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작고 소중한 봄 축제 3
“전쟁의 반대말은 정원이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말이다. 평화나 종전이 아니라 정원이라니. 처음엔 의아했는데 생각할수록 그렇구나 싶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초긴장 상황과 콧노래 부르며 식물을 가꾸는 여유로운 마음은 정반대 편에 있으니까. 전쟁처럼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에게 정원은, 나아가 자연은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어디서든 원 없이 꽃을 볼 수 있는 봄엔 부자가 부럽지 않다. 흠뻑 봄 향기에 취하고 싶다면 꽃축제를 주목하시라. 한 가지 주의사항. 유명 축제라고 아무 때나 무턱대고 찾아가면 후회할 수 있다. 주말이면 수십만 명이 몰리는 대형 축제는 교통난과 인파에 진만 빼고 올 수 있다. 하여 규모가 작거나 덜 유명하지만 의외로 가볼 만한 축제 세 개를 소개한다. 사진=필자 제공
경북 의성 산수유 마을 꽃맞이 행사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광고 카피로 유명한 산수유. 건강에 좋다는 새빨간 열매는 11~12월에 열리고, 노란 꽃은 초봄에 핀다. 3월 중순 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에서 산수유꽃축제가 열리는데, 어느새 서울 산자락에도 산수유꽃이 피었다.
구례 말고도 산수유꽃으로 유명한 동네가 있다.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가 ‘산수유 마을’로 불린다. 농촌의 낭만을 로맨틱한 화면에 담은 2018년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도 이 마을이 나온다. 배우 김태리가 자전거 타고 산수유꽃 핀 농로를 달리는 장면이다. 바로 이 마을에서 매년 ‘꽃맞이 행사’가 열린다.
산수유 마을의 역사는 깊다. 약 450년 전 마을에 부임한 벼슬아치가 개울둑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그때 심은 나무를 비롯해 수령 300년이 넘는 노거수가 3만5000그루에 달한다. 최근에 심은 나무까지 더하면 약 10만 그루를 헤아린다. 그러니 3월 말이면 개울가와 논둑뿐 아니라 동구길, 산등성이도 물감을 뿌린 듯 온통 노랑 천국이다. 산수유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찍지 말고 산수유꽃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20~30개 꽃이 한 뭉텅이로 핀 모습이 신비롭다. 한 송이 한 송이가 작은 우주다.
산수유와 함께 의성을 대표하는 명물은 마늘이다. 마늘이야 전국 어디서나 나지만 마늘 박물관을 갖춘 곳은 의성이 유일할 테다. 뭐가 특별하길래 박물관까지 지었을까? 생산량도 많지만 맛이 남다르다는 게 의성 주민들의 설명이다. 화산 토질과 큰 일교차가 맛의 비결이란다. 의성읍내에 마늘을 앞세운 식당이 많다. 마늘통닭·마늘짜장면·마늘돈까스 등이 유명한데 전통시장 고깃집에서 먹은 마늘양념숯불구이가 특히 맛있었다.
서천 동백꽃주꾸미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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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는 따뜻한 남쪽 지역에 가야 볼 수 있다. 제주도는 한겨울, 부산 동백섬이나 여수 오동도에서는 늦겨울이나 초봄에 빨간 꽃이 핀다. 그래서 동백(冬柏)이다. 충청도에서도 동백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충남 서천 마량리다. 예부터 이곳이 동백의 북방한계선으로 알려졌다.
마량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서 깊은 동백 숲이 있다. 약 300년 전에 심은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 숲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 심은 어린 동백나무까지 더하면 780여 그루에 이른다. 언덕 정상부에 정자 ‘동백정’이 있다. 여기에 서면 붉은 동백 숲과 푸른 바다, 바위섬 ‘오력도’가 어우러진 풍광이 기막히게 펼쳐진다. 마량리 동백꽃은 이달 말께 만개할 전망이다.
마량리에서는 동백꽃 개화 시기에 맞춰 축제를 연다. 주인공이 동백꽃 말고 하나 더 있다. 이맘때 가장 맛있다는 주꾸미다. 지난 18일 시작한 동백꽃주꾸미축제가 다음 달 2일까지 이어진다. 동백꽃주꾸미축제에 가면 뭘 할 수 있나. 이름 그대로 동백과 주꾸미를 즐긴다. 동백정을 느긋하게 산책하며 꽃을 감상하고, 주꾸미를 원 없이 먹는 거다.
주꾸미는 가을에 더 맛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알이 밴 주꾸미는 봄에만 맛볼 수 있어서 서천까지 달려가는 사람이 많다. 어민이 그물로 잡은 ‘낭장 주꾸미’는 식당에서 볶음용으로 쓰는 수입산 주꾸미와는 크기도 맛도 다르다. 훨씬 크고 육질이 탱글탱글하다. 서천에서는 볶음보다는 샤부샤부를 많이 먹는다. 각종 채소와 냉이를 넣고 끓인 국물에 산 주꾸미를 살짝 담갔다가 꺼내 먹어야 진짜 주꾸미 맛을 알 수 있다. 마량진항에 마련된 축제 부스나 주변 식당, 인근 홍원항에서 주꾸미 요리를 판다. 축제장에서는 주꾸미 낚시 체험, 선상 유람 투어도 진행한다.
전남 영암 왕인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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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봐도 감흥이 없다는 사람도 많다. 꽃놀이를 중장년의 전유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래도 봄의 절정을 알리는 벚꽃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들뜨지 않기는 쉽지 않다. 하다못해 벚꽃 앞에서 이성 친구 인증 사진이라도 못 이긴 척 열심히 찍어줘야 한다. 벚꽃은 그런 꽃이다.
벚꽃축제는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진해 군항제, 경주 벚꽃축제, 서울 여의도벚꽃축제는 명성만큼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그러나 이런 축제만 있는 건 아니다. 100리 벚꽃길이 있는 전남 영암군이 대표적이다. 실제 벚꽃길 길이는 100리(약 40㎞)보다는 한참 짧지만 영암군 군서면 일대에 우람한 왕벚나무가 많다. 일제강점기 때 심었다는 말도 있는데, 1960년대에 가로수 용도로 심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경남 창원이나 경주 보문호 못지않게 우람한 벚나무가 도열한 모습이 장관이다. 바람이 불면 벚꽃터널에 꽃비가 흩날리는 모습이 영화 장면 같다.
영암에서는 다음 달 2일까지 나흘간 ‘영암왕인문화축제’가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보러 가지만 축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왕인이다. 고대 일본에 유교와 선진 문물을 전했다는 백제 때 학자 ‘왕인’이 바로 영암 구림마을 출신이란다. ‘왕인박사유적지’가 축제의 주무대다. 유적지 안에도 벚꽃이 흐드러진다.
영암까지 가서 벚꽃만 감상해도 좋지만 4년 만에 정식 개최하는 축제를 알차게 즐기는 것도 좋겠다. 왕인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모습을 재현한 퍼레이드도 볼 수 있고, 고대 학자를 기리는 문화축제인 만큼 천자문과 독서를 주제로 한 대회와 체험 행사도 다채롭게 마련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구림마을 달빛야행, 그러니까 한옥 멋진 마을을 달밤에 산책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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