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통신 -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외계인을 다 만나고 올 수 있을까
완벽에 가까운 우주 편평도 미스터리
대폭발 후 급팽창 이론으로 설명 가능
상상초월 짧은 순간에 엄청난 뻥튀기
둥근 지구 상태 일상에서 인식 못 하듯
한때 실제 굽어져 있었어도 관측 불가
과학자 피서영 교수 관련 연구 큰 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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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 전 지금의 파키스탄 스와트 계곡 지역 출신인 44세의 남자, 비마라진제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동쪽으로 길을 떠나 중국에 갔다가 당시 중국에 와 있던 신라의 안홍이라는 사람을 만나, 신라까지 따라 오게 된다.
『해동고승전』에 인용된 최치원의 글에는 이때가 서기 625년이었다고 한다. 비마라진제는 신라에 『능가경』이라는 고대 인도의 사상이 포함된 책을 가져 왔다. 이기영 선생의 글에 따르면 이때 들어 온 『능가경』은 신라에서도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원효 역시 이 책을 연구한 글을 여러 편 썼다.
『능가경』에는 세상의 질문 중에는 심오한 말인 것 같아도 사실은 무의미한 것이 있으니 그런 질문에는 멈추고 답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런 질문으로, ‘변(邊)과 무변(舞邊)’, 즉 ‘끝이 있느냐 없느냐’ 문제가 예로 나와 있다. 고대 인도의 사상가 중에는 “우주에 끝이 있을까” “우주는 무한할까” 등의 질문에 매달려 평생 고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데, 『능가경』은 바로 그런 질문은 부질없고 무의미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지적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5학년 때쯤, 나는 어느 SF 영화인지 책인지에서 ‘우주의 끝에 간다’라는 말을 접한 적이 있다. 그 순간 너무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주에 끝이 있을까? 만약 우주의 맨 끝까지 가면 그 너머에는 뭐가 보일까? 우주 끝 벽 같은 게 있을까? 아니면 우주는 끝없이 무한할까? 그건 더 황당하지 않나?
나는 흥분한 나머지 다음 날 학교에 가서 반에서 똑똑하다는 아이들을 붙잡고 물어봤다.
“우주에 끝이 있을까? 우주는 무한할까?” 아이들은 나름대로 성실히 이 문제에 답을 해줬다. “뭐든 끝이 없는 것은 없잖아” “우주에도 끝은 있겠지” “우주는 무한한 거야”.
나는 10명 정도의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나름대로 다수결로 결과도 정리해 보았다. 지금도 그 결과를 기억한다. “우주에 끝이 있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결론을 얻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주의 끝에 대한 질문에 초등학생 다수결로 답을 할 수는 없으니까.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우주의 끝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며 지냈다.
그러다가 어떤 만화에서 엄청나게 멋진 이야기를 보게 됐다. 우선 지구부터 한번 살펴보자. 지구 크기는 정해져 있다. 지구 넓이는 무한하지 않다. 그런데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시작되는 곳도 끝도 없다. 지구의 크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곳에서 출발해 계속 걸어가도 끝에 도달하며 지구가 끝나지는 않는다. 한 바퀴 돌아 되돌아올 뿐이다. 그래서 윤석중 선생이 만든 노래도 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혹시 우주도 그 비슷한 구조인 것은 아닐까?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우주 공간도 그 비슷하게 둥글게 굽어진 느낌이라고 상상해 보자. 아주 좋은 우주선을 타고 한 방향으로 끝없이 계속 직진만 해도 언제인가는 빙 돌아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 아닐까? 이런 식이라면 어디인가에서 우주가 딱 잘려 끝나는 곳이 없어도 우주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게 된다. 무한하지는 않다. 나는 이게 굉장히 그럴 듯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막연히 우주가 그런 모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대학 시절 나는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우연히 책에서 읽게 됐다. 실제로 상대성이론에 따라 우주 공간을 계산해 보면 우주의 공간이 굽어져 있는지 아닌지를 따져 볼 수 있다. 만일 우주가 굽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면 완벽하게 평평하기보다는 어느 쪽으로든 조금은 굽어 있기가 쉽지 않을까? 평평해 보이는 나무판자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아주 미세하게 조금은 굽어 있지 않겠는가? 과학자들은 이것을 우주의 편평도라고 부른다. 만약 편평도가 부족해 우주가 약간 굽어 있다면 어릴 때 만화에서 봤던 이야기가 현실일 수 있다. 우주선을 타고 한 쪽으로만 쭉 나아가도 그 방향의 모든 외계인을 다 만나고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과거의 과학자들이 세밀히 우주를 관찰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우주는 굽어져 있지 않아 보였다. 누가 다리미로 일부러 꾹꾹 눌러 펼치기라도 한 것처럼, 우주의 편평도는 거의 완벽해 보였다. 우주선을 타고 한 방향으로 아무리 나아가 봐야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는 없다. 이래서야 우주에 끝이 있느냐 하는 문제에 쉬운 대답을 하기는 어려워졌다.
더 큰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우주가 이렇게까지 완벽한 편평도를 달성했냐는 점이다. 우주의 공간이 굽어 있다는 것이 상상하기는 좀 힘들지 모르지만 분명히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펼쳐 주기에 우주가 이렇게 깨끗하게 편평하단 말인가? 이 질문을 과학자들은 편평도 문제라고 부른다. 학자 중에는 우주가 너무 지나치게 편평한 것이 이상하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원리 때문에 우주가 조금도 굽어질 수 없게 되는가? 누가 일부러 우주를 보기 좋게 펴주었나?
이 문제에 대해 현재 가장 인기 있는 대답은 앨런 구스 선생을 중심으로 한 과학자들이 제시한 급팽창 이론이다. 영어로는 인플레이션 이론이라고 부르는데, 그렇다고 해서 경제에서 말하는 인플레이션 문제에 대한 이론은 아니다. 급팽창은 우주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탄생했나에 관한 이론이다.
급팽창 이론이 나오기 전에도 과학자들은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가 아주 작은 크기에서 출발해 대폭발을 통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지금도 점점 더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급팽창 이론은 우주가 생겨난 후 초기, 아주 짧은 기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게 엄청난 속력으로 우주 전체가 부풀어 올랐다는 것이다.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시무시할 정도로 우주가 뻥튀기됐다는 것이 현재 학자들의 계산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브라이언 그린은 저서에서 적게 잡아도 그 짧은 기간 동안 우주가 100억 배로 커진 뒤 거기서 다시 100억 배로 커지고 거기서 다시 또 100억 배로 더 커졌을 거라고 추정했다.
이것이 편평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굉장히 큰 동그라미 모양을 아주 가까이서 확대해서 일부만 본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 부분은 동그라미가 아니라 거의 직선처럼 보일 것이다. 지구가 둥글지만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는 땅은 그냥 평평하게 느껴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바로 그렇게, 설령 한때 우주가 약간 굽어 있었더라도 우주가 너무 빠르게 아주 크게 확대됐기 때문에 지금은 굽어진 것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 모습이 됐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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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학자는 급팽창 이론이 편평성 문제 외에도 지평선 문제, 비균질성 문제 등 과학의 다른 몇 가지 골치 아픈 수수께끼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어서 이 이론을 좋아한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이, 급팽창 이론이 지금처럼 자리 잡는 과정에서 한국인 과학자인 피서영 교수가 굵직굵직한 공을 세웠다. 그 업적 덕택에 피 교수는 우주의 탄생에 대해 연구했던 학자들 중에서 세계 정상 수준의 학자로 꼽힌다. 피 교수는 피천득 작가의 딸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스테판 재키브의 어머니로도 알려져 있다.
돌아보니, 우주가 엄청난 속력으로 급하게 커지던 시절이 있었다는 주장인 급팽창 이론에 대해 피 교수가 활발히 연구 결과를 내놓던 시절이 벌써 1980년대 초반이다. 그러니 굽어진 우주를 상상하며 그럴듯하다고 여기던 어린 시절 내 생각은 뒷북도 한참 뒷북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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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곽재식은 다양한 SF 소설과 과학 교양서를 쓴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 교수다. SBS ‘김영철의 파워FM’ 등 대중매체에서도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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