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해군·해병대

결의를 다지다, 바다를 채우다

입력 2024. 07. 26   16:25
업데이트 2024. 07. 2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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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오지 부대를 찾아서 ⑤ 
백령도 - 해병대6여단


20여㎞ 떨어진 곳에 적 해안포·미사일기지 즐비
하루 두 차례 고속단정 활용 정찰 해안 육안 확인
K9 자주포·K239 천무·스파이크 등 배치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전 계기 전력 증강

서해 최북단에 자리한 백령도에서 평양까지 직선거리는 143㎞다. 우리 땅인 인천(173㎞)까지의 거리보다도 짧다. 옹진반도와 맞닿은 백령도는 분단으로 지금은 북한 지역에 둘러싸인 ‘외딴섬’이 됐다. 백령도에선 서해 북방한계선(NLL) 너머로 북녘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육안으로 보이는 고즈넉한 모습과 달리 이곳엔 해안포·장사정포 등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해병대6여단은 이러한 적 위협에 맞서 백령도·대청도·소청도로 이어지는 백령도서군을 수호하는 부대다.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적과 마주한 섬을 지키는 해병대 장병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 15일 백령도로 향하는 쾌속선에 몸을 실었다. 글=이원준/사진=김병문 기자 

지난 15일 해병대6여단 장병들이 인천 백령도 해안에서 정밀탐색작전을 하고 있다.
지난 15일 해병대6여단 장병들이 인천 백령도 해안에서 정밀탐색작전을 하고 있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 용기포신항까지는 쾌속선으로 3시간을 달려야 한다. 오전·오후, 하루 두 차례 운항하지만 높은 파고와 짙은 해무로 결항하는 날도 잦다. 운항 여부는 주로 당일 이른 아침 결정되는데, 이 때문에 백령도 주민뿐 아니라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 휴가·외박을 나오는 해병대 장병들은 아침까지 노심초사하기 일쑤다. 게다가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7월. 백령도에 무사히 입도하기 위해선 상당한 운도 필요하다. 다행히 이날 인천발 쾌속선은 정상운행했다. 

용기포신항에 도착하자 항구 입구에 세워진 ‘백령도’ 대형 안내판이 가장 먼저 눈이 들어왔다. 안내판 주위로 뻗은 산줄기는 푸른 녹음으로 뒤덮인 모습이었다. 관광객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한 항구를 벗어나자 이내 적막함이 찾아왔다. 섬을 일주하는 왕복 2차로 도로엔 드문드문 차량이 오갔다.

상륙기습기초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이 패들링 자세를 숙달하고 있다.
상륙기습기초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이 패들링 자세를 숙달하고 있다.
지난 15일 백령도 북동방 해상에서 해병대6여단 고속단정(RIB)이 빠른 속도로 기동하며 해상정찰을 하고 있다.
지난 15일 백령도 북동방 해상에서 해병대6여단 고속단정(RIB)이 빠른 속도로 기동하며 해상정찰을 하고 있다.

 

장병 170여 명 자원해서 상륙기습기초훈련 실시 

가장 먼저 백령도 남측 해변에 위치한 6여단 훈련장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소형고무보트(IBS)를 활용한 상륙기습기초훈련이 전개되고 있었다. 맑은 백사장 위에서 패들링 연습을 하는 장병들 모습, 푸른 바다를 힘차게 전진하는 10여 척의 IBS 모습까지 훈련장은 바쁘게 돌아갔다.

2주간 진행된 상륙기습기초훈련에는 장병 170여 명이 참가했다. 모두 훈련을 자원한 장병들이다. 지원자가 많이 몰리자 여단은 일정 체력 기준을 통과한 인원만 선발했다고 한다. 훈련 기간엔 육·해상에서 IBS 운용을 위한 장비 분해·결합, IBS 운반·이동, 패들링, 진수·접안절차를 교육한다.

훈련의 대미는 IBS로 백령도에서 대청도까지 수 킬로미터를 오가는 장거리 패들링 훈련. 현행작전 부대원으로서 훈련까지 열정적으로 수행하는 장병들 눈빛에서, 적이 도발하면 응징하겠다는 결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백령도 전진기지에는 해군 함정 및 전투근무지원정과 해병대 고속단정(RIB)이 부두에 계류돼 있었다. 마침 RIB 해상정찰이 예정돼 있어 임무 현장에 동행하기로 했다. 6여단은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 고속단정을 활용한 정밀 정찰을 실시한다. 육상 감시장비로 확인이 어려운 백령도 해안 곳곳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한 차원이다.

전투장구를 갖춘 장병들은 소총과 탄약을 챙겨 고속단정에 승선했다. 선수에 거치된 K6 중기관총을 보니 실제 작전임이 실감 났다. 부두를 이탈해 고속단정은 빠른 속도로 북측 해안으로 이동했다. 멀리 바다 너머로 북한 장산곶과 월래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 백령도와 불과 20여㎞ 떨어진 장산곶에는 적 해안포와 미사일기지 등이 즐비하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 여단은 외딴섬에서 작전과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공습경보 상황이 부여되자 30㎜ 대공포 천호로 달려가고 있는 장병들.
공습경보 상황이 부여되자 30㎜ 대공포 천호로 달려가고 있는 장병들.


사랑 설화 담긴 백령도, ‘군사요새’가 되다 

365일 긴장감이 흐르는 섬. 역설적이게도 백령도란 이름은 ‘사랑’의 설화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먼 옛날 황해도의 가난한 선비와 사또의 딸이 사랑에 빠져 장래를 약속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또는 딸을 외딴섬으로 보냈다. 시름시름 앓던 선비에게 어느 날 백학이 나타나 사랑하는 여인의 편지를 전해줬다. 덕분에 감격스러운 재회를 한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 훗날 사람들은 백학(白)의 날개(翎)가 이어준 섬이라 해 백령도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사랑과 평화로 가득했던 섬은 6·25전쟁으로 큰 부침을 겪었다. 섬에 온 북한군은 식량과 물자를 수탈하며 주민들을 괴롭혔다. 우리 해군·해병대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한 뒤 백령도를 비롯한 서북 전략도서를 탈환했다. 특히 백령도는 전쟁 기간 전진기지로 활용됐다. 정전 후 백령도서군에 경비부대를 운영하던 해병대는 1970년대 시작된 북한의 서해5도 도발에 맞서 도서방어부대로 격상했다. 지금의 6여단이 본격적으로 탄생한 시점이다.

지금의 백령도는 ‘군사요새’다. 1970년대부터 백령도에 전력을 증강한 해병대는 동시에 섬을 요새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대만 금문도(진먼섬)를 참고해 백령도를 난공불락의 기지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이로 인해 지상에는 105㎜ 곡사포와 퇴역 전차에서 떼어낸 90㎜ 전차포가 배치됐고, 땅 밑에는 군기지를 비롯해 섬 곳곳을 연결하는 지하시설이 생겼다. 이 시설은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해안포로 활용된 M47 전차는 백령도 명소인 심청각에 실물로 전시돼 있다.

2010년대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전을 계기로 6여단은 다시금 전력이 증강됐다. 백령도엔 K9·K9A1 자주포, K1E1 전차, K239 천무 다연장로켓, 스파이크(Spike) 유도탄 등이 배치돼 있다. 적 항공기·무인기 등 위협에 맞서 방공체계도 빼곡하다. 고지에는 최신형 30㎜ 대공포 천호가 상시 대비태세를 유지 중이다.

자부심으로 365일 24시간 내내 경계작전 

백령도를 지키기 위한 경계작전은 365일, 24시간 내내 이뤄진다. 반복되는 일과를 나누는 경계선이 있다면 일몰과 일출이다. 6여단 경계작전부대는 태양이 떠오르고 지는 시간, 하루 2차례 정밀탐색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2~3명이 조를 이뤄 해안을 순찰하며 통문·배수로 등 주요 지점에 침투 흔적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는 절차다. 백령도 전역에 열상감시장비(TOD)를 비롯한 감시장비가 있지만, 현장에서 활용하는 사람의 ‘오감’을 이길 수는 없다.

하루가 마무리되는 늦은 오후, 연화리소초 최주은(중위) 소초장과 문진영 상병, 남태광 일병을 따라 정밀탐색작전에 동행했다. 이들이 나선 곳은 백령도 서쪽 끝자락의 연화해변. 낮에만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연화해변은 해넘이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대한민국 최서북단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경계근무는 전체적으로 일과가 반복되어 흘러갑니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임무가 있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전 임무에 나설 때만큼은 긴장합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또한 언제·어디서·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최 소초장의 말처럼 탐색작전팀은 해변을 걸으며 통문과 배수로, 해안의 부유물을 꼼꼼히 확인했다. 바다를 붉게 물들인 낙조가 이들의 조명이 돼 줬다.

오는 2027년 백령공항이 들어서면 백령도는 큰 변화를 맞을 예정이다. 접근성이 확연히 커지는 만큼 많은 관광객이 섬을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만큼 백령도서군을 수호하는 해병대 장병들의 어깨는 무겁다. 또다시 진화를 앞둔 백령도, 그곳에서 펼쳐질 6여단의 활약이 기대된다.

6여단과 함께해 온 ‘해병 할머니’

해병대6여단 역사관에 전시된 해병 할머니 관련 전시물.
해병대6여단 역사관에 전시된 해병 할머니 관련 전시물.


섬에 주둔하는 6여단은 민·군 상생에 앞장서고 있는 부대다. 농가 비율이 많은 특성을 고려한 농번기 대민지원부터 고령층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봉사와 장수사진 촬영 지원까지 주제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사곶해안 등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환경 정화 활동을 펼치며 깨끗한 백령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적극적인 대민활동 덕분에 해병대를 비롯한 군 장병을 바라보는 주민 시선도 우호적이다. 

이튿날 찾은 6여단 역사관에선 평생을 ‘해병 할머니’로 살아온 고(故) 이선비 씨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2년 별세한 이씨는 대청도에 해병대가 주둔한 1951년부터 장병들과 한평생 사랑을 주고받았던 인물이다. 낮에는 엿장수와 고물장수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하며 어렵게 생활해 오던 그는 어느날 한 해병의 군복을 바느질해 주며 해병대와 인연을 맺었다. 그때부터 그는 장병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먹였고, 찢어진 군복을 수선해주기도 했다.

이씨는 손자 같은 장병들의 편지를 대신 부쳐주거나 고민을 들어줬다. 적응이 미숙한 해병들을 그에게 보내 상담 받도록 하는 지휘관도 있었을 정도. 이렇게 해병대 장병들은 자연스럽게 ‘해병 할머니’라고 부르게 됐다. 장병들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가게 도배와 페인트칠 등을 하며 일손을 도왔고 ‘해병 할머니 집’이라는 간판을 직접 만들어 달기도 했다.

팔순이 넘어 기력이 없을 때에도 집 앞을 지나가는 해병들이 눈에 보이면 버선발로 나와 과자 하나라도 꼭 쥐여주며 다독거려준 이씨는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의 손에 의해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해병 할머니의 마지막 여정은 해병대가 배웅했다. 6여단은 할머니가 해병대로부터 받은 기념품과 표창장, 장병들과 찍은 사진 등 유품을 역사관에 전시하며 뭉클한 이야기를 길이 전하고, 장병 정신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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