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공군

생존을 위한 땀방울, 이기는 법을 배우다

입력 2024. 07. 26   16:08
업데이트 2024. 07. 28   13:45
0 댓글

2024 하계군사훈련 현장을 가다-공군사관학교 해양생환훈련

공사 생도가 바다에 간 이유 
무더위 속 2학년 생도 200여 명 훈련…비상상황 생존능력 함양
원영·입영 등 3단계 생존법 숙달 치중…사관학교장 현장 격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는 전투조종사로” 도전·성장 가치 배워

작열하는 태양,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바다의 차가운 기운이 뺨을 스친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청년들의 함성이 공기를 가른다. 앳된 청춘들의 눈빛에는 독기가 차올랐다.
얼굴엔 소금기 엉겨 붙은 땀방울이 흐르고, 검게 그을은 피부는 단단하게 굳어 있다.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거대하게 솟구치는 파도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닷물을 잔뜩 먹고, 모래사장에서 흙범벅이 돼도 힘찬 함성만 지를 뿐.
이 모두 가장 높은 곳에서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2024 하계군사훈련 현장을 가다’ 세 번째 순서는 하늘로 도약을 준비 중인 공군사관학교(공사) 2학년 생도들에게 용기와 결단력을 안겨 준 해양생환훈련이다.  글=김해령/사진=김병문 기자

공군사관학교 2학년 생도들이 지난 24일 충남 보령시 공군해양생환훈련장에서 진행된 해양생환훈련에 앞서 뜀걸음을 하고 있다.
공군사관학교 2학년 생도들이 지난 24일 충남 보령시 공군해양생환훈련장에서 진행된 해양생환훈련에 앞서 뜀걸음을 하고 있다.


망망대해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다 

지난 24일 오후 1시 충남 보령시 공군해양생환훈련장. 오전 내내 하늘에 드리웠던 짙은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긴 장마로 오랜만에 보는 창공이지만, 하계군사훈련이 한창인 공사 생도 입장에서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일. 푹푹 찌는 더위와 드넓은 바다는 생도들의 결의를 시험하는 무대였다.

공사 2학년 생도 200여 명은 지난 22일부터 이곳에서 훈련 중이다. 대부분 조종사를 꿈꾸는 이들이 바다를 찾은 이유는 ‘바다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비행 중 기체 결함, 적 공격 등으로 비상 탈출했을 때 망망대해 혹은 얼음물 위에 떨어진 최악의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 귀환하는 생존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해양생환훈련의 목적이다.

공중 근무자들이 바다에 빠지면 오랜 시간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동이 아닌 길게 생존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총기를 파지하는 등 ‘전투’를 목적으로 수영을 배운다면, 공사의 교육은 생존법 숙달에 치중한다.

이 같은 이유로 생도들은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고, 에너지를 최대한 비축할 수 있는 영법인 원영(遠泳·먼 거리 수영)과 입영(立泳·서서 치는 헤엄)을 주로 익힌다. 원영은 물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입영이 능숙해지면 장시간 떠 있는 것이 가능해진다.

해양생환은 3단계로 구분된다. 1단계는 원영으로 50m 이상 움직이면서 입영을 2분 이상 지속하는 것이다. 2단계는 원영 300m·입영 10분 이상, 마지막 단계는 원영 500m·입영 15분 이상이 기준이다. 생도들은 1학년 하계군사훈련 과정인 수중생환훈련에서 수영법을 습득했다. 또 이번 훈련 첫날 안전교육과 파도 체험 등으로 해양환경 적응 준비를 마쳤다.

생도들이 훈련 전 정렬한 모습.
생도들이 훈련 전 정렬한 모습.
생도들이 체력훈련의 하나로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생도들이 체력훈련의 하나로 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쥐 나고, 파도쳐도 스스로 생존한다 

본격적인 해양생환훈련은 둘째 날부터 진행됐다. 훈련은 수영 능력에 따라 3개 반(A·B·C1·C2)으로 나뉘었다. 수영 능력 수준은 1학년때 수중생환훈련 평가로 정해졌다. 안전을 위해 훈련장에는 6탐색구조비행전대 항공구조사(SART)들이 항시 대기했다.

이날도 바다에서 원영·입영 습득 훈련이 이어졌다. 간단한 뜀걸음으로 몸을 푼 생도들이 해변 곳곳에 모였다. 오후 훈련에서 제일 먼저 입수한 이들은 ‘파란색 수모’를 쓴 B반이었다. B반은 수영하는 법은 알지만, 바다 수영엔 익숙지 않은 이들. 하지만 전날부터 이날 오전까지 훈련받으며 바닷물과 제법 친해진 모습이었다.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든 B반은 발이 거의 닿지 않은 깊은 곳까지 맨몸으로 헤엄쳐 간 다음, 대열을 맞춰 입영했다. 입영은 발차기만으로 떠 있어야 해서 생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정이다. 생도들은 거친 파도 탓에 물을 먹고 자세가 흐트러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입영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한 생도가 한꺼번에 많은 물을 먹었다. 현장에서 대기하던 항공구조사가 생도에게 다가가 고무보트에 탑승할 것을 권유했으나, 생도는 스스로 헤엄쳐 나가겠다며 육지로 향했다.

모래사장에서 만난 생도는 다리를 절뚝거렸다. 이지성 생도는 “갑자기 다리에 경련이 나서 움직일 수 없었다”며 “당황했지만,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혼자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기에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곧이어 ‘빨간색 수모’의 A반도 바다로 들어왔다. 2학년 중 수영 능력이 가장 우수한 생도들로 이뤄진 A반은 육지 방향으로 들이닥치는 파도를 가로지르며 헤엄치는 훈련을 했다. 바다 한 가운데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교관이 까마득히 먼 곳으로 이동한 뒤 A반 생도들에게 신호를 줬다. 자신이 있는 곳까지 오라는 뜻이었다. 만조의 높은 파도가 덮쳤지만, 완주하겠다는 생도들의 의지를 뛰어넘진 못했다. 생도들은 다소 천천히 움직였다. 속도보다는 오랜 수영으로 살아남는 게 목적이어서다. 체력이 부족할 때는 팔다리 움직임 없이 호흡만으로 수면 위로 떠 오르며 체력을 비축했다.

같은 시간. 모래사장에선 ‘하얀색 수모’를 쓴 C1반의 체력단련이 열렸다. 교관들은 생도들의 흥미를 돋우고자 달리기 시합을 기획했다. 모래사장에 라바콘을 놓은 후 누가 더 빠른지를 겨루는 방식이었다.

이날 훈련장에는 ‘몰래 온 손님’도 있었다. 공승배(소장) 사관학교장이었다. 공 교장은 멀리서 생도들의 훈련 과정을 지켜보다 쉬는 시간에 격려의 말을 건넸다. 공 교장은 “덥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열심히 훈련하는 생도들이 자랑스럽다”며 “훈련에서 엄청난 수영 능력을 길러 생존하겠다는 것보다 바다를 경험하고, 해양환경에서의 생존법을 배운다는 목적을 달성하자”고 당부했다.

밀려드는 파도를 가르며 헤엄치는 생도들.
밀려드는 파도를 가르며 헤엄치는 생도들.
바다에 뛰어든 생도들이 발차기만으로 대열을 맞추고 있다.
바다에 뛰어든 생도들이 발차기만으로 대열을 맞추고 있다.


마지막까지 훈련 ‘구슬땀’ 

훈련은 26일을 막을 내렸다. 마지막 날에는 해양생환훈련 최종 평가를 했다. 바다에 조난된 조종사에 이입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잘 살아남는지 확인하고, 점수를 매기는 시간이다. 평가 점수는 추후 졸업성적에 포함되는 만큼, 생도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했다.

훈련을 마친 생도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성취감이 어렸다. 이들은 생존법뿐만 아니라 도전과 성장의 가치도 함께 배웠다.

오현석 생도는 “바다 수영 경험이 전혀 없어 걱정이 많았는데, 교관님과 동기들의 넘치는 열정 덕에 즐겁게 훈련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배영윤 생도는 “뜨거운 햇빛과 거친 파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극복하는 법을 배우니 더 이상 바다가 두렵지 않다”며 미소를 지었다. 노유래 생도는 “단순히 물리적인 생존 기술이 아닌, 정신적인 강인함도 기를 수 있었던 훈련”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는 전투조종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지·해·공 어디서든 생환 

첨단 기술의 집합체인 항공기를 운용하는 공준 조종사의 가치는 매우 높다. 조종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남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정예 조종사를 양성하는 공사는 생도들이 하늘과 땅, 바다에서의 생존 능력을 배양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하계군사훈련을 체계적으로 계획했다.

1학년은 지상생환훈련을 통해 인내심과 극기력, 유사시 작전지속 능력을 숙달한다. 2학년은 해양 생리의 이해와 바다에서의 적응·생환 능력을 향상한다. 3학년은 강하를 중심으로 공중생환 능력을 배양한다.

김건희(소령) 공사 항공체육처 교수는 “조종사는 잘 싸우는 것만큼, 잘 생존해야 한다”며 “생도들을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살아 돌아와 다시 싸울 수 있는 조종사로 육성하기 위해 생환훈련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