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가 있는 풍경] 종

입력 2024. 02. 01   15:46
업데이트 2024. 02. 02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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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하 시인
권갑하 시인



제 몸을 때려 고운 무늬로 퍼져나가기까지는
울려 퍼져 그대 잠든 사랑을 깨우기까지는 

신열의 고통이 있다
밤을 하얗게 태우는 

더 멀리 더 가까이 그대에게 가 닿기 위해 
스미어 뼈 살 다 녹이는 맑고 긴 여운을 위해 

입속의 말을 버린다 
가슴 터엉 비운다 


<시 감상>

종은 소리의 잠재태로 존재한다. 종의 내면에 잠재된 소리의 속성은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다. 하지만 소리 없는 종은 제아무리 최고의 재질과 세련된 기술로 담금질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본래의 속성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종은 알맞은 힘과 적절한 방식으로 자신을 두드리거나 흔들어서 소리를 내야 비로소 그 본질의 색과 무늬를 드러내고, 우리는 그 울림의 깊이와 넓이를 듣고 보고 느끼고 알 수 있다.

사랑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을 듯하다. 우리의 가슴에 충만한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의 마음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한 메커니즘 또한 이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행은 쉽지 않다. 우리의 내면에서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부정 자아를 헤치고 나와서 내가 먼저 다가가 사랑의 마음을 전하려면 진솔한 용기가 필요하다.

시인은 종이 “제 몸을 때려 고운 무늬”의 사랑의 소리를 전하고, 그 울림이 타자의 “잠든 사랑을 깨우기까지는//신열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듯이, 사랑의 마음을 “더 멀리 더 가까이”, 그리고 “뼈 살 다 녹이는 맑고 긴 여운”의 울림을 만들기 위한 절실한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진정한 사랑의 마음은 자신의 “입속의 말을 버”리고, “가슴 터엉 비”우는 실천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과정은 우리의 내면에 쌓인 부정 자아를 해체하고, 자기 오만의 허세와 자기 방기의 허물을 극복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배의 의식을 치르고 재현된 맑은 종소리는 사랑의 소리와 합체된다. 종소리를 사랑의 소리에 비유하여 잊힌 시원의 사랑을 회복하고 전해지기를 소망하는 시인의 속내가 깊고 넓은 서정의 호수를 넘어와 맑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청룡의 해를 맞아 사랑하는 사람들, 언젠가부터 소원해진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사랑의 소리를 전하며 함께하시길 기원한다.  <차용국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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