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36.5도의 힘' 차가운 화면 속 환상보다 내 손에 닿는 온기가 좋아

입력 2025. 01. 22   15:58
업데이트 2025. 01. 2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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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 물성 매직

종이 달력·금융 플랫폼 책 인기
콘텐츠 물성화로 오프라인 구현
실체 없던 AI, 물리적 영역 진출
소비자, 만질 수 있는 경험 선호

 

2025년, 종이 달력은 구하려고 줄을 서는 ‘귀한 몸’이 됐다. 한 인쇄소에서 관계자가 2025년 을사년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종이 달력은 구하려고 줄을 서는 ‘귀한 몸’이 됐다. 한 인쇄소에서 관계자가 2025년 을사년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안 연말이 되면 ‘다이어리 순례’가 있었다. 유명 커피 브랜드에서 연말 굿즈로 제작하는 다이어리를 모으기 위해 여러 매장을 다니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다이어리 인기는 시들한 듯한데, 대신 ‘달력 순례’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은행, 증권사, 조폐공사 등에서 제작한 종이 달력을 얻고자 여러 지점을 다닌다는 것이다. ‘돈을 다루는 곳에서 제작한 종이 달력을 걸어두면 집안에 돈이 들어온다’는 속설 때문이다. 10년 전 신문에서는 ‘종이 달력이 곧 멸종될 것’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그런데 10년이 흐르자 오히려 종이 달력은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어려운 귀한 몸이 됐다. ‘종이책도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했지만 ‘여전히 책은 종이로 봐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종이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원래 실체가 없는 디지털 재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에도 형체를 부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손에 잡히고, 감각할 수 있는 ‘물성(物性)’이 곧 매력이 되는 시대다. ‘물성매력’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자.


서울 성동구 어스아워에 오픈한 우체국 팝업스토어 ‘우체국 산타의 소원상점’.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 어스아워에 오픈한 우체국 팝업스토어 ‘우체국 산타의 소원상점’. 연합뉴스

 

‘CES 2025’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갈봇(Galbot)이 주문한 콜라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CES 2025’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갈봇(Galbot)이 주문한 콜라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첫 번째는 화면 속 세상을 오프라인에 구현하는 ‘콘텐츠의 물성화’다.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콘텐츠를 홍보할 때 요즘은 예고편이나 포스터 등 화면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공개 전부터 전 세계의 관심을 끈 ‘오징어게임’ 시즌2의 경우 세계 곳곳에서 진행한 게릴라 이벤트도 화제가 됐다. 오징어게임을 상징하는 핑크 가드들이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의 해변, 대중교통, 경기장에 나타나 SNS에 사진이 업로드됐다. 게시된 사진에는 ‘오늘 드디어 프라하에도!’라는 댓글이 달렸다.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오징어게임 세계관에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광고도 온오프라인을 넘나든다. 지난 연말 신세계 백화점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독특한 캠페인을 마련했다. 이 캠페인은 공식 SNS 계정이 해킹당한 것처럼 산타클로스의 게시물이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산타클로스가 서울 곳곳을 다니며 SNS에 일상을 공유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작은 교통사고가 있었다’며 산타클로스가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을 알렸다. 대신 선물 배달은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기발한 세계관의 SNS 게시물도 화제였지만, 이것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성수·강남 등에서 견인차가 사고 난 썰매를 끌고 가는 깜짝 퍼포먼스를 보고 무슨 일인가 하며 신세계 백화점의 SNS를 찾아본 시민도 있었다. 온오프라인의 시너지를 추구한 사례다.

두 번째는 ‘브랜드의 물성화’다. 흔히 브랜드는 ‘심상(心象)’으로 생각한다. 어떤 브랜드의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와 느낌이 떠오르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브랜딩은 로고, 색깔, 스토리 등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구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최근에는 브랜드 접점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모든 인지적·정서적·감각적 경험, 즉 ‘브랜드 경험(BX)’이 부상하고 있다. 브랜드 경험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오감으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독특한 굿즈는 브랜드를 오감으로 경험하는 매개다. 온라인 금융 플랫폼 토스는 ‘더 머니북’이라는 책으로 브랜드를 물성화했다. 일상에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금융생활 관련 질문 100가지에 답하는 내용으로 금융상식을 정리했다.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금융’이라는 브랜드의 지향점을 적절히 구현함으로써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매장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러 의류 브랜드에서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담아 매장을 갤러리화하는 추세다. 예를 들어 남성 컨템포러리 브랜드 ‘디앤에스알’은 ‘스켈레톤 하우스’ ‘아포칼립스’ 등 브랜드에 어울리는 주제를 선정하고 매장 오브제에 표현했다. 해당 브랜드의 옷을 착용한 해골이 바닥에 떨어진 돈을 향해 손을 뻗는 연출로 ‘욕망을 탐한 자의 최후’라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식이다.

성수동에 새로 문을 연 ‘올리브영 N 성수’도 오프라인에서 브랜딩을 시도한 사례다. 전례 없는 1000평이 넘는 규모의 매장을 열었다. 이곳은 물건 판매에 집중했던 기존 점포와 달리 제품을 전시처럼 보여주기도 하고,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공간으로 ‘놀이터’를 표방했다.

마지막은 ‘기술의 물성화’다. 최근 화두가 된 ‘물리적 인공지능(AI)’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제까지 AI는 챗GPT같이 화면 너머에서 사람과 상호작용을 했다. AI가 다룰 수 있는 데이터는 텍스트·음성·이미지·영상 형태였으나 이제는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대량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미 한 행사에서 옵티머스는 사람들에게 맥주를 따른다거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등 발전된 기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이러한 물리적 AI는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것을 넘어 ‘행동’까지 대신해 주면서 사회 곳곳의 노동력 문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람이 물리적 실체를 가진 AI를 어떻게 느낄지, 그래서 기술과 상호작용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도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고 한 세대가 지났다. 음악도 LP에서 CD로, USB로 점차 형태가 작아지다가 이제는 물리적 형태가 없는 디지털 재화(음원)로 음악을 소비한다. 그런데 디지털이 주류가 되면서 역설적이게도 사라진 줄 알았던 LP나 카세트테이프를 어렵게 구해 듣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날로그가 귀한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감, 그리고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신체를 지닌 물리적 존재다. 아기는 말을 배우기 전에 무엇이든 손으로 만지고 입에 넣어본다. 결국 인간에게 물성은 세상을 인식하는 가장 근본적인 감각일 것이다.

디지털, 나아가 AI 기술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소비자들이 그 가치를 ‘체감’할 수 있는가? 물성매력이 화두가 될 것 같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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