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한 발의 탄환, 한 방울의 혈흔만 있으면, 과학으로 낱낱이 밝힌다

입력 2024. 06. 27   17:17
업데이트 2024. 06. 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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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수사단-국과수, 총기 발사 비산혈흔 분석 공동 실험

AK 소총·K2 소총 발혈 부위 측정 목표
맨눈 식별 불가능…3D 스캐너 등 동원
적 소행 여부 밝힐 수 있는 데이터 확보

 

많은 미드(미국 드라마) 마니아를 만들어 낸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는 범행 현장에 남은 증거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예전 같으면 미궁에 빠졌을 상황에서 첨단 장비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범인을 특정하는 모습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군 역시 이러한 과학수사 역량을 기르기 위해 관계기관과 협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육군수사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함께한 ‘총기 발사 비산혈흔 형태 분석’ 연구 실험 현장에서 이런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배지열 기자/사진=부대 제공 

 

26일 강원도 원주시 백호사격장에서 진행된 육군수사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총기 발사 비산혈흔 형태 분석’ 연구 실험 현장에서 인공 혈액이 튄 종이에 혈흔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부대 제공
26일 강원도 원주시 백호사격장에서 진행된 육군수사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총기 발사 비산혈흔 형태 분석’ 연구 실험 현장에서 인공 혈액이 튄 종이에 혈흔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부대 제공

 


실제 같은 현장… 3D 스캐너로 혈흔 분석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26일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육군36보병사단 백호사격장. 최재식(준위) 육군수사단 과학수사센터 3과학수사대 수사2팀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이곳에서는 ‘총기 발사 비산혈흔 형태 분석’ 연구 실험이 진행됐다. 적 도발 또는 테러 상황에서 적성 화기로 인한 비산혈흔(혈액이 흩뿌려진 형태)과 탄두 변형 등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실험의 목표. 과학수사센터 3과학수사대와 국과수 혈흔형태분석실·총기폭발연구실이 공동으로 추진했고, 강원경찰청 등 관계기관과 민간 산학기관에도 실험 과정을 참관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책상 위에 총기가 거치된 모습의 원격 발사장치 앞으로 인공 혈액이 든 마네킹 머리 부분이 설치됐다. 뒤쪽으로는 탄환의 각종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탄도 특정장치와 두꺼운 탈지면을 여러 겹 겹쳐서 만든 탄환회수장치가 자리했다.

실험은 적성화기인 AK 소총과 아군의 K2 소총을 번갈아 가면서 사격해 비산혈흔을 생성하고, 발혈 부위를 측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귓전을 때리는 사격음과 함께 마네킹 머리 뒤에 있는 대형 전지 위로 빨간 모조혈액이 튀었다.

다음은 이를 분석할 차례. 사격에 앞서 본 AK의 7.62㎜ 탄환과 K2의 5.56㎜ 탄환은 얼핏 보기에도 크기와 굵기에서 차이를 보였다. 당연히 비산혈흔의 범위도 크게 다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흔적을 확인하니 육안으로는 차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때가 바로 과학수사장비들이 활약할 타이밍. 눈에 띄는 큰 혈흔 위치를 표시한 전지를 국과수 혈흔형태분석실의 최신 장비 3D 스캐너가 회전하면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 결과는 HEMO SPAT 프로그램을 통해 자동으로 각 지점을 연결해 전체 범위를 측정한다.

수사대는 줄자와 끈을 활용해 혈흔이 튄 범위와 최초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이전부터 활용해 온 스트링(STRING·줄) 기법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최 팀장은 “현장에서 우리 팀이 할 수 있는 수사 기법과 국과수에서 정밀감정하는 장비·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결과의 오차 범위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사입·사출구 부위의 화약 성분 및 탄두의 변형 형태를 관찰하는 ‘탄두의 변경 여부’ 연구 실험도 진행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탄환이 물체를 관통한 이후 벽에 맞아 찌그러지거나 소실될 때가 많은데, 이에 대비해 여러 경우에 대한 실험으로 관련 데이터를 축적했다.

다음은 실제 근육과 비슷하게 젤라틴으로 만든 인체 상체 모형에 총기별 사격을 해볼 차례. 총상을 입은 신체 내부에서 탄환이 어떻게 작용하고 이동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사격음이 잇달아 들린 이후 가까이서 본 실험체에는 중간 폭발 과정과 탄도가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다.

수사대와 국과수는 이번 실험을 통해 적 개인화기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데이터를 확보하고 향후 적 소행 여부를 식별할 수 있는 입증자료를 구축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전방 지역 총기사고 발생 시 적에 의한 소행 여부를 판단할 때, 과학적 입증 자료를 기반으로 군 과학수사의 공신력을 한층 높이는 데 일조할 전망이다.

이날 실험을 주관한 정성훈(소령) 3과학수사대장은 “앞으로도 다양한 연구 실험으로 변화하는 미래 수사 환경에 대비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게 과학수사 능력을 발전시키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육군수사단 장병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인원들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육군수사단 장병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인원들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실험 중 사격으로 종이에 튄 인공 혈액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실험 중 사격으로 종이에 튄 인공 혈액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젤라틴으로 만든 인체 상체 모형에 사격하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젤라틴으로 만든 인체 상체 모형에 사격하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관·군 협업, 다양한 수사 기법 성과 기대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3과학수사대와 국과수는 10년 이상 협업해 오면서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특히 군이 가진 총기와 사격장, 국과수의 많은 실험 수행 경험이 한데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서영일 국과수 연구관은 “사건의 초기 분석을 위해 중요한 실험인데, 우리 기관이 단독으로 하기 힘든 만큼 힘을 합쳐 추진하게 됐다”며 “이번 실험을 계기로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을 함께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센터는 앞서 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별 실험을 다수 진행해 분석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방 경계시설물 절단면 분석실험을 진행해 전방 철책 절단면을 통해 절단 도구와 방향, 기간 등을 알아낼 수 있다는 걸 입증하기도 했다. 또 군 내 유일한 과학수사기관으로 추후 국과수뿐만 아니라 검·경 등 여러 기관과 협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조용화(중령) 과학수사센터장은 “매년 과학대별 연구과제를 선정해 수행하고, 군사경찰실에서 주관하는 과학수사포럼에서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며 “이번 실험을 포함해 다양한 시도를 통해 구성원들의 뛰어난 능력을 살려 민간 과학수사기관의 역량을 뛰어넘을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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