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날개 달고…병역면탈 범죄 뿌리 뽑는다
전원 특별사법경찰로 구성
온라인 전문 조직 ‘병무청 사이버조사과’
법 개정 통해 검찰 송치까지 가능해져
병역기피자 수사·유해 게시물도 대상
온라인 게시글 24시간 감시
한 명이 하루에 100건 이상 확인·분석
자동 검색 프로그램 개발…속도·정확도 높여
최근 수사권 확보 “병역면탈 사라지는 날 꿈꿔”
2023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뇌전증 질환을 악용한 대규모 병역면탈 사건이다. 병무청은 검찰청과 합동수사팀을 꾸려 브로커, 면탈자, 공범 등 무려 130명을 적발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병역면탈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이와 함께 갈수록 지능화·다양화하는 사이버상에서 익명성을 숙주 삼아 기생하는 병역면탈 범죄를 박멸하기 위한 전담 조직의 필요성이 급부상했다. 국내 유일의 온라인 병역면탈 전문 수사 조직인 병무청 사이버조사과가 올해 초 출범하게 된 이유다. 사이버조사과는 지난 5월 법적 처벌 조항 신설과 함께 17일 병역면탈 조장 정보 게시·유통자 수사권 확보로 범죄 척결을 위한 ‘쌍두마차’를 얻게 됐다. 사이버조사과의 온라인 수사 현장을 단독 공개한다. 글=임채무/사진=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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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면탈 척결 주역 ‘병무청 특사경’
날 선 옷 주름과 왼쪽 어깨에 부착된 기관 마크, 가슴의 명찰까지. 분명 ‘제복’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있던 곳은 정부대전청사 내 병무청 사무실이었다. 사복 차림의 공무원만 있을 것 같던 이곳에 제복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궁금증도 잠시, 이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 부분은 조사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참, 지난번 병역면탈조장정보심사위원회에서 ‘조사 필요’로 나왔던 부분도 보완해야 합니다.”
이들의 정체는 사이버상에서 병역면탈 조장 정보를 예방·단속하고 나아가 자체 조사·수사, 검찰 송치까지 하는 병무청 사이버조사과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었다. 수사관으로 불리는 이들의 업무 모습은 다소 정적이었다. 여러 모니터를 보며 이해하기 어려운 컴퓨터 코드를 숨이 가쁘게 치는 TV 드라마 속 사이버수사관과는 차이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죠? 저희 업무가 사이버에 게시된 글 중 병역면탈 조장 정보와 관련된 것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에 다들 집중해서 모니터를 봐야 하거든요.”
특사경 조수경 수사관의 말이다. 그가 하루 확인·분석하는 병역면탈 조장 정보 의심 게시글은 100건 이상. 이것도 ‘병역면탈 조장 정보 자동 검색·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대폭 줄어든 것이다.
“프로그램 도입 전까지는 주요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 SNS에 들어가서 키워드를 하나하나 입력·검색해야 했어요. 이제는 프로그램이 병역면탈 의심 글을 자동으로 수집·분류해 줘요.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저희가 최근 3년 동안 모니터링했던 내용을 학습시켜 상당히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죠. 그래도 아직은 분류된 정보를 사람이 다시 한번 확인하고, 최종 분류해야 해요.”
직접 두 눈으로 본 프로그램은 직관적이면서도 체계적이었다. 온라인에 게재된 병역 관련 글이라면 24시간 멈추지 않고 수집할 뿐만 아니라 이를 사이트별로 면탈과 민원 정보 등으로 자동 분류했다. 특히 면탈 정보의 경우 유형·질병별까지 구체적으로 분류해 수사관들의 분석을 도왔다. 또 프로그램에서 바로 해당 게시글을 접속할 수 있는 기능도 내장해 번거로움을 덜었다. 조장 정보로 분류하면 일·월 단위 보고서가 자동 생성돼 수사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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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100건…프로그램 덕분에 줄어
“조장 정보로 의심된다고 해서 바로 조사·수사하지는 않아요. 수사의 중요성만큼 표현의 자유도 보장해야 하니깐요. 그래서 객관적인 법률 검토가 이뤄지는 병역면탈조장정보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조장 정보 의심 글들을 심의해요. 이곳에서 조사(내사) 여부를 결정짓습니다. 지난 5월 확인된 71건을 6월에 심의했는데, 이 중 12건이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됐습니다.”
기존에는 심의 내용을 바탕으로 포털사이트 등에 삭제 요청을 하거나 검찰에 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김백수 수사관은 말했다. 그동안은 온라인 병역면탈 조장 정보 게시·유통에 대한 수사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5월 1일 온라인 병역면탈 정보 게시 유통 금지와 위반자 처벌 등의 내용이 담긴 병역법 개정안 시행에 더해 은밀하게 이뤄지는 사이버상 병역면탈 범죄를 뿌리 뽑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위원회 심의 후 수사(내사)는 물론 검찰 송치까지 가능해졌다.
김 수사관은 “개정안이 이제 막 시행돼 데이터를 제시할 수 없지만, 독자적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속한 단속과 적극적인 수사가 기대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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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증거 확보가 혐의 입증 관건
온라인 병역면탈은 사이버상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 교묘·정교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범죄 수사에 있어서도 고급 기술과 첨단 분석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이버조사과의 ‘디지털 포렌식 분석실’은 그런 의미에서 범죄 혐의점을 밝혀내는 또 다른 수사 현장이다. 사이버조사과 안에 있는 분석실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포렌식 과정에서 사생활이 유출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수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디지털 증거가 이곳에서 확보되기 때문이죠.”
휴대전화를 분석하던 포렌식분석관의 설명이다. 그는 관련 분야 석사학위와 여러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다.
포렌식 분석은 모바일 포렌식 분석 프로그램과 복제 장비, 이를 구동하는 워크스테이션 등을 통해 이뤄진다. 단순히 휴대전화나 컴퓨터 자료를 복사해 증거를 찾는 게 아닌,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자료의 신뢰성을 위해 무결성을 입증해야 하고, 증거 인멸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데이터 복원도 해야 한다. 데이터 양에 따라 분석 시간도 천차만별이다. 노 분석관은 무엇보다 사건과 관련된 데이터만 추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데이터만 뽑아서 주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예요. 그런 부분에서 수사관님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딱 필요한’ 자료 확보에 주력하고 있어요. 또 사건이 송치되거나 내사 종결되면 그 즉시 자료를 파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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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보다 예방이 중요
사이버조사과는 수사권 확보에 발맞춰 다양한 준비를 해왔다. 수사 능력 배양을 위해 법무연수원 교수진·검찰 수사관 등을 수시로 초빙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수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자체 수사 매뉴얼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권역별 기피자 통합수사체계 구축도 중요한 성과다. 병역면탈 수사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도입한 이 체계는 현장청과 광역수사청, 본청을 유기적으로 엮어 신속한 수사 지원을 가능하게 한다. 현장청에서 단독으로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광역수사청과 일대일 매칭이 돼 수사에 착수하고, 이 과정에서 실시간 본청에서 지원 여부 등을 판단해 조치를 취한다. 비록 현장의 위치는 다르나 병무청 병역면탈 수사 인력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사이버조사과는 포털사이트, 대학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병역면탈을 시도할 경우 강력하게 처벌받는다는 점을 홍보하고 있다.
이진우 사이버조사과장은 “병역면탈자 대부분이 20대 초·중반 청년들”이라며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열심히 하면 병역면탈이 사라질 것이라는 꿈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월 공식 출범…분석·수사·병무사범 관리
사이버조사과는 전원 특별사법경찰로 구성, 지난해 12월 31일 신설됐고 올해 1월 2일 개소식과 함께 공식 출범했다. 사이버조사과는 사이버분석, 사이버수사, 병무사범 관리 등이 핵심 업무다. 구체적으로는 병역면탈 불법 정보 게시·유통을 예방·단속하고, 사이버 병역면탈 범죄와 병역기피자를 직접 수사한다. 유해 정보로 확인된 게시물의 삭제 조치 등 사이버상 병역면탈 조장 정보 확산 방지 활동도 한다.
지난 5월 1일 병역면탈 조장 정보 게시·유통의 처벌 규정을 강화한 병역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조장 정보 종류의 구체화 등을 위해 시행령 개정과 훈령 제정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 경력자 위주로 선발된 사이버 감시 활동 단체인 ‘제2기 시민감시단’을 운영하고, 수작업 모니터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조장 정보 자동 검색·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해 촘촘한 감시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7월 17일 특별사법경찰 직무 범위 확대에 따라 조장 정보 예방·단속을 넘어 자체 조사·수사와 검찰 송치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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