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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로 돌아온 6·25전쟁 호국영웅 가족 품으로

입력 2024. 12. 15   15:18
업데이트 2024. 12. 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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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단, 신원 확인 2명 귀환행사
어론리전투 참전한 안병오 일병
춘천부근 전투 전사 안희문 하사

이근원(왼쪽)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고 안희문 하사의 유가족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이근원(왼쪽)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이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고 안희문 하사의 유가족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국가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유복자 아들과 돌쟁이 막내딸을 남겨 둔 채 입대했다가 전사한 2명의 호국영웅 신원이 70여 년 만에 확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지난 13일 “2005년과 2011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고(故) 안병오 일병과 고 안희문 하사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44명으로 늘었다.

안 일병은 1922년 3월 경기도 광주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결혼 후 1남 2녀를 뒀다. 29세의 늦은 나이에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아내와 세 아이를 남겨 둔 채 1951년 1월 31일 입대했다. 이후 안 일병은 부산 제2훈련소에서 교육받고 국군 5사단에 배치돼 ‘어론리전투(1951년 5월 16~18일)’에 참전했다. 그는 1951년 5월 18일 중공군의 연이은 대규모 공세를 저지하다가 입대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전사했다.

‘어론리전투’는 국군 5사단이 강원도 인제를 탈환한 뒤 소양강을 연하는 방어선을 구축해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한 전투다.

안 하사는 1926년 2월 경북 문경에서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내와 배 속 아들을 남겨 둔 채 자진입대했다.

안 하사는 대구 제1훈련소에서 훈련받은 뒤 국군 8사단에 배치됐다. ‘춘천부근 전투(1950년 12월 31일~1951년 1월 1일)’를 앞두고 춘천 내평리에서 방어선 구축 중 적을 저지하다가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1950년 12월 26일 전사했다.

‘춘천부근 전투’는 국군 3군단이 춘천·홍천·현리 일대에서 주저항선(主抵抗線)을 형성한 뒤 북한군 제2전선부대의 거점 확보를 위한 공격과 중공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지연전투다.

이날 두 전사자의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는 서울 서대문구와 경기도 부천의 유가족 자택에서 각각 열렸다.

안 일병의 막내딸 안난순 씨는 “젊은 나이에 혼자 3남매를 키우느라 고생만 하신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버지 유해를 찾았으니 현충원에 엄마 유해와 합장해 드리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조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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