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해군·해병대

[밀리터리 人사이트] 나라 위한 영광의 흔적, 상처가 아닌 훈장 되도록

입력 2024. 08. 07   16:05
업데이트 2024. 08. 0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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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人사이트 - 김태성(전 해병대사령관) 퍼플하트 이사장 

군 생활 중 부상 제대 군인·가족들
법률·심리치료, 명예 회복 등 도움
해병대도 방산 수출 충분히 가능
34년 군 경력 살려 기여하고파

김태성(예비역 중장) 전 해병대사령관은 1988년 해군사관학교 42기로 임관한 뒤 34년간 해병대에 몸담았다. 주한미해병대사령부 연락장교를 시작으로 해병대사령부 작전계획장교, 한미연합군사령부 상륙기획장교, 합동참모본부 상륙기획장교, 해병대사령부 작전계획처장,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참모장, 해병대사령부 전략기획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해병 작전·전략 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2022년 전역한 그는 단국대학교 석좌교수,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경제사회연구원 국방센터운영위원, 한국국방연구원 객원연구원 등으로 현역 시절 못지않은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퍼플하트 이사장으로 군 복무 중 부상 당한 군인들을 지원하는 한편, ‘안중근 의사 찾기 한·중 민간상설위원회’ 부이사장으로 안 의사의 유해 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뜻있는 행보로 해병대는 물론 전군 후배들의 귀감이 된 김 이사장을 만나봤다. 글=송시연/사진=이경원 기자



- 먼저 퍼플하트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어떤 곳인가. 

“현재 서울시에는 청년 부상 제대 군인을 지원하는 서울시청년부상제대군인상담센터가 있다. 이 센터가 서울 지역의 부상 제대 군인을 지원한다면, 퍼플하트는 지역에 상관없이 많은 부상 제대 군인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사실 나도 군에 있을 때는 국가유공자가 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상당히 복잡하더라. 법과 규정을 알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간병을 위해 생업을 그만두기도 한다. 그런 친구들과 그 가족들을 돕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의 명예 회복과 안전한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원을 받은 뒤 후원자로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더 노력해야 한다.”

 


- 예산 운용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기부를 통해서 운영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만, 뜻있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셔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법률과 심리 지원은 재능기부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 퍼플하트는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인지.

“1년 평균 육·해·공군, 해병대 통틀어 40여 명의 장병이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위한 취업 알선과 자녀 장학사업까지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다. 책임감이 막중하다.”


- 부상 제대 군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현실적인 부분들이 하루빨리 해결돼야 한다. 특히 국가유공자 선정 문제가 시급하다. 법적으로 융통성이 없는 부분이 있다. 현재 사례를 모으고 있다. 사례 발표를 통해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홍보할 계획이다. 관련 법안 발의를 위해 국회의원도 만나고 있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지난해 9월 열린 퍼플하트 창립총회 모습.
지난해 9월 열린 퍼플하트 창립총회 모습.

 

퍼플하트 김태성 이사장과 임직원이 지난 6월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입원 환자를 위해 1000만 원 상당의 생활용품을 기부한 뒤 병원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퍼플하트 제공
퍼플하트 김태성 이사장과 임직원이 지난 6월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입원 환자를 위해 1000만 원 상당의 생활용품을 기부한 뒤 병원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퍼플하트 제공



- 안중근 의사 찾기 한·중 민간상설위원회에 대한 소개도 해달라.


“순국 113주기를 맞았지만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지난해 9월 설립됐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하얼빈 의거 이후 1910년 3월 중국 관동에서 순국했지만 그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안 의사는 ‘국권이 회복되면 유해를 고국으로 반장(返葬·타지에서 숨진 이를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내는 것)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제 이를 기억하는 국민들도 드물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러 노력들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 뜻있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활동 범위가 넓어질 줄 몰랐다. 조용하게 살고 싶었으나 나를 필요로 하더라.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34년 동안 해병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운이 좋아 사령관까지 지냈다. 앞으로 3년간은 봉사하겠다는 각오로 살고 있다. 방산 수출에 기여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있다. 사령관으로 지내면서 아쉬웠던 부분이다. 육·해·공군은 나름대로의 무기체계가 있어 방산 수출에 역할을 하고 있다. 해병대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상륙전 심포지엄(PALS)만 봐도 알 수 있다. PALS는 미 태평양해병대사령부가 인도 태평양 지역 상륙군 보유 동맹·우호국들이 안보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015년 개최한 국제 다자안보회의체다. 2017년은 우리 해병대가 주관했다. 당시 주무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만난 많은 국가의 해병대 사령관들이 우리 무기체계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전문 분야를 살려 해병대가 방산 수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

 


- 오랜 군 생활에서 지켜온 철칙이 있다면.

“정직과 충성, 그리고 업무 능력이다. 정직하지 않으면 부하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한다. 지휘관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정직은 기본이다. 사람인지라 어떤 상황이 닥치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는 본질보다 사건이 확대되는 상황을 많이 봐왔다. 정직이 사람과 사람 관계를 이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해병대는 지금도 관등성명을 할 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한다.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게 해병의 의무다. 해병대는 소군(小軍)이다. 작은 의견 하나라도 관철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결국 군도 예산 싸움이다. 엘리트 집단이 되지 않으면 예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능력을 키워야 한다.”


- 군인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는.

“영어 공부를 많이 하라고 말하고 싶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위탁교육과정도 많다. 석·박사 모두 가능하다. 특히 해병대는 미 해병대와 접촉할 일이 많다. 내가 사령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영어의 도움이 컸다고 생각한다. 나도 모시고 있던 연대장님의 권유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 시절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부대에서 여건을 마련해줘 갈 수 있었다. 요직을 두루 거친 것도 영어를 공부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연대장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그래서 나도 지휘관으로 있을 때 유학을 많이 보냈다. 그것이 군 생활에 있어 뿌듯한 일 중 하나다.”


- 군 생활에 필요한 정신자세에 대해서도 한마디 부탁한다.

“나는 여유롭게 일한 적이 없다. 합참에서 근무할 때는 하루에 2~3시간밖에 못 잤다. 스타일이 밤을 새우면 다음 날은 꼭 자야 한다. 밤을 새우는 게 능률이 오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열의가 있었다. 버텨지더라.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다. 또 내가 계급이 낮아도 큰일을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내가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면 일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달라진다. 당연히 성과물도 달라진다. 피동적인 사고가 아닌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임하면 된다.”


퍼플하트는
군 생활 중 다친 군인과 그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1월 출범한 국방부 소관 비영리사단법인. 국가유공자 신청을 위한 법률 지원과 육체·정신적 상처 치유를 위한 심리 지원은 물론 생업을 그만두고 다친 군인들을 간호하는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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