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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었습니다”

입력 2023. 02. 26   15:52
업데이트 2023. 02. 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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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강진 대한민국 긴급구호대 1진 인터뷰

국군의무사령부 6인방이 전하는 긴박했던 구조 현장 


김정길 중령, 코로나19 상황 때 이란·아프리카 교민 국내 이송 업무 계기 자원
김동훈 중령, 이국종 교수 영향 외상전문의 취득 후 해외 파병서 의무 경험 쌓아
김혜주·이인우 대위와 김현진 대위(진) 재난간호 전문교육 여러차례 이수 도움
서동연 대위 “군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원했을 것…부모님도 잘 다녀와라 격려”

 
상상도 못한 처참한 광경…폐허 속 행복하게 웃고있는 가족 사진에 먹먹
맡은 임무 구분 없이 콘크리트 들어내고 기어 들어가 생존자 구조·이송
다른 나라 구호대와 수시로 협업…식수 부족한데 긴 머리카락 짐돼 ‘싹둑’
귀국길 기내서 현지인 한국말 감사 방송에 눈물…평소 훈련 중요성 깨달아

 

국군의무사령부 6인방이 본연의 임무에 돌아가 의무지원태세 완비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국군의무사령부 6인방이 본연의 임무에 돌아가 의무지원태세 완비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강진 피해에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 긴급구호대를 급파했습니다. 긴급구호대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여진의 공포 속에서도 어떻게든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 중에는 우리 군 장병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군의무사령부 6인방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인우·서동연 육군대위는 콘크리트 더미 속 좁은 사이를 포복으로 기어가 생존자를 구조했고, 김현진 육군대위(진)는 임무에 방해가 될까 봐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외과용 가위로 싹둑 자르고 구조에만 몰두했습니다. 또 김혜주 육군대위는 구조자는 물론 긴급구호대원들의 자잘한 상처까지 직접 돌봤고, 김정길·김동훈 육군중령은 현장 구조임무 외에도 100여 건이 넘게 진료를 보며 구호대원들이 임무에 전념하도록 했습니다.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들은 수십 수백개의 콘크리트 더미 밑에 깔려있는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콘크리트 더미를 소방·특전사와 함께 들어냈고, 구조견의 부상처치도 맡았습니다. 오른쪽 앞발에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화제가 된 구조견 ‘토백이’를 치료할 때 옆 건물이 무너져 내려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다는 것은 가족에게 차마 알리지 못한 비밀입니다.

 

국방일보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4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이들과 만났습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터뷰를 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구조 상황·현지 주민들의 감사 인사 에피소드를 설명하면서는 엄숙해졌고,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국방일보에만 털어놓은 이들의 사연을 지금부터 단독 공개합니다. 글=임채무 기자/사진=김병문 기자 

대한민국 긴급구호대에 편성돼 튀르키예에서 구조활동을 펼친 국군의무사령부 6인방. 이들은 국방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긴박했던 구조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털어놓았다. 왼쪽부터 김정길·김동훈 육군중령, 서동연·김혜주·이인우 육군대위, 김현진 육군대위(진).
대한민국 긴급구호대에 편성돼 튀르키예에서 구조활동을 펼친 국군의무사령부 6인방. 이들은 국방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긴박했던 구조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털어놓았다. 왼쪽부터 김정길·김동훈 육군중령, 서동연·김혜주·이인우 육군대위, 김현진 육군대위(진).


농담까지 건네며 모두 컨디션 회복

간단한 인사와 함께 인터뷰 첫 질문은 “컨디션을 회복했는가”였다. 평년보다 크게는 15도가 낮은 튀르키예 현지의 추위와 전기, 수도가 모두 끊긴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 구호대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강도높은 구조활동을 펼쳤다. 아무래도 건강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기자의 걱정과 달리 의무사 6인방은 모두 컨디션을 회복하고 건강한 상태라고 답했다. 오히려 긴급구호대에 편성돼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를 도울 수 있던 보람이 신체적 피로를 이긴 것 같다는 말까지 건넬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여진의 위험과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긴급구호대에 자발적으로 지원한 계기가 궁금해졌다. 김정길 중령은 “의무사 보건과장 대리 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며 “이런 일이 생길 때 선발에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자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란·아프리카교민을 데려올 때 외교부와 몇 차례 업무를 해본 적이 있었다”며 “이런 것들이 도움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동훈 중령은 내과 군의관이지만, 선배인 이국종 교수의 영향을 받아 외상전문의를 취득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국내 내과의사 중 처음으로 외상전문의를 취득했다. 그는 “평소 해외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의무활동을 하는 것도 군의관의 의무라고 생각해 여러 번 파병을 다녀왔다”며 “특히 이런 재난상황이나 전쟁상황에서 군에 필요한 의무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김혜주·이인우 대위와 김현진 대위(진)는 평소 재난과 전쟁은 유사한 상황이 많다고 생각해 국군간호사관학교와 서울대에서 재난간호 전문교육 등을 수차례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특히 화생방전 등 전쟁·재난 상황을 대비해 두창 접종 전문교육까지 이수한 김혜주 대위는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했다.

서동연 대위는 “군 의료인이라면 개인과 부대 상황만 허락하면 모두 가고 싶을 것”이라며 “저는 운 좋게도 둘 다 허락돼 단 1시간 만에 관용여권을 긴급으로 발급받고 튀르키예로 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가족의 반응은 어땠을까. 김동훈 중령은 “2012년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갔을 때 아이가 3·5살이었다. 그때는 가족들이 조금 걱정했었는데, 이후 여러 번 해외파병을 가다보니 이제는 무감각해진 것 같다”면서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튀르키예 정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활짝 웃었다. 서동연 대위는 “부모님이 사는 곳이 멀어서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며 “혹시라도 걱정하실까 밝고 씩씩한 목소리로 전화드리니 오히려 잘 다녀오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긴급구호대 국군의무사령부 장병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조한 아기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부대 제공
긴급구호대 국군의무사령부 장병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조한 아기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부대 제공


비현실적 모습, 생사가 교차하던 지진 현장

오로지 70여 년 전 우리를 도와준 형제의 나라를 돕기 위해 이들은 태극마크를 달고 현지로 떠났다. 언제 돌아올지 몰라 짐가방에는 여름옷까지 챙겨갔다. 이들이 어떤 각오로 튀르키예로 향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긴 비행시간을 마치고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상상 이상의 처참한 모습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연이 만든 불가항력적 대재앙은 그야말로 ‘악몽’ 같았다. 시신들은 거리에 놓여 있었고, 가족을 찾는 생존자들은 무너진 건물더미 옆에서 울음을 삼키며 구조요청을 했다.

김정길 중령은 “현장에 도착하니 건물이 샌드위치처럼 겹겹이 내려앉아 있었다. 언론에서 본 모습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라고 느껴졌다”며 “슬픔·놀라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 전에 비현실적인 모습에 머리가 멍해졌다”고 회상했다. 김현진 대위도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 멀쩡한 곳을 찾기 어려웠고, 도로도 다 갈라져 이동이 어려웠다”고 부연했다.

이인우 대위는 “폐허 속에 생필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는데, 활짝 웃고 있는 결혼식 사진을 비롯해 행복한 가족들의 사진을 보게 됐다.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지, 정말 가슴이 아팠다”며 눈시울이 붉혔다. 그러면서 “엄마와 아들을 구조해서 기뻤는데, 바로 옆에서 아버지와 딸, 아기가 숨져 오히려 구조현장의 분위기가 엄숙해졌다”며 “현장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였다”고 토로했다.

김동훈(오른쪽) 중령과 이인우 대위가 부상을 입은 구조견을 국군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 원격진료앱을 활용해 처치하고 있는 모습. 부대 제공
김동훈(오른쪽) 중령과 이인우 대위가 부상을 입은 구조견을 국군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 원격진료앱을 활용해 처치하고 있는 모습. 부대 제공


터키와 한 팀…포복으로 기어가 생존자 구조

이들의 임무는 생존자를 찾았을 때 의료적 처치를 하는 것과 우리 구호대의 부상을 돌보는 것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명시적 임무’였다. 생존자는 수십 수백 개의 콘크리트 더미 밑에 깔려있었고, 현장에는 인력이 부족했다.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 콘크리트를 들어내야만 했다. 구조견의 부상치료도 이들의 몫이었다. 동물치료는 처음이었지만 다행히 의무사 의료종합상황센터 원격진료를 활용해 수의장교의 도움을 받아 처치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말이 튀르키예에서도 그대도 적용됐다. 우리 구호대는 다른 나라 구호대와 수시로 협업하며 생존자를 구해냈다. 이중 7~8번째 생존자는 터키가 우리 측에 협조를 요청한 사례다. 당시 좁은 통로 때문에 체구가 작은 이인위 대위가 포복으로 기어서 들어가 터키쪽 의사와 산소마스크·경추보호대를 설치하고 수액을 투입한 뒤 생존자를 구출했다. 그는 “터키구조대가 함께 생존자를 구했으니 공동 구조한 것으로 기록돼야 한다”며 “들것 한쪽은 터키구호대가, 한쪽은 우리 구호대가 서서 생존자를 이송한 것이 인상 깊었다”고 기억했다.

6번째 생존자는 우리 구조대가 먼저 식별하고 터키구호대에 협조를 요청한 상황이었다. 서동연 대위는 “생존자에 접근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며 “그동안 터키구호대랑 서로 물품을 공유하고 생존자에게 어떤 조치를 해야할지 논의한 것과 생존자를 꺼내자마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 함께 구급차에 생존자를 옮겼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상기했다.

서툰 한국말 감사인사에 감동의 눈물바다

대부분의 기반시설이 마비된 상황. 임무도 임무지만 생활면에서도 불편함이 있었을 것 같았다. 할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던 김혜주 대위는 “사실 먹는 것과 화장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먹으면 아무래도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화장실이 없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서로 망을 봐주기도 했다(웃음)”며 “베이스캠프가 꾸려진 뒤에는 그래도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답했다. 

김현진 대위(진)는 부족한 식수 때문에 머리카락을 30㎝ 가량 잘랐다. 그는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겠다고 느꼈고, 무엇보다 구조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해 자르기로 결심했다”며 “김정길 중령님께서 외과용 가위로 30㎝ 가량 잘라주셨는데, 전문가처럼 잘 자르셔서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웃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김정길 중령은 “혹시라도 구호대 다른 분들이 잘라 달라고 할까 봐 일부러 잘라줬다는 얘기를 주위에 안 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웃음꽃이 만개했던 이들의 얼굴은 현지 주민들의 반응을 묻자, 어느새 굳어졌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먼저 왔다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어렵게 입을 뗀 김혜주 대위가 귀국 비행기 안에서 뜻밖에 감사 방송에 눈물을 터트렸던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그 모습이 영상으로 퍼져 화제가 됐다는 것을 알고있다”면서 “사실 공항대기실에서부터 ‘한국 구호대가 떠난다’는 방송이 나와 박수와 포옹을 받았다. 힘들 텐데도 웃으면서 인사하고 기념품까지 주는 모습에 마음이 복잡했는데, 기내에서 감사 방송을 듣고 결국 눈물이 터졌다”고 말했다.

 

영상 속의 모습처럼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서동연 대위는 “한 명이라도 더 구하지 못한 괴로움과 아프고 힘든 이들을 두고 돌아가야 한다는 미안함이 있으면서도 집에서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보러간다는 기쁨이 안도감으로 느껴졌던 상황에서 그런 방송이 나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며 “서툰 한국말이었지만, 오히려 진심이 느껴져 더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최선 다할 것

이번 파견은 이들이 더 큰 군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더불어 법률상 편성인력이 지정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에 우리 군 의무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각인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이들은 전시와 유사한 재난 상황에서 평소 훈련하며 쌓은 능력을 활용해볼 수 있었고, 또 보완해야 할 부분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현실과 훈련의 차이를 느끼면서도 평시 반복 훈련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들은 이번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백서 제작·세미나 발표 등도 추진할 생각이었다. 이들은 당찬 각오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재난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온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기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이제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우리 군의 의무지원태세를 완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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