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조명탄_안영주 작사가] 웰컴 투 뉴욕 1

입력 2023. 03. 06   16:49
업데이트 2023. 03. 0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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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주 작사가
안영주 작사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국 입국심사대에 설 때 마다 최대한 겸손하고 순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쓴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입국심사원들 중에 난 어떤 사람에게 배당이 될까 의미 없는 예상을 해본다. 한 명은 멕시코계 중년 여성으로 표정도 밝고 비교적 상냥해 보이는데 질문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고 다른 한 명은 30대 백인 남자 같은데 인상이 과묵하고 깐깐해 보인다. 깐깐한 게 나을까 영어 질문 폭탄이 나을까, 여기까지 와서 입국 거절당하면 진짜 멘붕이겠다….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이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멕시코계 중년 여성 당첨! 호텔 바우처, 왕복 항공권, 코로나 백신 접종 영문증명서 등 꼼꼼하게 챙겨온 서류 파일과 함께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발급받은 파란색 전자여권도 건넨다. 담당자는 서류들을 대충 쓱 훑어보고는 영어로 첫 질문을 한다. “뉴욕에 왜 왔어?” “그냥 여행” “얼마나 있다 갈 거야?” “열흘쯤”. 학창시절 수능 영어 듣기 평가 시험을 봤던 비장한 자세로 초집중해서 몇 가지 질문들을 나쁘지 않게 막아냈다. 마지막 관문으로 지문을 까만 스크린에 찍고 있는데 내가 미국을 여행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판단이 대충 끝났는지 담당자는 여유롭게 스몰 톡(Small talk)을 한다. “BTS 좋아해? 난 진짜 진짜 좋아해. 케이팝도 많이 듣고 케이팝 때문에 요즘 한국 드라마에도 홀딱 빠져있어. 나도 휴가 때 한국에 가볼까 해.” 한국어였다면 케이팝 작사가로서 해줄 말이 정말 많았겠지만 변변치 못한 스피킹 실력이 들통날까 봐 케이팝과 드라마에 홀딱 빠져 있다는 BTS 미국팬에게 “한국 사람들은 BTS 다 엄청나게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해”라는 간단한 말과 함께 땡큐만 연발한다.

“웰컴 투 뉴욕!” 여권을 돌려받으며 들은 환영인사, 별거 아닌 저 한마디에 출발 전부터 긴장했던 마음이 이제야 한숨을 돌린다. 비행기에서 아직 내리지 못한 설렘도 마침내 착륙해서 이 여정의 첫걸음에 합류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해외여행은 BTS 덕분에 수월하게 시작됐다.

그냥 여행…. 입국심사대에서 간단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번 뉴욕 여행의 목적은 단지 그냥 여행은 아니었다.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우선은 월드스타 싸이님과 공동작사한 피네이션 소속 TNX의 새 앨범을 꼭 뉴욕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듣기 위해서였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한복판에서 화려하게 울려 퍼졌던 강남스타일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화끈하게 찢어놓았던 타임스퀘어에서 싸이님과 함께 작사한 내 신곡 ‘Love or die’를 꼭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뉴욕에서의 첫 호텔은 촌스럽지만 일부러 혼잡한 타임스퀘어 중심가에 잡았다. 성공한 기분에 잠시 취하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팬데믹 기간에도 열심히 일했던 나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두겠다.

두 번째 목적은 3월 3일에 뉴욕에서 열리는 강다니엘의 콘서트를 직관하기 위해서였다. 강다니엘 앨범에 그동안 3곡쯤 참여했는데 콘서트에서 그 노래들을 꼭 들어보고 싶었다. 작사가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은 콘서트에서 내 노래를 듣는 것이다. 떼창을 해주는 세계 각국의 케이팝 팬들과 내 가사를 무대에서 멋지게 불러주는 아티스트를 볼 때면 ‘정말 이 일하기 잘했다 힘들었지만 버티길 잘했어’라는 생각에 벅차오르곤 하는데 그 기분을 꼭 뉴욕에서 흠뻑 느껴보고 싶었다. 아쉽게도 일정 때문에 강다니엘의 콘서트는 보지 못하고 귀국했지만 한국에 오고 얼마 후 싸이님과 함께 작업한 앨범이 빌보드에 차트인 했다는 뉴스 기사를 보며 마치 24시간 계속되는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전광판 빛들에 물든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다시 서 있는 것처럼 온몸이 짜릿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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