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56주년 예비군의 날’ 기억해야 할 고귀한 희생과 우리의 의무

입력 2024. 04. 03   15:46
업데이트 2024. 04. 0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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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식 예비역 육군준장 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과학화훈련발전센터장
문원식 예비역 육군준장 육군협회 지상군연구소 과학화훈련발전센터장



오는 5일은 향토예비군 창설 56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세계에서 가장 파워 있는 국가 6위에 오른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 ‘향토예비군’의 헌신과 희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때 우리는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어선 안 된다.

향토예비군은 1968년 북한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1·21사태(김신조 사건), 동해상 미국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4대 군사노선에 대응하고자 그해 4월 1일 국민의 호응 속에 창설됐다. 이후 5월 29일에는 ‘향토예비군 설치법’이 공포되고 단계적으로 정비를 강화하면서 현역에 버금가는 예비전투력으로서 후방 방위에 큰 역할을 해 왔다.

지금에야 예비군 지휘관은 물론 편성된 자원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정착돼 신분과 생계가 보장돼 있지만, 창설 초기 예비군 지휘관과 대원들은 오직 애국심과 사명감 하나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창설 초기 예비군 지휘관은 생계를 위한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사비를 들여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분들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했다.

‘예비전력 정예화’를 위해 편성해 훈련환경과 여건 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괄목할 만한 개선도 이뤄졌다. 그러나 창설 초기의 무보수 예비군 지휘관에 대해서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우리 관심 밖의 일이 돼 버린 듯하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을 찾아내 예우하고 후대가 기억하도록 하는 것은 그분들이 만들어 낸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의 도리다.

예비군 창설 당시를 돌아봐야 한다. 과거 국가가 어려울 때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해도 현재의 풍요로운 대한민국에선 그들을 돌아보고 기억해야 한다. 그분들 대다수가 90대에 이른 고령자로 소수만이 생존해 계신다. 그분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국가가 나서 안정적인 여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명예를 고취하는 조치가 절실하다.

필자의 부친도 향토예비군 창설 구성원으로서 오랜 기간 복무했다. 1954년 갑종장교로 임관해 1964년 전역 후 예비군 창설 당시인 1968년 4월부터 10월까지, 1975년부터 1982년까지 예비군 중대장 임무를 수행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 경찰지서 한편에 마련된 부친의 예비군 중대 사무실·상황판과 이동수단도 변변치 않은 채로 밤낮없이 ‘목진지’ 등을 다니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끼니를 걱정하던 모친의 모습도 함께 교차된다.

철들어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친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보수도 없이 사비를 들여 가며 그 역할을 해야 했던 당시 현실이 안타까웠다.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어렵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이 이분들을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게 했을까, 국가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지금이라도 회복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가정을 돌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애국심과 사명감이 넘쳤던 부친의 모습이 이후 필자가 군에 30여 년간 복무하게 된 힘이 됐다.

바라건대 예비군 창설 56주년을 계기로 창설 당시 국가·국민을 위한 일에 헌신과 희생을 주저하지 않은 그분들에 대한 조명과 실효적인 예우가 이뤄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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