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공군

장병 눈높이서 수사 적정성 심의한다

입력 2024. 10. 28   17:21
업데이트 2024. 10. 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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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 최초 도입 공군검찰장병위원회
현역 장교·부사관·병사 무작위 선정
의견 군검사에게 제시 ‘권고적 효력’

 

공군검찰장병위원회에서 군 검사와 위원들이 상정된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부대 제공
공군검찰장병위원회에서 군 검사와 위원들이 상정된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부대 제공



“당신 누구야!” 올봄 충청도의 한 마을에서 난데없는 고함이 새벽의 고요를 갈랐다. A씨가 혼자 있던 집에 허락 없이 들어온 이를 보고 놀라 외친 한마디였다. “죄, 죄송합니다!” ‘침입자’는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 같은 날 근처에 사는 B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잠든 B씨 옆에 누웠던 침입자는 금방 발각돼 도주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침입자를 같은 인물로 보고 112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침입자는 공군 현역 군인 C씨로 밝혀졌다. 군인 대상 수사이기에 사건은 군사경찰로 이첩돼 기소의견으로 공군검찰단에 송치됐다.

공군검찰단은 사건 처리 중 적정성 심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해당 사건을 ‘공군검찰장병위원회’에 넘겼다. 전군 최초로 도입된 검찰장병위원회는 군에서 발생한 형사사건과 관련, 장병·군무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수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의견을 권고하는 제도다. 위원회는 기소·불기소결정의 적정성, 약식명령 청구액, 구형량, 추가 수사 필요성 등 권고 의견을 군검사에게 제시한다. 위원회 결정은 권고적 효력만 있다. 위원회에서 ‘기소 권고’를 하더라도 검찰이 꼭 이를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이 사건의 위원회는 지난 21일 충남 계룡대 공군검찰단 회의실에서 열렸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건 처리를 돕기 위해 공군 각급 부대 현역 장교·부사관·병사들이 이곳을 찾았다. 위원들은 사건 관계자와 관련 없는 사람 중 무작위로 선정됐다. 이들은 공정성과 수사 보안을 위해 피의자의 소속·계급 등 개인정보를 일절 차단한 채 위원회에 참여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군검사 윤정우 중위는 2가지 쟁점에 관해 물었다. 첫 번째는 피해자 A·B씨의 주거침입을 한 C씨를 ‘기소유예’ 할지, 아니면 ‘약식기소’ 할지다. 기소유예는 형사처벌이 가능한 사안이지만 제반 사정을 참작해 기소를 면해 주는 것으로 불기소처분의 하나다. 약식기소는 벌금형을 구하는 간이한 기소처분이다.

쉽게 말해 C씨의 혐의는 분명하나 한 번 봐주느냐, 혹은 작게라도 벌을 줘야 하느냐를 묻는 것이다. C씨는 그간 범죄 전력이 없었던 초범이고, 비교적 젊은 나이였다. 또 군 복무를 10년간 성실히 해 왔으며 징계를 받은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피해자 모두 처벌의사가 없었다. C씨는 술에 취해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범행을 인정했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해자들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합의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남의 집을 무단으로 들어온 행위, 특히 새벽의 주거침입은 절대 가벼운 죄가 아니다. 군인 신분으로 절제 없이 음주 후 민간인 집을, 그것도 여러 집을 침입했다. 만약 젊은 이성의 집이었으면 죄는 더욱 무거웠을 것이다.

위원회는 기소유예에 무게를 뒀다. 유불리 사정을 따졌을 때 피해자들이 노년층이고 처벌의사가 없었으니 유리한 점이 불리한 점보다 크게 작용한다는 의견이었다. 기소유예돼도 내부 징계위원회가 열릴 텐데, 이것만으로 충분히 무거운 처벌이라고 봤다. 투표로 이뤄진 최종 판단도 기소유예 6명, 약식기소 1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두 번째 쟁점은 또 다른 피해자 D씨 사건이다. D씨 역시 C씨의 주거침입 피해자다. 차이점은 D씨는 C씨를 보지 못했다. D씨는 당시 해외여행 중이었는데, 돌아와 보니 창문 등이 파손됐다며 C씨가 침입을 시도해서라고 주장했다. 윤 검사는 D씨 주거침입과 손괴에 대한 C씨의 혐의 여부를 물었다. C씨가 D씨 집에 들어갔다는 정황만 있을 뿐 직접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C씨는 해당 건도 범죄 사실을 인정했고, 마찬가지로 D씨에게 합의금을 지급했다.

위원회 의견은 전보다 팽팽했다. ‘단순 자백도 아니고 합의금까지 전달했는데, 이 정도면 범죄 사실을 기억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과 ‘증거불충분 건까지 유죄로 인정할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맞붙었다. 후자의 견해에 힘이 더 실렸다. 한 부사관 위원은 “군인이란 특성상 저자세를 취했을 것”이라며 “기억이 안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합의금을 줬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병사 위원은 “대민 마찰 시 무조건 자리를 피하라고 지시받는다”며 C씨의 입장을 이해했다. 가해자와 같은 군인이기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위원회는 혐의 없음 6명, 인정 1명으로 최종 판단했다.

검찰장병위원회는 ‘장병 눈높이에 맞는 수사’를 위해 지난해 2월 도입됐다. 해박한 법률지식을 지닌 군검사라지만 군 내 사건 처리 과정에서는 어려움을 느낀다.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성 때문이다. 병과, 부대문화 등 ‘병영생활의 특수성’을 모르기에 범죄 의도나 고의성 등을 알아채기 힘들다. 검찰장병위원회는 이러한 ‘경험의 빈곤’을 채워 준다. 병영생활의 특수성을 잘 아는 위원들이 대중의 상식·사회통념에 따라 형사사건을 바라보고 권고 의견을 제시해서다. 공군검찰단은 “제도 도입으로 군검사의 판단에 공감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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