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1보병사단 돌풍막강전우회
1982년 DMZ 수색작전 중 2명 순직
그 이후 지금까지 매년 현충원 찾아
전우 추모하고 병영생활 함께 추억
마지막 1명 남을 때까지 이어갈 것
군대에는 ‘천년전우’라는 말이 있다. 전우라는 존재가 천 년을 이어 나갈 만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청춘이 꽃피는 시기 힘든 훈련을 함께하며 같이 먹고 자면서 인생에 다시 없을 경험 속에서 더없이 값진 것이 바로 전우다. 유사시 내 생명을 지켜주는 존재 또한 전우. 이런 전우를 잊지 못해 42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이들이 있다. 바로 육군1보병사단 3소대 출신 돌풍막강전우회다. 이들 사연이 더욱 특별한 것은 한 해도 빠짐없이 한자리에 모여 비무장지대(DMZ) 수색작전 도중 순직한 전우를 추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일 현충일을 앞두고 전우를 만나기 위해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인 이들에게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임채무 기자/사진=전우회 제공
- 돌풍막강 3소대 전우회는 어떻게 결성됐나요?
정성근(당시 소대장) 예비역 대령=돌풍막강 3소대 전우회는 제가 소대장을 했던 1982년 8월부터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으로 전출 가기 전인 1983년 10월까지 함께한 전우들의 모임입니다. 전우회는 1982년 10월 22일 DMZ 수색작전간 있던 지뢰 폭발 사고로 순직한 두 전우를 추모하기 위해 사고 이듬해인 1983년부터 전역자들과 발족했습니다. 처음에는 서울, 경기, 대전에 거주하던 전우들을 중심으로 매년 6월 순직 전우를 찾던 것이 전국에 있는 전우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확대해 40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 작전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정 예비역 대령=1982년 여름이 지나고 감시초소(GP) 현대화 작업을 하면서 GP에 공사 인력과 병력이 투입됐습니다. 빈틈을 노리는 것인지 북한군 전초대대의 정찰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DMZ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수색·매복 작전’이 필요하다고 사단에서 판단해 우리 대대 병력이 투입됐습니다. 폭발 사고는 작전 4일 차인 10월 22일 발생했습니다. 오전 수색정찰 후 복귀하던 수색정찰조가 우리 GP 측방로 언덕을 내려가던 중 선두에 있던 김완기 하사(당시 병장)가 대인지뢰를 밟았고, 10여 m 뒤에서 이동하던 분대장 윤인섭 중사(당시 하사)가 넘어지면서 두 발의 지뢰가 폭발해 결국 2명의 전우가 순직했습니다. 능선 정상에 있던 이만건 선임하사와 통신병인 김의건 상병은 지뢰 파편상을 입었습니다. 그때 순직한 소대원들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소대원이 모이게 됐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 오랜 기간 만남을 유지하고 있는데, 다양한 활동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만건 씨=전우들 모두 나이가 벌써 환갑이 지나 60대 중반이고, 저도 일흔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찍 결혼해 아들이 있는 전우는 최근 손자가 군에 입대하기도 했습니다. 전우회는 추모행사 때만 모이는 게 아니라 평생 전우, 형제, 친구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1년에 2번 정기모임을 하는데 평소에도 자주 모이죠. 특히 집안 경조사가 있을 때 내 일처럼 너나 할 것 없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
|
- 42년 동안 인연을 이어오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주위 반응은 어떤가요?
나용석(당시 선임하사) 씨=제가 아는 주변 대부분 사람은 ‘42년간 1사단 수색 전우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그 시절에는 군 생활이 33개월로 길었고, 생활여건도 열악한 데다 훈련도 많고, 기합도 심해 제대할 때 ‘다시는 이쪽으로 소변도 안 본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인연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순직한 두 분의 안타까운 희생도 있었지만, 남들이 모두 힘들다고 꺼리는 수색대대에서 격한 훈련을 이겨내고, 힘들 때 서로 의지하면서 무사히 전역해 모두가 사회 일원이 됐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순직한 전우의 가족들과도 연락하신다면서요?
윤영만(당시 하사) 씨= 윤인섭 중사는 집이 부산이었고, 김완기 하사는 충북 음성이어서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연락하려고 노력했죠. 김 하사 동생과는 제가 연락하고 있습니다. 윤 중사 가족과는 초기에 연락이 닿아 가끔 만나 뵙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끊겼습니다.
- 당시 중대장님도 행사에 참가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윤규(당시 중대장) 예비역 대령=매년 오지는 못했지만 당연히 추모행사에 참가해 왔죠. 예하 소대의 안타까운 사고였지만 중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고, 순직한 전우들에게 너무 죄스럽습니다. 당시 우리 중대는 3소대만 전방전초(GOP)와 DMZ를 담당하는 부대에 파견 보내고, 사단 수색대대 전 부대원이 26사단 칠봉산 유격장에서 2주간 유격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작전지휘할 권한이 없었고, 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중대 전체가 DMZ 작전에 투입되고 ‘그때 제가 직접 작전지휘를 했더라면 그런 불상사가 없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많습니다. 순직한 전우들에게 할 말이 없죠. 그래도 이렇게 전우들이 잊지 않고 찾아주는 게 다행입니다. 저 역시 1사단 수색대대 5중대에서 소대장을 하며 같이 근무한 전우들과 ‘훈장5소대’란 이름으로 인연을 48년 동안 이어가고 있습니다. 1978년 6월 10일 DMZ에서 ‘펑’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솟는 걸 보고한 것이 제3땅굴로 판명돼 을지·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것을 기념해 결성됐습니다. 돌풍막강전우회와 마찬가지로 끈끈한 전우애가 전우회를 이어온 비결입니다.
- 앞으로 언제까지 전우회 모임을 하실 건가요?
최종표(당시 병장) 씨=6월뿐만 아니라 연말에도 만나고, 경조사 또는 ‘번개모임’ 식으로도 자주 만나는 편입니다. 몇몇 전우는 의견 차이로 작은 논쟁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다 추억이라고 생각하며 이젠 남은 생을 함께하는 전우이자,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전우회는 계속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1인이 삶을 마칠 때까지 대전현충원에 묻힌 두 전우를 찾을 생각입니다.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