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해군·해병대

[밀리터리 人사이트] 포연탄우 속에서 필승의 신념 우리는 하나였다

입력 2024. 06. 13   17:28
업데이트 2024. 06. 14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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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人 사이트 - 서영길 제독·예비역 해군중장

제1연평해전 지휘…통쾌한 승전
교전수칙 따라 훈련한 대로 대응 지시
우세한 기동·화력으로 공세적 작전
장병들 죽음 불사 불굴의 투혼 발휘

아직 현재진행형…NLL 반드시 사수
한미 연합전력 전개·긴밀한 교류 도움
NLL 중요성 국내외 알린 계기 돼
후배에게 ‘충무공 리더십’ 실천 당부


1999년 6월 15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고속정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해군은 즉각 대응사격에 돌입했고, 교전 14분 만에 적 어뢰정 1척을 격침했다. 북한 경비정 5척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훗날 제1연평해전으로 명명된 이 전투는 우리 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당시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전투를 지휘한 서영길(예비역 중장) 제독에게 승전 배경과 교훈을 들어봤다.
글=이원준/사진=이경원 기자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제1연평해전을 지휘했던 서영길 제독이 지난 7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국방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제1연평해전을 지휘했던 서영길 제독이 지난 7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국방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1연평해전은 6·25전쟁 이후 발생한 남북 간 최초의 정규전입니다. 통쾌한 승전을 통해 적에게는 ‘도발하면 죽음뿐’이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는 ‘NLL을 반드시 사수한다’는 해군의 강한 의지를 보여 줬습니다. 25년이 지난 현재도 서해 NLL은 남북이 팽팽히 대치하는 현장으로 남아 있습니다. 후배 장병들이 유비무환의 자세와 선승구전의 원칙을 바탕으로 선배 전우가 피로 사수한 바다를 지켜주길 바랍니다.” 

지난 7일 만난 서 제독은 제1연평해전의 의의와 서해 NLL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했다. 벌써 25년이 흘렀지만, 서 제독은 그날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모눈종이(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개의 세로줄과 가로줄을 그린 종이)가 들려 있었다. 혹시나 기억에 오류가 있을까, 인터뷰를 준비하며 다시 한번 자료를 정리했다고 그는 말했다.

“전투는 6월 15일 벌어졌지만, 서해 NLL 일대에선 그 이전부터 긴장이 고조됐습니다. 작전사령관이었던 저는 현충일을 맞아 진해 충혼탑을 참배한 뒤 상황실로 이동했습니다. 그날을 기점으로 북한 경비정 3~10척이 NLL을 침범했다 철수하기를 반복했습니다. NLL을 무력화할 목적이었죠. NLL 사수를 위해 출전한 우리 고속정은 고속기동으로 맞섰습니다. 적 함정의 함미를 충돌하며 밀어내기 작전으로 대응했죠. 이러한 일촉즉발 상황이 지속됐습니다.”

6월 15일 오전 9시28분.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을 향해 기관포와 소총을 발사했다. 해군은 즉각 응전했고, 9시38분경 적 어뢰정 1척이 아군 함포에 명중돼 침몰하기 시작했다. 큰 손상을 입은 다른 적 함정들은 꽁무니를 뺐다. 그렇게 14분간 이어진 교전은 우리 해군의 완벽한 승리로 종결됐다.

“해군작전사령관으로서 적이 공격할 시 즉각 교전수칙에 의해, 훈련한 대로 대응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우세한 기동력과 화력을 토대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작전을 구사하라는 지침이었죠. 우리 장병들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포연탄우 속에서 죽음을 불사하며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지휘관부터 수병까지 필승의 신념으로 하나가 됐고, 평소 훈련을 통해 적 도발에 조건반사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런 점들이 승전의 배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서 제독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제1연평해전의 비화(?話)를 들려줬다. 당시 미 해군 로스앤젤레스급 잠수함이 우리 해군기지에 정박하면서 만일의 사태를 예의주시했던 것. 미 항공자산은 한반도 상공을 비행했고, 원자력추진 항공모함은 한반도를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서 제독은 연합전력의 전개를 비롯해 한미의 긴밀한 교류가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미 간 정보교류도 긴밀하게 이뤄졌습니다. 상황실에서 미군의 위성정보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었죠. 월터 도란 미 7함대사령관이 제공한 많은 정보가 저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합동작전 차원에서 공군의 초계비행과 육군의 경태태세 강화도 합동참모본부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뤄졌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2년 전 작고하신 김진호 합참의장님 리더십에 존경을 표합니다.”

서 제독은 제1연평해전의 또 다른 의의로 NLL을 부각했다는 점을 꼽았다. 해상 경계선이자 실질적인 영해선으로서 NLL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알린 계기가 됐다는 것.

“독도가 우리 영토이듯, 우리 주권이 미치는 NLL 해역은 대한민국의 바다입니다. NLL에 대해선 국민적 공감대가 필히 형성돼야 합니다. 제1연평해전으로 NLL은 협상의 대가가 아닌,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해군의 강한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줬습니다. 미국에게도 NLL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당시 주한미군에서 NLL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나왔는데, 제1연평해전을 계기로 해상 경계선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했다고 생각합니다.”

서 제독은 NLL 문제는 북한이 확실한 신뢰 구축 의사가 있을 때 논의해도 늦지 않다며, 최근 정부의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 결정으로 적과 마주한 해역에서의 군사 활동이 정상화돼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25년 전 통쾌한 승리를 거뒀지만, NLL을 둘러싼 적의 도발 행위는 이후에도 반복됐다. 2002년 제2연평해전, 2009년 대청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전까지. 서해 NLL 일대의 군사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서 제독은 후배 장병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고, 충무공의 리더십을 실천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첫째, 항재전장 인식을 바탕으로 실력을 갖춘 ‘참전사’가 돼라. 둘째, 위기관리 능력을 지속 배양해라. 셋째, 지휘관으로서 상하동욕하며 필승의지를 다져라. 충무공 리더십의 핵심은 유비무환 자세와 선승구전의 전비태세입니다. 군인으로서 충무공 리더십을 체질화하면 절대로 전투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영길 제독은

해군사관학교 22기로 임관했다. 3함대사령관, 국방부 정보체계국장, 해군작전사령관, 해군사관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작전사령관 당시 제1연평해전을 진두지휘했다. 예편 후 호놀룰루 총영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이순신리더십연구회에서 충무공의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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