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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생도 … 가평에서 참전용사 선배를 기리다

입력 2024. 07. 10   17:09
업데이트 2024. 07. 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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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들리십니까 후배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선배님 보이십니까 후배들의 용맹스러운 기개가…

프랑스 육사 ‘구필 기수’ 190여 명 
경기도 지평리전투전적비 찾아
6·25 영웅 로베르 구필 대위 참배 

 

로베르 구필(Robert Goupil) 대위는 1950년 미2보병사단 23연대 프랑스대대 소속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지평리전투와 단장의 능선 전투 등에서 활약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머나먼 이국땅에서 산화했다. 그리고 70여 년이 지난 2024년, 그의 용맹함과 기개를 배우고자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육사) ‘구필 기수’ 생도들이 한국을 찾았다. 선배 전우의 뜻을 이으려 먼 길을 온 프랑스 육사 생도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글=배지열/사진=김병문 기자

 

10일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전투전적비를 찾은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구필 기수’ 생도들이 기수 군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로베르 구필 대위를 향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10일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전투전적비를 찾은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구필 기수’ 생도들이 기수 군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로베르 구필 대위를 향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에릭 펠티에(가운데) 프랑스 합동참모본부 국제협력부장이 헌화한 후 경례하고 있다.
에릭 펠티에(가운데) 프랑스 합동참모본부 국제협력부장이 헌화한 후 경례하고 있다.


머나먼 한국서 만나다 

전날까지 세차게 내리던 장맛비가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게 하늘이 갠 10일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전투전적비. 190여 명의 프랑스 생시르 육사 209기 생도가 이날 이곳을 방문했다. 이들은 6·25전쟁에 참전한 로베르 구필 대위를 기수 명칭으로 하는 ‘구필 기수’ 생도들이다.

1802년 나폴레옹이 창설한 생시르 육사는 생도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모범이 되는 장교 또는 승리의 역사를 간직한 전투의 이름을 선정해 각 기수의 명칭으로 부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구필 대위는 1941년 생시르 육사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 등에 참전했고,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원해 한국으로 향했다. 지평리전투와 인제전투 등에서 활약한 공로로 미 군단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북한군 2개 사단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던 중 적 박격포탄에 맞아 1951년 9월 26일 전사했다. 한국과 프랑스는 2007년 경기도 가평군 성황당교(일명 구필대교) 옆에 구필 대위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구필 대위와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오늘 행사를 진행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능숙한 한국어로 기념식의 문을 연 프레데릭 에토리 프랑스 국방무관의 진행에 따라 프랑스 국가와 애국가, 미국 국가가 순서대로 울려 퍼졌다. 한국군과 미군 군악대가 번갈아 연주하면서 의미를 더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행사를 주관한 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를 포함해 에릭 펠티에(소장) 프랑스 합동참모본부 국제협력부장, 찰스 롬바르도(소장) 미2사단장, 권혁동(소장) 육군11기동사단장 등 군 관계자와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구필 대위·랄프 몽클라르 장군의 유가족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생시르 생도 대표의 연설에 이어진 추모사에서 권 사단장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참전 영웅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한다”며 “이번 방한을 계기로 양국 군사협력 발전에 ‘구필 기수’ 여러분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헌화와 분향, 그리고 조총과 묵념으로 참전영웅들의 넋을 기리고 예를 갖췄다. 생시르 생도들은 마지막으로 구필 기수만의 군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선배 전우를 향한 마음을 전했다.

생시르 육사 생도들이 6·25 참전용사를 기수명으로 선정하고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87년 ‘몽클라르 장군 기수(171기)’ 이후 37년 만의 일이다.

행사에 참석한 몽클라르 장군의 아들 롤랑 몽클라르(74) 옹은 “한국군과 프랑스군 생도들이 이렇게 모인 모습을 보니 감동적”이라며 “아버지께서 한국군도 배급을 잘 받을 수 있게 신경을 쓰셨다고 들었다. 지금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것”이라는 감회를 털어놨다.


강정애(왼쪽) 국가보훈부 장관이 특별 제작한 구필 중대 깃발을 구필 대위 유가족에게 전달하고 있다.
강정애(왼쪽) 국가보훈부 장관이 특별 제작한 구필 중대 깃발을 구필 대위 유가족에게 전달하고 있다.


되살아난 중대 깃발… 

행사 후에는 강 장관이 보훈부에서 특별 제작한 구필 중대 깃발을 전달해 의미를 더했다. 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구필 대위가 지휘한 2중대 깃발 디자인에 생시르 구필 기수의 상징 휘장을 더해 깃발을 만들었다. 구필 대위의 용맹함과 숭고한 정신을 미래세대까지 이어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구필 기수는 선배의 투혼과 정신을 계승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이 깃발을 활용할 예정이다. 유가족에게는 액자에 담은 깃발이 전해졌다.

강 장관은 “우리 정부는 구필 대위를 비롯한 프랑스군의 희생과 공헌에 보답하며, 유엔군 참전의 역사를 미래세대로 이어가기 위한 재방한 초청행사와 참전용사 후손 교류 캠프 등 다양한 국제보훈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육군11기동사단 질풍대대를 방문한 프랑스 육사 생도들이 K2 전차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육군11기동사단 질풍대대를 방문한 프랑스 육사 생도들이 K2 전차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K2 전차에 관심 폭발 

장소를 옮겨 사단 예하 질풍대대로 향한 생도들. 전쟁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그동안 한국군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이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대대에서 마련한 좌석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힌 이들 앞에 굉음과 함께 K2 전차가 등장했다. 생도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어서 포신과 차체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다양한 기동 자세를 선보이자 생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흙먼지를 휘날리며 8자 기동까지 완벽하게 수행하자 다시 한번 박수가 쏟아졌다.

다음은 전시된 주력 장비를 둘러보는 시간. K2 전차를 필두로 K9A1 자주포, K242·277A1·281 장갑차, K600 장애물개척전차 등이 자리했다. 생도들은 차례로 설명을 들으면서 질문을 건넸고, 충분한 답을 듣자 서툰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대대에서 마련한 튀긴 건빵을 받아가는 프랑스 육사 생도들.
대대에서 마련한 튀긴 건빵을 받아가는 프랑스 육사 생도들.


손길 가는 튀긴 건빵 

대대는 더위에 지친 생도들을 위해 튀긴 건빵 간식과 수육·수프·크로켓 등으로 구성된 푸짐한 식사를 준비했다. 생소할 수도 있는 음식이었지만, 생도들은 밝은 표정으로 맛을 음미하면서 한국의 정을 몸소 느꼈다.

김일수(중령) 대대장은 생도들에게 “개인적으로 나폴레옹의 전략이나 전사가 인상 깊었다”며 “내게 프랑스가 많은 영감을 준 만큼 여러분도 오늘 우리 군의 모습을 본 것이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2일 한국 땅을 밟은 생도들은 그동안 국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소화했다. 서울 전쟁기념관과 부산 유엔기념공원 프랑스군 묘역을 참배하고, 3사관학교를 방문해 생도 교환학기 운영 등 향후 교류 협력 증진에 합의했으며 체육·문화 교류 행사도 함께했다.

프랑스 생도들은 11일 육사 생도들과 체육·문화 행사를 한 뒤 국민대학교 몽클라르 한국전쟁 연구센터를 방문해 국민대 학군단 후보생들과 교류 행사를 가진다. 12일에는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주최하는 프랑스 국경일 행사에 참석해 양국 우호와 군사교류협력을 한층 더 강화할 예정이다.

육사 4학년으로 현재 생시르 육사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이승훈 생도는 “대한민국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땅의 자유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이 있었다”며 “생시르 육사 구필 기수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구필 대위의 뜻을 되새기고 이어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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