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조명탄_김은경 작가] 세탁의 팀워크

입력 2023. 03. 30   16:47
업데이트 2023. 03. 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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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작가·프리랜서 에디터
김은경 작가·프리랜서 에디터


집안일, 좋아하시는지? 나는 싫어한다. 봄이 왔으니 토요일에는 대청소도 하고 이불도 싹 빨아 넣자고 생각하길 몇 주째. 정작 토요일이 되면 꽃샘추위가 오지 않겠느냐며 널브러져 있곤 했는데 진짜 추워져서 어찌나 다행인지. 내가 기꺼이 집안일을 할 때는 마감이 코앞인데 뭔가가 안 풀릴 때, 즉 딴짓을 하고 싶은데 죄책감은 안 느끼고 싶을 때뿐이다. 요리, 청소, 설거지도 싫어하고, 걸레질은 더 싫어하고, 그나마 빨래는 좀 나았는데 요즘은 빨래도 쉽지 않다.

빨래 뭐 그까짓 것 세탁기에 옷 넣고, 세제 넣고, 버튼 몇 번 누르면 끝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빨래를 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적절한 속도로 쌓이는 빨랫감과 세탁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인간, 즉 둘의 팀워크 같은 것 말이다. 회사에 다닐 때, 아니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빨래와 나는 서로에게 별 관심은 없지만 손발은 척척 맞는 동료 같았다. ‘슬슬 빨래 할 때 아닌가?’ 하고 빨래 바구니를 보면 세탁기를 돌리기에 딱 좋은 정도의 빨랫감이 모여 있곤 했는데 강의도 미팅도 비대면으로 하고, 요가도 집에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가능해지니 빨래 스케줄이 꼬인다.

‘슬슬 빨래할 때 아닌가?’ 하고 빨래 바구니를 보면 세탁기를 돌리기엔 영 내키지 않는 양이 모여 있다. 물양을 조절해서 빨 수도 있지만 최소 에너지로 최대 퍼포먼스를 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 ‘오늘 요가 하고 내일 한 번에 빨자!’ 결심하지만 이런 날에는 절대 요가를 하지 않으므로 다음 날 세탁기를 돌리는 일도 없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 세탁기 좀 돌릴 만하다는 날이 오면 드디어 빨래를 한다며, 그간 참길 잘했다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옷을 하나하나 세탁기에 넣다 보면 이번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세탁기가 가득 차는데… 세탁기에 상체를 반쯤 넣고 ‘이건 오전에’, ‘이건 오후에’를 중얼거리며 옷을 덜어내다 보면 최소 에너지와 최대 퍼포먼스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세탁 버튼을 누르고 뒤를 돌아서면 빨래 바구니에는 세탁기를 또 돌리기엔 영 내키지 않는 양이…. 결국은 베란다에 서서 오늘은 진짜 요가 할 거냐며 자신과 진지하게 면담 같은 것을 시작한다(대부분 집 안 곳곳에서 추가 빨랫감을 모으기로 합의한다).

어디 이뿐인가. 이 옷을 빨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는 웬만하면 밖에 안 나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외출하고 들어오면 서너 시간 입은 옷을 빨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옷이 깨끗하다고 해서 ‘한 번만 더 입고 빨자’ 결심하는 건 섣부른 짓이다. 며칠 내 이 옷을 한 번 더 입을 기회가 올 것인가. 그런 기회가 와도 내가 잡을 것인가! 내 생활 패턴을 객관적으로 꿰는 인지능력, 미래의 스케줄을 예측하는 추리력, 그때의 감정을 헤아려 보는 공감 능력까지! 이렇게 보면 세탁은 버튼 몇 번 눌러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제를 넣는 것은 또 어떤가. 세탁물을 하나하나 망에 분류해 넣다 보면 세탁기가 다 돌아간 다음에야 세제를 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퍼뜩 깨닫는다. 세탁기가 탈수를 하고 있는데 욕실에 들어갔다가 대강 손빨래해 널어둔 속옷을 마주하는 상황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일하던 중 빨래 종료 알람을 들으면 ‘이것만 끝내고 널어야지’ 결심하지만 커피가 떨어져서 새로 한 잔 내리고, 그동안 유튜브도 좀 보고, 그러다 보면 서너 시간쯤 지나서야 “아, 빨래!”하고 세탁기 문을 벌컥 여는데 네, 오늘도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봄이다. 그리고 곧 토요일이다. 주말에는 다시 따뜻해진다고 하니 빨래하고 대청소하기 좋겠지만… 싫어해서 그런가. 이번 주도 영 안 내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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