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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약과 식수 있다… 따라오라” 사기 꺾고 심리 건드려 항복 유도

입력 2024. 12. 17   16:57
업데이트 2024. 12. 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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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인지전 시대 - 개념과 각국 대응


거짓과 조작 정보 만드는 능력
기술·수단 활용 어느 때보다 발달
상대국 군인·국민 불안 이용
물리전 전투만큼 중요해져
미·나토, 교리·연구보고서 발간
우리 공군 올 UFS 통합정보작전 훈련
가짜 정보전술 대비 시나리오 본격화

 

#.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군·경찰이 가진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대량 발송했다.

“러시아군이 이미 돈바스 지역에 왔다.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여러분을 파괴하기 전에 키이우로 돌진하라!” 등 우크라이나군 항복·귀순을 유도하거나 사기를 낮추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우크라이나도 가만있지 않았다. 전투 중 다친 러시아 병사를 발견한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비상약과 식수, ‘따라오라’는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떨어뜨려 항복을 유도하는 모습을 촬영해 전 세계 언론에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 휴대전화에 대량 발송된 항복권유 메시지. X(구 트위터) 캡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군 휴대전화에 대량 발송된 항복권유 메시지. X(구 트위터) 캡처

 


기술 발달 속 인지전 중요성 부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양측은 자국군과 국민의 사기를 높이고, 상대의 사기를 꺾는 심리전에도 총력을 다했다. 심리전이 각종 공격·방어무기를 활용한 물리적 전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현대전의 전장(戰場) 범위가 기존 지상, 해상, 공중을 넘어 사이버 영역까지 확장했으며 비물리적 영역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 속 주목받는 개념이 인지전(Cognitive warfare)이다. 인지전은 ‘적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의사결정과 행동을 하게끔 적의 인지과정을 공격하는 활동’을 말한다. 각종 무기를 다루는 주체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생각이라는 점에서 인지전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인지전의 중요성과 효과는 기술의 발달과 연동된다. 알론소 버널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2020년 ‘인지전 보고서’에서 “오늘날 거짓과 조작 정보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발달됐다”고 언급했다. 과거 심리전은 국가 정보통신 자산을 이용해 적 지휘부, 전장 주변 주민 등을 특정해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인지전은 한층 높아진 기술과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불특정 대중에게까지 영향을 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군 드론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항복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군 드론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항복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미 육군, 2017년 인지전 교리 발간

인지전을 통해 전시 상대국 군인·국민들의 불안전성을 높이고 전세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전문가 연구결과도 나오고 있다. 이를 토대로 세계 각국은 인지전에 필요한 유·무형의 준비를 하고 있고 이미 실행에 나서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 육군은 2017년 ‘인지전 교리’를 발간했으며 해군도 ‘2021년 미해군전력계획’에서 적의 가짜 정보전술에 대비하기 위한 예상 시나리오를 검토하며 인지전 준비를 본격화했다.

나토도 2020년 3월 발간한 ‘2040 전투수행기획 연구보고서’에서 “미래 전쟁은 사이버공간과 정보기술 발달을 토대로 불특정 다수 간의 내러티브 전투가 중요해질 것”이라며 인지전 연구에 본격 돌입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1999년 차오량·왕샹수이 중국 공군대령은 군사전략서 『초한전(Unrestricted Warfare)』을 공동 저술했다. 초한전은 ‘앞으로의 전쟁은 어느 특정 영역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전장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한정하지 않으며, 상대국이 내부적으로 등지게 하는 것이 목표다. 미 국방부는 책 내용을 중국군 교리의 근간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만과의 ‘양안갈등’ 속 중국이 대만에 관련 콘텐츠를 대량으로 배포하는 방식으로 인지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러시아도 ‘재귀통제(상대에게 의사결정 근거를 제공해 사고·행동하게 함)’ 개념을 활용해 다양한 인지전을 수행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크름반도(크림반도) 합병이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름반도에서 반우크라이나 정서를 조장하고, 러시아어 허용 집단의 역사의식과 감정을 자극하며 합병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공군본부 통합정보작전과 임무요원들이 지난 8월 ‘2024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일환으로 통합정보작전 훈련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공군본부 통합정보작전과 임무요원들이 지난 8월 ‘2024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일환으로 통합정보작전 훈련을 하고 있다. 공군 제공



우리 군도 관련연구·대응훈련 나서는 중 

우리 군도 인지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국방부는 2021년 내놓은 ‘국방비전 2050’에서 “상대 지도부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인지심리영역도 전장 영역에 포함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육군지상작전사령부는 2022년 연합지휘소 훈련 중 인지 영역에서의 작전 대응체계를 구축해 훈련에 적용했다. 육군교육사령부와 한국국방연구원, 합동군사대학교 등에서도 미래전에 대비한 인지전 발전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공군이 지난 8월 ‘2024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에서 적의 허위정보·가짜뉴스 유포 등에 맞서기 위한 통합정보작전 훈련을 전개한 것이 눈에 띈다. 훈련 참가자들은 허위정보를 식별하고 이에 기반한 여론·심리전에 대응하는 임무 수행방안을 검증했다. 지난 7월 1일에는 공군본부 내에 통합정보작전 전담조직 ‘통합정보작전과’도 신설했다.

일각에서는 인지전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토대로 장병들의 정신적 강인함을 키우는 방법까지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트레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우리 군 전투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하고, 공포·불안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임무를 수행토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 육군의 경우 2009년부터 군인의 심리적 회복력과 임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종합군인피트니스(CSF)’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최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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