정신적 압박 
④ 군인 내면의 힘! 정신적 강인함 
⑤ 인지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⑥ 내면의 힘을 끌어올리는 방법 
⑦ 최강의 전사를 만드는 워리어 마인드셋 

“귀를 찢는 포성, 역겨운 냄새, 죽음의 그림자… 
감각은 마비되고 판단력은 사라진다.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첨단무기로 인해 공포 더 커진 현대전 
공격 시점 예측 불가 ‘심리 불능’ 초래
공황상태 빠진 장병은 즉각 격리 조치 
작전 현황 명확히 전달해 불안 줄여야
심리적 역치·그림자로 인한 아이러니 
지루함·무력감은 경계 태세 무너뜨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쉬우웅…팡!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뜨니 반장님이 피가 흐르는 얼굴로 뭐라고 외치고 계셨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 참전한 병사의 증언이다.

전장은 귀를 찢는 포성과 역겨운 냄새,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한 공간이다. 이러한 극한 환경은 단순히 신체적 위험을 초래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전투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한 장군은 영화에서 묘사하는 전투 장면은 미화된 수준이라고 말한다. 전장의 공포는 단순한 스릴이나 흥분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지옥과도 같은 경험이다.

특히 현대전에서는 정밀 유도미사일, 드론 폭격 등 첨단 무기의 발전으로 공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적의 공격이 언제, 어디서 가해질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은 장병들에게 지속적인 불안감을 심어 준다. 이는 ‘전장심리(battlefield psychology)’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 탄생으로 이어졌다.


마음속 깊이 감춰진 공포 

군인도 결국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심리적 압박을 받으면 심연에 감춰진 약점이 드러난다. 그중 대표적인 게 ‘공포’와 ‘불안’이다. 공포는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본능적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되고, 사자나 독사 등 위험한 존재를 만나면 위축된다. 만약 공포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귀엽다고 가까이서 만지려다 사자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다. 반대로 공포가 극한에 이르면 공황상태가 된다.

공황은 공포와 불안, 스트레스가 심해지거나 적의 전투력이 아군보다 현저히 우세하다고 느낄 때 나타날 수 있다. 공황은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로, 공황에 빠진 장병은 멍하니 서 있거나 갑자기 전열을 이탈해 도망치는 등 생존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더 큰 문제는 공황이 전염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6·25전쟁 중인 1951년 현리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됐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국군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진 것이 대표적이다. 급기야 조직적인 저항 없이 부대들이 붕괴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부대원 중 공황상태에 빠진 장병이 있다면 즉시 격리 조치할 필요가 있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 ‘덩케르크’
영화 ‘덩케르크’



보이지 않는 적, 불안

불안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앞날을 예측할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시험 치기 직전이나 중요한 발표를 앞둔 순간, 달리기 출발선에 선 순간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불안감이 더욱 높아진다. 이때 우리는 종종 다리를 떠는 등의 반복적인 행동을 보인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을 하며 작은 위안을 얻으려는 본능적인 반응이다.

불안은 생명이 위협받는 전장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독일군과 연합군 병사들 역시 “신체적으로 불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했다. 이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불안이 생존과 직결되며, 인간의 심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불안감이 높아지면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수면과 휴식이 어렵다. 심한 경우 죽음에 관한 생각이 반복될 수 있다. 또한 극도의 불안은 과호흡을 만들어 혈중 이산화탄소량을 낮추고 어지럼증, 손발 저림, 심장 두근거림 등을 유발한다.

장병들의 불안감을 효과적으로 낮추기 위해선 작전 현황을 명확히 전달하고, 향후 행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좋다. 특히 수치화된 정보를 활용해 설명하면 불확실성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감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중요 행사 전 식순을 알려 주고 예행연습을 하면 실제 행사에서 덜 불안해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즉 불안을 줄이는 핵심은 통제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지루함과 무력감

지루함은 전장의 아이러니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장병들은 정신적으로 몰입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긴장과 흥분 속에서 심리적 역치가 높아지고, 새로운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는 지루함이 생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서부전선에서 벌어진 참호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병사들은 오랜 시간 좁은 참호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는 단조로움과 반복적인 일상을 초래했다. 전투 초기에는 긴장과 흥분상태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함이 커졌다. 결국 경계태세가 느슨해져 적의 기습공격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 ‘덩케르크’
영화 ‘덩케르크’



무력감은 패배가 남기는 심리적 그림자다. 전장에서 패배나 작전 실패를 경험한 병사들은 극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베트남전쟁 당시 이아드랑전투에서 미군 병사들은 예상보다 강한 저항에 부딪혔고, 전우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전투의지를 상실했다. 이는 부대 전체의 사기 저하로 이어졌고, 경계태세가 무너져 조직적인 저항력도 약화됐다.

이때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심리적 통제감’을 회복하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전우에게 말을 걸거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처럼 사소한 행동만으로도 뇌는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전전두피질이 활성화하며 정상적인 사고를 되찾을 수 있다. 전장에서 이 작은 차이가 생사를 가른다.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숭고한 사명을 갖고 있다. 이들은 힘든 상황도 ‘군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복하려 한다. 하지만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심리적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군인도 엄연히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공포와 불안을 느끼며, 극도의 스트레스는 그들의 의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첨단 무기가 발전을 거듭해도 결국 전쟁의 주체는 사람이다. 따라서 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심리적 반응을 깊이 이해하고, 군인의 심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단순히 “긴장하지 마”라는 말보다 긴장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줘야 한다. ‘군인정신으로 이겨 내라’는 추상적인 훈시보다 실질적인 스트레스 관리법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외적인 강인함을 넘어 내적인 강인함이 요구되는 시대가 시작됐다. 사진 제공=각 배급사


장재현 중령은 해군본부 정신전력과에서 근무하며 배재대학교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워리어 마인드셋』을 포함한 5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장재현 중령은 해군본부 정신전력과에서 근무하며 배재대학교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워리어 마인드셋』을 포함한 5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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