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인지전 시대 - 역사상 중요한 사례들
고향 노래로 적 사기 꺾은 유방
칭기즈칸도 입소문으로 심리전
걸프전, 전단지 살포 효과 보고
베트남전쟁선 미디어 이용되기도
과학기술 발전 속 영역 확장
사이버 공간 승기 잡기 중요해져
긍정 여론 형성 위해 평시에도 전개
SNS 타고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
‘인지전’ 개념의 등장 이전부터 인류는 사람의 심리를 전투에 이용해왔다. 적의 사기와 전투의지를 꺾고, 반대로 아군의 결의를 높이는 ‘심리전’은 전쟁의 승패까지 좌우했다. 정보·커뮤니케이션 기기·환경 발달 속 중요성이 대두되는 인지전은 전투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민간인 대상 비물리적 영역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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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유방·몽골 칭기즈칸, 심리전 이용해 승리
군중심리를 이용해 적의 불안·공포를 확산하는 방식은 중국 고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나라 유방이 초나라 항우를 포위했을 때 이야기다. 유방은 초나라 포로들이 고향 노래를 부르게 했다. 오랜 싸움에 지친 초나라 군사들은 고향을 떠올리며 도망쳤고, 군사를 잃은 항우는 패했다. 고사성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탄생 배경이다.
몽골 칭기즈칸도 심리전 대가였다. 칭기즈칸은 전투 생존자 증언, 주민·상인 입소문 등을 통해 몽골군의 잔혹성을 알렸다. 전투 전 상대방의 의지를 꺾기 위함이었고, 실제 전투에서도 행동으로 보여주며 헛소문이 아님을 증명했다. 소문에 겁먹은 상대 군인들은 싸우는 대신 항복을 택했고, 몽골군은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했다.
베트남전쟁 ‘구정 공세’, 미군 철수 주장에 힘 보태
현대에 들어서도 전투원의 심리가 전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었다. 1990년 1차 걸프전쟁 당시 미군은 폭탄 투하를 예고하는 전단지를 대량 살포해 이라크군 수만 명의 투항을 끌어냈다. 우리 군도 6·25전쟁 중인 1951년 5월 현리 전투에서 통신 두절로 명령체계에 혼란이 생기고, 각종 유언비어가 퍼지며 장병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일이 있었다.
미디어 발전에 발맞춰 인간 심리를 전투에 이용하는 방식은 주목받아 왔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1월, 북베트남군은 설 연휴에는 휴전하던 관례를 깨고 남베트남 정부와 미군 시설물 대상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른바 ‘구정 공세’다. 결과적으로 남베트남군과 미군은 북베트남군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미국 대사관이 공격받는 모습을 남베트남 주재 특파원들이 보도한 것이 미국 내 여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미국 국민이 ‘전쟁 승리가 눈앞에 있다’는 정부 설명에 의문을 갖고 미군 철수 주장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사이버 공간 등 비물리적 영역 싸움 치열해져
과학기술 발전 속 기존 심리전 개념이 인지전으로 옮겨가면서 사이버 공간 등 비물리적 영역에서 승기를 잡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 위협론’ ‘러시아-우크라이나 한민족론’ 등을 지속 유포했다. 자국의 군사적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세계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고, 미국 내 일부 학자들도 ‘서방 책임론’을 제기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에 맞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주장을 차단하며 자국민들이 전쟁을 포기하는 것을 막고, 국제사회의 지지·지원을 끌어내는 데 주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쟁 초기 자신의 도피설이 제기되자 인스타그램·트위터 등에 ‘나는 키이우에 남아 있으며,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와 영상을 반복해서 올렸다.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조종사 ‘키이우의 유령’을 등장시켜 반전을 꾀했다. 러시아 전투기를 계속 격추한 것으로 알려진 키이우의 영웅은 사실 우크라이나가 만든 허상의 영웅이었지만 전쟁 초기 사람들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가자지구 전쟁에서도 인지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인종청소를 단행하는 ‘학살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알 시파 병원 지하에 숨겨진 하마스 지휘통제소와 무기시설을 타격해 민간인 희생이 커지자 관련 영상을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의 도덕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훼손하고 국제사회에 반이스라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울며 기어다니는 팔레스타인 시민과 어린이 모습을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해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내 병원·학교가 하마스 은신처로 쓰이고 있음을 알리며 공격 명분을 확보하고 지지를 끌어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광고비를 지불하고 유튜브·X(구 트위터) 등에 하마스의 잔인함을 묘사하는 사진·영상도 신속하게 게시한다. 하마스와 일부 유엔 회원국의 이스라엘 전쟁범죄 주장에 물리적 증거를 확보해 반박하는 정보작전도 전개하고 있다.
평시에도 출처 불명 정보 활용 인지전 활발
인지전은 더 이상 전시에만 벌어지지 않는다. 세계 각국은 평시에도 자국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 형성을 위한 인지전을 전개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국가사이버안보센터는 지난해 11월 “중국 언론홍보업체가 국내 언론사로 위장한 웹사이트 38개를 만들어 기사 등을 무단으로 퍼뜨렸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가사이버안보센터에 따르면 이들 웹사이트는 국내 언론 기사를 정상적인 계약 없이 불법 게재하는 데 더해 출처를 알 수 없는 친중·반미 성향 콘텐츠도 함께 유포했다. 국정원은 “과거 이러한 수법은 미국 등 해외 서방 국가가 주요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한국을 상대로도 위장 언론 사이트와 게시글을 만들어 SNS에 유포하는 등의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국가 간 공격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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